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늦봄과 이해찬>
송경용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올리는 글 (2026년 2월호)
제도밖에서 시대의 진실을 말한 문익환 현실정치 안에서 개혁을 추구한 이해찬 ◇1987년 감옥에서 석방된 문익환이 민통련 사무실로 이동할 때 공항에 마중나온 젊은 이해찬 전 총리가 부축하고 있다.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해찬 전총리의 서거를 애도하며… 이해찬 전 총리님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문익환 목사님, 문동환 목사님 추모식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히고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함께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사적으로도 여러모로 깊은 인연이 있었던 두분의 삶을 간략하게 비교해봅니다. (이해찬 전 총리님은 통일맞이 이사장을 역임하셨고, 늦봄문익환목사님기념사업회 고문이십니다) 문 목사님은 목사, 시인, 민주화와 통일 운동가로서 독재에 맞선 양심의 목소리로 분단을 넘어선 평화와 통일의 상상력을 확장 시키셨고, 거리와 감옥을 오가며 '말하는 양심'으로 시대를 흔들며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영적 깊이를 남기셨지요. 제도 밖에서 누구보다 선명하게 시대의 진실을 말한 분으로서, 시적 언어로 말씀하시고 글을 쓰셨으며, 예언자적으로 행동 하셨지요. 이해찬 전 총리님은 사회운동가, 정치인, 행정가로서 민주화 운동에도 기여했지만 민주화 이후 국가 운영의 현실정치를 책임진 전략가였습니다. 문 목사님과 달리 제도 안에서 개혁을 추구했던 전략가이자 실무형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와 정책, 시스템을 통해 민주주의가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해찬의 언어나 행동은 감성적이거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고 전략, 정책, 구조로, 선언이 아니라 제도로 움직인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익환 목사님과 이해찬 전 총리는 반독재,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일관된 열망이라는 관점에서 세대와 시대를 넘어 같은 시대, 같은 방향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제도권 밖에서 흔드는 힘(재야라고도 했지요)과 안에서 고쳐나가는 힘이 함께 작동하면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양심/영성/시적 언어/예언자적 풍모와 행동으로 밖에서, 광야에서 외치고 흔드는 역할을 하셨다면, 이해찬 총리는 정치 안에서 행정, 제도적 실행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과 성숙에 기여했다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이(문 목사님과 함께 하셨던 재야 인사들이) 길을 불러냈다면, 이해찬 전 총리는(우리가 기억해야하는 민주/진보 정치인들) 그 길을 닦아나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 등이 열어젖힌 금기와 상상력의 공간 위에서 이해찬 세대는 법과 제도, 행정과 정책으로 그 공간을 현실화 했습니다. 문익환 등 재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없었다면 이해찬 세대가 움직일 정치적, 도덕적 지평 자체가 훨씬 좁았을 것입니다. 시대의 양심이라 불리우던 광야의 목소리 문익환, 그 양심과 목소리가 시대의 기준이 되었다면, 그 기준을 정치와 국가의 언어로 해석하고 설계하고, 만들어간 사람, 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역할을 해낸 정치인으로서 이해찬 전 총리님을 기억합니다. 카랑카랑하고 날카로웠던 겉 모습과 함께, 때로는 소년 같은 천진함, 격의 없는 친근함과 다정함을 지니셨던 이해찬 전 총리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주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안식과 평안에 이르시기를 기도합니다. ◇김포공항의 석방 환영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 문익환 목사와 이해찬 전 총리.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