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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번역 성서 기록

    1. 이 사료 설명서는 문익환 목사가 번역에 참여한 (1977)의 간단한 소개와 번역원고 소장현황, 관련 사진, 소품, 저술 등에 대한 정보 및 검색방법을 제공한다. 또 옥중편지 등 다른 사료에서 찾을 수 있는 성서 번역 관련 기록과 연계하여 사료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의 출간과 그 의미 가톨릭(천주교, 구교)과 개신교(신교)는 각각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성서가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종교개혁 이후 나뉜 구교와 신교를 다시금 일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를 에큐메니컬 운동이라고도 하는데 그 일환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는 공동으로 번역에 참여하여 함께 볼 수 있는 성서의 출간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77년 세계에서 네번째로 가 출판되었다. 공동번역 성서는 가톨릭에서 2005년 을 출판하기 전까지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북한의 유일한 기독교 성서인 는 바로 이 공동번역 성서를 문화어로 교정한 뒤 출간한 것이다.    참고: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한글성경 번역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공동번역 성서’, 경향신문(1977. 4. 13.) ‘공동번역 성서 출간’,  김창주 논문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신학적 텍스트와 콘텍스트」, 2018 3. 성서번역가로서의 문익환 목사 문익환 목사는 저명한 구약학자이면서 이미 1957년부터 ‘복음동지회 ’ 활동으로 성서번역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받아 ‘성서번역 공동위원회’의 개신교측 구약 번역 책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의 번역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문익환 목사는 이 일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여겼기 때문에 시무하던 한빛교회의 목사직도 사임하고 그 당시 들끓었던 민주화 운동도 잠시 외면할 만큼 번역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하지만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되어 출간을 한 해 앞두고 아쉬움을 남긴 채 번역 일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 김형수, 『문익환 평전』, 실천문학, 2004    4. 공동번역 성서 관련 소장 기록물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에서 소장중인 공동번역 성서 관련 기록물은 번역 원고가 가장 많고 그 밖에 박물류와 사진이 있다.     4.1. 번역 원고  번역 원고는 문익환 목사를 비롯하여 함께 구약을 번역한 가톨릭측의 선종완(라우렌시오)  신부와 문익환 목사의 제자인 곽노순 목사에 의해 생산된 기록물이다. 개신교 측의 구약성서는 총 39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번역 작업은 번역 위원 각자의 전문분야를 살려 선종완 신부는 전례·제사 관련 부분, 곽노순 목사는 역사서와 지혜서, 문익환 목사는 예언서와 시가서를 담당했다.  기록물이 생산된 시기는 대략 1968년부터 1976년까지이며 소장하고 있는 번역 원고를 성서 권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기사①, 기사②, 기사③, 기사④, 기사⑤)   (괄호는 출간본의 성서명, 일부: ○ 전체: ●)  성서 초고 중간교정본 (미완성)최종본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 사무엘상 ● 열왕기상 ○ 왕조실록상하(열왕기상·하) ● 역대하(역대기하) ○ ● 에스라(에즈라) ○ 느헤미야 ○ ○ 에스델 ● 시편 ○ ○ ● 금언집(잠언) ● 전도서 ● 아가 ○ 이사야 ● 애가 ● 다니엘 ● 호세아 ● 요엘 ● 나훔 ● 하바꾹 ○ 하까이(하깨) ○ 말라기 ●       소장중인 번역 원고는 크게 세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① 원고지에 수기한 초고 ② 타이핑한 중간교정본 ③ 제본한 미완성 최종본   이는 합동 번역 과정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각자 분담한 부분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국어로 옮겨서 원고지에 수기로 초고를 작성한다(①). 