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아카이브 5주년>
늦봄 아카이브와 나: 오남경 (2025년 12월호)
수장고, 늦봄의 숨결을 잇는 ‘기억의 저장소’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장공 도서관 2층과 3층에는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수장고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치열했던 삶, 그리고 그분들이 걸어온 시대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더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핵심인 민주화·통일운동의 역사적 증거가 보관되어 있는 기억의 저장소이자, 나에게는 불의한 시대를 헤쳐나갈 용기와 위안을 주는 귀한 공간이다. ▲수장고와의 첫 인연 수장고와의 첫 인연은 지난 2021년 9월 우연히 찾아왔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의 디지털기록지원단 활동을 계기로 ‘통일의집’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2년여간 매주 한 번씩 수장고를 찾아 꾸준히 봉사를 이어오면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였다. 처음 맡은 일은 박용길 장로님의 편지를 보존 봉투에 담고 번호를 기록하는 단순한 보존 작업이었다. 그러나 낡고 바랜 실물 편지 한 장 한 장을 봉투에 넣을 때마다 내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그 얇은 종이에서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가장 진실하고도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옥중의 남편에게 소식이 닿기를 바라며 편지마다 날짜와 번호가 꼼꼼히 적혀 있다. 봄길의 편지들에는 삭막했을 옥중 생활에 계절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전하려는 듯, 붉게 물든 단풍 배경, 계절 과일 그림, 한여름에는 서늘한 눈 덮인 산 풍경까지 등장했다. 말린 꽃잎, 시, 악보 등 온갖 재료를 활용해서 보낸, 이토록 정성스러운 편지는 소소한 일상사를 전달하면서도 엄혹했던 현실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었다. 검열을 피하고자 사용된 암호 같은 문구들이나, 흐릿하지만 선명한 ‘검열필’ 글자에서는 당시의 엄혹함을 보여주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았던 봄길의 간절한 위로와 꿋꿋한 강인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엄혹했던 상황을 사랑과 헌신으로 극복해 나간 두 분에게서 위대한 삶의 자세를 배웠다. 이 감동은 기록이 널리 공유되어야 의미가 있다는 절실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이에 봄길의 편지를 전사하고 온라인 아카이브에 직접 올리는 경험을 하였으며, 온라인 아카이브와 오프라인 수장고의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콘텐츠 『월간 문익환』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매월 발행되는 『월간 문익환』에 실을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고 맥락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봉사를 넘어 늦봄의 시대를 공부하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깊게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오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역사의 순간들을 다시 바라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수장고에 보존된 사료들 수장고에는 국가지정물 15호로 지정된 옥중서신 및 사진첩을 비롯해 다양한 유형의 사료가 보존 보관되어 있다. 주요 기록 유형은 다음과 같이 7가지로 나뉜다. • 문서류: 서신, 설교문, 원고 등 개인적인 기록과 공적인 기록. • 사진류: 사진, 필름, 슬라이드 등 시각 자료. • 박물류: 도장, 안경, 시계, 가구, 여권 등 생활 유품과 기념물. • 도서간행물류: 단행본, 논문, 신문 스크랩 등 출판 자료. • 서화류: 그림, 글씨, 족자, 자수 등 예술 관련 자료. • 영상음성류: 비디오테이프, CD, TAPE 등 시청각 자료. • 복식류: 의류, 지팡이, 구두 등 착용했던 물품. ▲기록을 지켜내는 책임과 바람 이곳에는 편지뿐 아니라 문 목사의 옷가지, 손길이 닿은 가구, 친필 원고, 수많은 사진과 앨범 등 방대한 사료가 보관되어 있다. 여러 뜻있는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지만, 늦봄 아카이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분류되지 않은 채 상자 속에 잠들어 있는 귀중한 기록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료를 파악해 정보를 정리하고, 디지털 작업을 거쳐 보존 봉투에 담아 안전하게 지켜내는 일. 이 과정은 막대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만약 지금 이 기록을 정리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사료는 그 가치를 잃고 결국 잊히고 말 것이다. 기록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신과 메시지 또한 소멸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한다.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증거를 보존하고, 늦봄의 삶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시 수장고로 향했다. 나의 작은 봉사가 늦봄의 큰 정신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튼튼한 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보존 상자에 담겨 있는 서신 ◇서화류: 그림, 글씨, 액자 등 ◇박물류: 가구 ◇서적류 월간 문익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