월간 문익환_<늦봄의 말과 글>
늦봄과 노동자 (2025년 11월호)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꿈’ 노동자 전태일, 그 이름은 늦봄 문익환의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20여 년 동안, 그는 노동자와 함께 걷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노동자의 곁에 서서 함께 외치고, 농성하고, 격려하며 남긴 말과 글의 몇몇 흔적을 더듬어 봅니다. '최고의 가치가 물방울 다이아가 아니라 노동인 나라' ▲ 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몸부림이다 일해도 몸으로 손발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 이 시는 늦봄이 ‘어느 노동자들의 모임에 보낸 격려사’(1984년 전후 추정)의 첫머리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우리의 꿈이라고 전한 이 말은, 결코 단순한 수사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 노동자 대회에 참가하여 행진 중인 문익환 목사 그가 민주주의를 외칠 때도, 통일을 외칠 때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의 존엄이 있었습니다. 전태일 열사 이후 줄곧 노동 현장을 바라보며 노동자 곁에 섰던 그에게, 민주주의란 제도나 체제가 아니라 바로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사회였습니다. 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에는 그가 꿈꾼 세계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놀고먹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나라,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천대하고 짓밟는 나라는 저주를 받아라’고 외치면서도, '그러나 이 나라가 저주받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의 조국이기 때문에'라고 노래합니다. 분노와 사랑이 함께 배어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가치가 물방울 다이아가 아니라 노동인 나라', 노동의 깃발 아래 모여 하나 되는 나라. 이것은 늦봄이 꿈꾼 조국의 모습이자, 그의 가치관의 핵심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노동자는 겨레다, 민족이다’ ▲ 1978년 동일방직 투쟁 ◇ 동일방직 노동조합운동사 출판기념회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한 문익환 목사 1978년,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똥물을 뒤집어쓰며 해고당하고, 다른 직장에서조차 '전과자'라 불리며 쫓겨났습니다. 이때 늦봄은 교회 지도자의 일원으로서 라는 아픈 호소문을 내놓았습니다. 노동자는 겨레다, 민족이다. 우리는 이들 없이 살 수도 없다. 우리는 신앙 양심과 인간적 양심으로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를 지원한다. … 민주회복, 인권회복, 독재타도의 모든 근간은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될 때에 이룩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오늘의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단순한 인권 억압이 아니라 그들의 목을 조르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본다. (오픈아카이브. 1978) 이 성명에서 그는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지르는 비명소리'에 비유했습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도전은 곧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한 늦봄에게, 인권은 곧 '노동자의 생명권'이었습니다. 또한 '민족'이란 그저 혈연이나 영토로 묶인 공동체가 아니라, 바로 '일하는 사람들의 연대체'라는 깊은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똥물 투척과 해고, 취업 거부라는 야만적 학대를 겪은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늦봄은 민주화와 통일사상이란 '노동자의 생명권이 보장될 때 이루어지는 민족의 해방'이라는 신념을 더욱 굳게 다진 것이 아닐까요? ‘농민과 노동자, 그 가족이 모두 민중’ ▲1988년 시민학교 강연 1988년 8월, 늦봄은 민통련 민주통일시민학교에서 ‘자주·민주·통일의 새 지평을 연다’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강연 서두에서 그는 3백 척 땅 밑, 40도 열기 속에서 연탄 가루를 마시며 일하는 광부들을 언급했습니다. 광부들의 살 점, 광부들의 핏덩어리로 우리는 방을 데우고,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광부들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문익환. 1999) 그러면서 ‘민족통일이란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런 데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농민 8백만, 노동자 1천만 … 그 가족이 모두 민중입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고 집을 지어 살 수 있도록 해주고 … 전깃불을 보게 해주기 위해서 일하는 노동자들 … 이 민중을 주인의 자리로 모시고 살게 하자는 것이 바로 민주화운동입니다. (문익환. 1999) 이처럼 늦봄의 민주주의는 추상적 이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광부의 핏덩어리'를 느끼는 민중의 땀과 숨결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에게 노동의 현장은 신앙과 사랑이 만나는 자리였고, 통일은 바로 그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하나됨'에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미안, 미안, 미안’ ▲옥중의 회한 1989년 방북 후 수감된 늦봄은 옥중에서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을 졸였습니다. 자신의 방북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ㅇ임금 협상이 불리해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방북이 금년 봄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에 손해가 되었다는 지적은 정말 뼈아픈 지적이군요. 노동자들에게 미안, 미안, 미안. 금년에는 임투에 차질이 있겠지만, 먼눈으로 내다보고 양해해 주었으면… (옥중 편지. 1989년 6월 16일) ◇ 노동자와 포옹하고 있는 문익환 목사 이후 편지(8월 3일)에서 그는 노동자들이 자기 뜻을 알아주어 용기를 얻었다고, 그렇게 통일운동이 확산되는 것이라고 기뻐했습니다. 이 대목은 그의 통일운동이 '정치적 합의' 이전에 '민중이 숨 쉴 수 있는 평화의 회복'을 지향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거대한 통일 담론이 노동자의 구체적인 삶(임금 투쟁)에 미치는 영향을 아파하고 미안해하는 그의 깊은 양심과 책임감을 엿보게 합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고 했을 때, 그 '하나됨'의 중심에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새 시대를 여는 사람은 노동 ‘청와대의 그 누구누구뿐이겠느냐 … 이 문익환이도 … 김승훈이도 밀어젖히랴 그리고 밟고 넘어가라 … 그대들의 발바닥에서 새 시대의 아침이 동터 온다 (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 늦봄은 노동자를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새 시대를 여는 주체이자, 역사의 중심이었습니다. 나아가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밀어젖히고 밟고 넘어가라’고 말합니다. 노동자, 그들의 발바닥이야말로 통일 조국의 문을 여는 '새 시대의 아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노동 현실이 과거와 다른 듯하면서도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광부들의 핏덩어리는 발전소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대체되고, 똥물 세례의 폭력을 받던 여성 노동자는 지금 수많은 하청 구조 아래 목숨을 담보하고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체되었습니다. 만약 늦봄이 지금, 이 현실을 본다면 무어라 할까요? '목을 조르는 생명에 대한 위협'을 교회와 우리 사회가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절규하지 않았을까요? [참고 문헌] 문익환 (1999).『문익환 전집』 시집2. 통일2.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옥중서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00836829.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8.9.1., ‘동일방직해고노동자들의 호소’ 월간 문익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