그리고 타이피스트가 원고지의 초벌 번역을 타이핑하여 번역위원 셋이 나눠갖고 모여서 검토하며 수정작업을 거친다(②). 마지막으로 총책임인 ‘대한성서공회’의 최종 검토를 위해 제본(③)한다. 앞서 밝혔듯 문익환 목사는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수감되어 번역일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에 문장위원과 자문위원의 검토를 마친 최종본은 소장하고 있지 않다.   참고: 곽노순 「히브리말 … 몽둥이 말이고 한국말은 비단 말 - 공동번역 구약 번역자 곽노순(1938~) 구술」, 2019     원고지 수기 초고(시편 135편)     타이핑한 중간 번역본(시편 2편) 미완성 최종본 (시편 제1, 2권 표지)   4.2. 박물 박물은 성서 번역에 사용한 히브리어 원문 성서, 문법서 등의 도서류와 히브리어 단어카드, 돋보기 등을 포함한다. ‘문익환 통일의 집’ 전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자택 작업실에서 성서 번역하던 책상을 재연한 것이다. 서가에는 장준하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었다. 성서번역 책상 재연    4.3 사진 번역 관련한 사진으로는 번역위원들의 사진과 번역작업 중인 사진이 있으며 아카이브에서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약 번역 위원인 곽노순 목사(가운데), 선종완 신부, 문익환 목사       선종완 신부의 가톨릭대 연구실에서 번역 작업 중인 구약 번역위원 3인의 모습     4.4. 검색 방법  메인 페이지에서 검색을 선택한다. ‘시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고 싶다면 ‘내용’ 검색창에 ‘시편’을 넣어 검색하면 관련 기록물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공동번역 성서 원고 중 대표기록물 일부만 온라인으로 열람이 가능하고 점차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원문 공개 서비스를 늘려갈 예정이다.    5.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내 공동번역 성서 관련 기록 문익환 목사가 공동번역 성서의 구약 번역 책임위원으로 지낸 기간은 약 8년간이다. 그 기간동안 성서의 공동번역이라는 과업을 최우선으로 여긴 만큼 번역에 대한 내용이 옥중편지에서 종종 언급되었다. 그밖에 박용길 장로의 편지 및 옥중단식기에서도 성서번역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5.1. 옥중편지 중에서 -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되어 성서 번역을 마무리짓지 못한 데에 대한 부담감 (1976. 4. 11.) 성서번역의 중책을 감당 못 한다는 책임감만 어깨를 누르지 않는다면… (1992. 3. 4.) 그냥 “큰일났구나”, “어쩌면 좋지!” 이 두 마디뿐이었죠…    - 출간본에 대한 평가  (1977. 4. 16.) 소포 속에서 나온 성경 책을 받아 들고는 얼마나 가슴이 울렁거렸는지… (1979. 5. 16.) 성서 번역을 완성하는 일은 성서 공회에서 부탁 않더라도 단독으로라도 해야겠다는… (1986. 10. 10.) 우선 시편에서 꼭 고쳐야 할 것들, 아니 바로잡을 것들을… (1993. 2. 18.) 한 가지 유감이라면, 신·구교 공동 번역이 신·구교를 다 만족시킬 수 없어서… - 성서 번역가에서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1990. 6. 18.) 성서 번역의 중책을 지게 됐을 때… (1992. 2. 12.) 성서 번역이야말로 나의 필생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1992. 2. 14.) 그 시대의 뜨거운 바람이 나를 성서 번역이나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이… (1992. 2. 21) 성서 번역을 하는 나의 방에는 장준하 씨의 큰 사진이 액자에 담겨… - 성서 번역가에서 시인으로 (1977. 10.14) 내가 성서를 번역하다가 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1990. 02. 19) 내가 릴케의 시를 번역하게 된 동기는 성서의 시를 경전이라는 굴레를…   5.2. 박용길 장로의 편지 중에서  (1979. 1. 20.) 어느 어머니가 자기는 축하할 일이 있으면 공동번역 성경을 보낸다고해요.  ̄『사랑의 기록가 박용길 : 봄길 탄생 100주년 기념 편지집』 2019, 78쪽. 5.3. 문호근이 쓴 옥중단식기 중에서 (1977.6. 1.) 우리 말이 한자말로 고쳐진 것에 불만을 표시하셨다…번역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후배들이 잘해 주겠지. 5.4. 검색 방법 메인 페이지에서 검색을 선택한다. 각종 기록물에서 번역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보고 싶다면 ‘내용’ 검색창에 ‘번역’ 또는 ‘성서 번역’을 넣어 검색하면 검색어가 포함된 기록물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추천콘텐츠에서 제공하는 성서번역 관련 콘텐츠는 다음과 같다.   • (사료이야기) 성경번역가의 고민...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 (사료이야기) 성서번역: 시를 번역한다는 것  • (월간 문익환_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성서 번역 곽노순 목사(1)  • (월간 문익환_이웃 아카이브 탐방) 경기도 과천 선종완 기념관    6. 다른 아카이브와 기관에서 찾을 수 있는  번역 관련 기록 6.1. 대한성서공회(https://www.bskorea.or.kr) 한글 성경 번역사(홈페이지) 성서 전시실(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02-2103-8775) 학술지 『성경원문연구』 「히브리말 … 몽둥이 말이고 한국말은 비단 말 - 공동번역 구약 번역자 곽노순(1938~) 구술 -」 (2019.10)    6.2. 과천 성보영보수녀회 설립자(선종완 신부) 기념관(http://www.smyoungbo.or.kr) “드디어, 하느님께서 우리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습니다.”  – 신명기 번역 독회 중에 선종완 신부가 한 말, 문익환(1985) 「성서와 함께 하나 되는 길」   7. 기타 정보원 [기사] ‘신구교 합동 구약번역=우리나라 교회사상 처음’ (동아일보, 1968.06.11) ‘순조로운 성서 공동번역’ (경향신문, 1970. 2. 11.)  ‘구약 공동 번역 어디까지 왔나?’ (가톨릭신문 1972. 12. 3) ‘구약 번역하다 시집 낸 문익환 씨’ (조선일보, 1973. 6. 27.) ‘공동번역 성서 출간’ (경향신문, 1977. 4. 13.) [단행본] 문익환,『문익환 전집: 제 11권 신학-2』, 사계절 출판사, 1999  •「‘첫 복음서’의 번역을 마치고」, 『기독교 사상』 1961년 4월호, 대한기독교서회  •「한국인의 소슬한 종교 -기독교 토착화의 새로운 제창」, 『사상계』 1964년 7월호 •「성서와 국어」, 『기독교 사상』 1965년 4월호, 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구약학의 과제」, 『기독교 사상』 1971년 3월호, 대한기독교서회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성서 번역의 문제들」, 『신학사상』 7권,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1974  •「성서와 함께 하나 되는 길」, 『성서와 함께 』 106호,  1985년 1월호 김형수, 『문익환 평전』, 실천문학, 2004  [기타 저술] 김창주,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신학적 텍스트와 콘텍스트」, 『신학사상』 2018 여름 민영진, 「공동번역 구약성서의 번역특징」, 『신학사상』 22권 (1978),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이환진, 「성서번역가 늦봄 문익환 목사 (1)」, 『세계의 신학』 1995 겨울호, 한국기독교연구소  이환진, 「성서번역가 늦봄 문익환 목사 (2)」, 『세계의 신학』 1996 봄호, 한국기독교연구소 ※ 이 설명서는 한국외대 일반대학원 정보·기록학과, 「기록관리와 업무분석」수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Copyright © 박에바 

  • 지난 전시

    방북 30주년 <통일은 다 됐어>

    문익환 목사가 1989년 3월 25일 평양땅을 밟은 사건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입니다. 방문한 경위, 일정과 이후 투옥생활, 북측 선물 등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 제목은 모친 김신묵 권사의 말에서 인용했습니다.        전시 기록 보기

  • 기록 컬렉션

    주제별 설명서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는 문익환과 박용길의 기록이 가장 많고 가족기록 그리고 늦봄 봄길과 교류한 사람들의 기록을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습니다. 본 주제별 설명서에서는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소장기록 중 몇 가지의 주제별 사료 현황을 소개해 드립니다. 각 주제별로 기록현황과 관련된 대표적인 기록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아래 주제명을 클릭하시면 해당 설명서로 이동합니다. ▲ 이 설명서는🈷️월간 문익환, 시즌 1을 활용하였습니다.   기록으로 살펴보는 늦봄의 '시'   새롭게 소개하는 '청년' 문익환의 기록들 Timothy Moon을 아시나요? 아카이브의 늦봄 '가족들' 기록 기록으로 본 민주화운동가 늦봄 기록으로 본 옥살이 기록으로 본 늦봄의 공부인생 기록가+수집가, 봄길의 기록 기록으로 본 늦봄의 친구들 기록으로 본 늦봄과 통일 늦봄의 마지막 기록들     

  • 기록 컬렉션

    옥중서신 및 사진첩(국가지정기록물)

       ▢ 국가지정기록물 제15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옥중서신 및 사진첩' 소개 국가지정기록물 제15호로 지정된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소장 ‘옥중서신 및 사진첩’은 문익환 목사가 수감시절 아내인 박용길 장로와 주고받은 서신 3,049점(문익환 서신 745점, 박용길 서신 2,304점)과 사진첩 51권입니다.    지정번호 기록물명 수량 소유자(관리자) 지정일 제15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옥중서신 및 사진첩 3,100점 (옥중서신 3,049점, 사진첩 51권)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2023. 1. 6.     ▢ 지정사유 아래는 국가기록원에서 고시한 지정사유입니다.   - 대한민국 격동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정치, 사회적 내용 뿐만 아니라 생활사를 담은 사진과 서신으로 기록물의 유일성, 희소성과 함께 풍부한 정보적 가치를 담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사진은 간도지역 독립운동사의 재구성에도 희귀한 자료이다.  - 대한민국의 정치·사회를 이해하고 한국 근현대 100년을 성찰하고 기념하는 기록물로, 독립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 기록이자 한국 현대사의 가족사·종교사·생활사 기록이다.  - 서신과 사진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기록물 원본으로, 장기적으로 보존이 우려되는 상황이고, 많은 연구자와 일반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 관리·보존함이 시급하다.        ▢ 컬렉션별 소개  ① 문익환의 옥중서신(옥중편지) 옥중편지는 문익환(1918-1994) 목사가 민주화·통일 운동으로 6차례 수감생활하며 1976년부터 1993년에 걸쳐 쓴 745통의 편지입니다. 감옥에서의 생활과 가족들 안부를 챙기는 사사로운 내용 뿐만 아니라 문인, 재야 인물, 열사 가족 등 여러 인물와의 교류도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편지는 한국의 민주화 활동 과정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사적 편지이지만 또한 공적이며 사회적인 특성을 띱니다.   ◇ 문익환의 옥중서신 1979. 11. 16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폭로하여 형집행정지 취소로 재수감(2차 투옥)되었을 때 쓴 편지이다. 검열로 한쪽 부분이 전부 검게 그어지고 뒷면에도 그 자국이 선연하다. 원고지 28장 분량.   ②  박용길이 감옥으로 보낸 편지('당신께') '당신께'로 시작하는 편지는 박용길(1919-2011) 장로가 수감 중인 남편 문익환 목사에게 쓴 것으로 총 2,304통이 남아 있습니다. 박용길의 옥바라지와 양심수를 위한 투쟁을 엿볼 수 있는 이 글월은 문익환 목사의 옥중편지와 짝을 이루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또 당시 감옥의 서신 검열 실태를 잘 보여줍니다. 검열로 누락된 편지가 있는지 보려고 편지마다 번호를 붙이고 특정 인물이나 장소는 은어를 사용했습니다. 정갈한 필체에 다양한 방식으로 꾸며진 편지는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 박용길 장로가 감옥으로 보낸 편지 1982. 9. 1.  바깥의 공기를 담은 식물과 사진으로 장식된 편지. 이외도 박용길 장로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편지를 정성껏 꾸몄다. 이날은 박용길 장로의 생일로 보이지 않는 기도의 선물이 제일 값진 선물이라 적고 있다.        ③ 사진첩 사진첩은 박용길 장로가 직접 만들고 설명을 곁들인 51권의 주제별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문익환, 박용길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되며 문익환 목사 별세 이후 박용길 장로의 통일 운동까지 근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 박용길 장로가 정리한 ‘민주구국’ 앨범  민구 구국 사건 당시 보라색 한복을 입고 시위를 하던 구속자 가족들의 활동사진, 공청회 티켓, 신문보도, 전주교도소 수인번호 등이 담겨 있다.       ▢ 아카이브에서 기록 보는 법 ① 문익환의 옥중서신(옥중편지)  상단의 메뉴 '옥중편지'를 선택하여 수신자별, 투옥시기별로 편지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료이용 설명은 메뉴 '사료설명서 > 옥중편지'를 참고해 주세요.)    ②  박용길이 감옥으로 보낸 편지('당신께') 서비스 준비중입니다.  단행본 🔗『사랑의 기록가 박용길』에 실린 주요 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오픈 아카이브에서 일괄 업로드된 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오픈아카이브에서 보기    ③ 사진첩 메인 화면에서 🔗'사료 형태로 보기 > 사진류'를 선택하여 앨범에 포함된 개별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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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환 옥중서신(옥중편지)

     1. 옥중편지란  옥중편지는 문익환 목사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수감되어 썼던 편지들로 1976년의 민주구국사건부터 민주 열사 장례위원장을 맡아 재구속되어 감옥에서 있었던 1993년까지에 걸쳐서 작성된 것이다. 그의 편지 속에는 개인적인 안부와 회고, 감상과 활동이 담겨있지만 이것은 동시대의 사람들과 사회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그의 시선을 통해 격변했던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2. 옥중편지 현황  이 편지들은 작성된 기간이 긴 만큼 남겨진 양도 상당하며 특히 목회자, 교수 시절부터 많은 글을 써오던 그가 맘대로 글을 쓸 수 없었던 시기에 썼던 특별한 글이기도 하다. 문익환이 쓴 옥중 편지들은 거의 전부가 가족들에게 보내졌고 이것은 아내인 박용길 장로가 가지고 있다가 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위탁했던 것을 사단법인 통일의 집이 넘겨받아 관리하고 있다. 현재 통일의 집에는 부분적으로 결실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 수감 시기별 옥중서신이 남겨져 있으며 구속된 차수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수감 기간   수감 장소 서신 건수   1차 1976. 3. 2. - 1977. 12. 31 서대문, 전주  9   2차 1978. 10. 13 - 1979. 12. 14  서대문, 안양  13   3차 1980. 5. 17 - 1982. 12. 24  육군 교도소, 공주, 안양  33   4차 1986. 5. 20 - 1987. 7. 8  서울, 청주, 진주  139   5차 1989. 4. 13 - 1990. 10. 20  안양, 전주  212   6차 1991. 6. 6 - 1993. 3. 6  영등포, 안동  402   합계 808      3. 옥중편지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의 의미 디지털, 비대면 시대에 맞게 온라인을 통한 원사료 서비스 개시 - 그간 이루어졌던 오프라인 중심의 다양한 전시, 간행 활동을 온라인으로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초점 - 전체 옥중편지 중 장수가 부족하여 내용이 불완전한 경우 등의 이유로 포함시키지 못한 6건을 제외한 총 801건을 제공 노후화 되고 있는 옥중편지를 위한 활용 방식의 변화를 도모 - 편지의 노후화가 이미 진행되는 상황 속에, 여전히 내용 확인을 위해 원본 사료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 - 원 사료에 대한 접근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체 사본을 마련하고 활용 대안으로서 도입 옥중편지 전문을 텍스트화 해서 온라인 방식으로 최초 공개 - 간행 작업에 누락되었던 편지와 내용들을 포함하여 원문 전체를 텍스트화 하여 내용적으로 풍부할 뿐 아니라 가독성 월등히 향상된 형태로 제공 - 사료 내용이 텍스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 번역 기능을 활용 가능 옥중편지 내용을 분석하여 이용자를 위한 다양한 접근점을 제공 - 문익환의 옥중편지 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식을 구성 - 편지의 수신자, 등장한 인물, 쓰여진 날짜 뿐 아니라 이용자가 친숙할 만한 주제에 따른 접근을 제공 새롭게 발굴된 옥중편지들 - 수장고 작업 중에 제자리를 잃고 떠돌고 있었던 옥중 편지들을 문서 더미 속에서 발견 (약 7건) - 아내에게 쓴 것이 아닌 것 중 미처 모으지 못했던 일부 (약 42건)를 새롭게 발견     4. 검색방법  (1) 출처분류 메뉴를 통해 옥중편지를 이용 - "출처분류>문익환>옥중편지" 로 접근하는 방법. 옥중편지가 생산된 맥락에 따라 브라우징을 통해 세부 편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 (총 801건의 옥중편지가 등록되어 있음)      (2) 검색 메뉴를 통해 특정 옥중편지를 검색해서 이용 - "검색" 메뉴로 들어가면 전문 검색이 가능. 특히 편지를 받은 수신자, 언급한 인물에 태그가 부여되어 있음    태그에 "기세춘"을 입력하면 기세춘 선생과 예수와 묵자에 관해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찾을 수 있으며,    "박순경"을 입력하면 통일신학에 관한 논의를, "안병무"를 입력하면 민중신학에 관해 논하고 있는 편지들이 검색됨 (3) 상단 메뉴에 옥중편지를 위한 별도 메뉴 제공 - 상단의 기록 컬렉션 > "옥중서신" 메뉴에서는 개인,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인물별로 접근할 수 있으며 - 편지 모두보기를 통해 다양한 조건별로 필터링하여 옥중편지를 찾아볼 수 있음 - 필터 조건 :    ㉠ 연도별, 편지별 보기   ㉡ 투옥 시기별 보기 (1-6차)   ㉢ 세부 주제별 보기 1 :  안부, 회고, 옥중에서의 활동, 문익환의 철학과 사상, 감옥에서의 요청사항   ㉣ 세부 주제별 보기 2 :  삶과 지혜, 사랑과 용서, 몸과 마음, 시와 기도, 양심과 정의, 화해와 통일, 생명과 평화  등       5. 기타​ 정보원 [단행본] 문익환. 1984. 『꿈이오는 새벽녘』. 서울. 춘추사  문익환. 1989. 『통일을 비는 마음』. 서울. 세계사  문익환. 1991.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서울. 삼민사  문익환. 1994. 『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 서울. 사계절.  문익환. 1994. 『더욱 젊게』. 서울. 사계절.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 1-12권』. 파주. 사계절 ※ 문익환 목사 사후 간행된 『문익환 전집』 중 옥중 서신이 3권(전집 7-9권)이고, 회고록 형식으로 기술된 편지와 기세춘 선생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어서 통일(5권)과 신학(11권) 에 일부가 실려 있다.     [논문] Oh, Myung Jin. “문익환 옥중서신의 특성과 활용.” 기록학연구, no. 66, 한국기록학회, Oct. 2020, pp. 317–355, doi:10.20923/KJAS.2020.66.317.    [기사] 한겨레신문. 2020. 11. 28. “사랑의 노래를 불러라, 평화의 춤을 추어라" . 검색일자: 2020. 11. 29.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19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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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문익환(ISSN 2951-2115 eISSN 2951-2123) 2026년 2월호 [🔗pdf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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