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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도전- 모금형 여성주의 공익재단
성평등기금모금 ① 시대를 앞선 도전 — 모금형 여성주의 공익재단 1999년, 한국여성재단의 창립 선배들이 꿈꾼 것은 단순한 비영리 법인의 설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두 개의 험준한 산을 동시에 넘으려는 담대한 서사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주의, 다른 하나는 척박하기 그지없던 기부문화의 토양. 그 거대한 두 장벽을 향해 동시에 싸움을 걸었던 이중삼중의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기부가 불법이던 시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51년 전란 중에 제정된 '기부금품모집 금지법'이 그것입니다. 이 법의 목적은 놀랍게도 '기부금품의 모집을 금지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며 그 생활안정에 기여함'이었습니다. 즉, 국가가 기부를 막는 것이 국민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통제 중심의 논리였습니다. 이 법이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으로 겨우 완화된 것이 1995년이었습니다. 재단이 창립을 준비하던 1999년은 대중모금이 허용된 지 고작 4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기부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반적으로 낮았고, 가족관계를 벗어난 개인의 자발적 기부란 혈연 중심 가부장제의 대척점에 있는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여성운동 단체들이 국내 자본이 아닌 외국 민간기금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황무지 같던 시대에 한국여성재단의 창립 선배들은 '100만 명이 1만 원씩, 1,000억 원'을 모으겠다는 전무후무한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동전 모으기에서부터 ARS 생방송 모금, 월급 나눔, 유산 나눔, 의료계, 가게 판매수익 나눔, 모금함 놓기, 브로치 제작판매, 국민카드 발행, 콘서트 개최, 여성친화적 기업공동캠페인 등등 비빌 언덕이 되는 일들은 마다한 일 없이 했다.” — 윤후정 수석위원장, 『딸들에게 희망을: 한국여성재단 10년, 기억과 상상』 여성을 위한 모금이 왜 더 어려웠나 단순히 기부 토양이 척박한 것만이 장벽은 아니었습니다. 모금의 대상이 '여성'이고, 지향하는 목적이 '성평등'이라는 점이 더 큰 산이었습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은 대중적 공감대를 넓히지 못한 미완의 가치였습니다. 당시의 초기 기부 문화는 주로 가난한 이를 돕는 '자선'과 '구호'의 범위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직접적인 시혜 대상이 눈에 보여야 지갑이 열리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여성재단이 가고자 한 길은 달랐습니다. 빈곤한 개인을 일시적으로 구제하는 것을 넘어,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왜곡된 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여성운동을 펀딩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구조적 변화를 위해 돈을 내어달라는 요청이었기에, 설립자들은 혹독한 도전을 온몸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재단 설립 발의자들이 깨달은 것은, 여성을 위한 모금이 또 다른 형태의 여성운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 『여성의 미래를 펀딩하다』, 한국여성재단 20년의 기록 (2020) 모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운동이었습니다. 시민들에게 기부를 권하는 과정 속에서 성평등의 가치를 설득해 내고, 기부하는 행위 그 자체를 성평등 사회를 지지한다는 당당한 정치적 선언으로 바꾸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여성재단이 모금을 정의하는 철학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모금형 여성주의 공익재단 한국여성재단은 태생부터 다른 재단들과 궤를 달리했습니다. 거대 자산가의 사재로 세워진 개인재단도, 대기업의 자금 출연으로 운영되는 기업재단도, 정부가 예산을 대는 관변재단도 아니었습니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여성계와 수많은 시민이 십시일반 힘을 합쳐 만든, 한국의 모든 여성이 주인이자 동시에 수혜자인 특별한 사회적 자산이었습니다. “개인재단이나 기업재단, 정부출연재단과는 독립성이나 연대성, 개방성, 시민사회성에서 태생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한국여성재단은 한국여성운동사의 빛나는 금자탑이고, 한국여성운동뿐 아니라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지키고 키워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 이숙진, 『여성의 미래를 펀딩하다』 (2020) 이 절대적인 주체성과 독립성을 수호하기 위해 재단이 세운 철칙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부 지원 제로(0)'의 원칙입니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 제도가 법제화되면서 타협의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단은 창립 이래 정부로부터의 철저한 재정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단 한 번도 흔들지 않았습니다. 국가 권력과 시장 권력의 건강한 감시와 견제라는 시민사회 본연의 비판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00억을 향한 20년 창립 당시 천명했던 1,000억 원의 원대한 꿈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창립 이후 20년간 한국여성재단이 모금한 총액은 500억 원 이상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중 대다수가 가치에 공감한 기업 후원이며, 시민들의 순수한 피땀이 서린 개인 후원 금액만도 93.4억 원에 달합니다. 20개년 누적 모금액 500억 원 + α 순수 개인 후원금 93.4억 원 단위 NGO들이 수천억 원대 대중모금을 거뜬히 해내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소박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부 자체가 범죄이자 불법이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성평등을 위한 기부'가 형용모순처럼 배척받던 시대를 지나 이룩한 500억 원은 단순한 화폐의 축적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 선진적 나눔 문화를 가장 선구적으로 제기하고, 올바른 성평등 공익기금의 표준을 정립해 온 눈부신 20년의 투쟁사이자 신뢰의 징표입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대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춤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변천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변천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은 2002년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와 여성운동의 요구에 맞춰 조금씩 그 구조와 내용을 바꾸어왔습니다. 사업의 이름이 바뀌고 공모 유형이 새로 생겨나고 지원 방식이 달라졌지만, '여성운동단체들이 원하는 사업을 지원한다'는 원칙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기 : 출발 (2002~2009년) 첫 해인 2002년,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은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기공모를 시작했습니다. 45개 사업에 약 2억 8천만 원(283,880,000원)을 지원하였으며, 사업은 크게 두 분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성평등 사회 조성사업 분야에 30개 사업 약 1억 9천만 원(193,070,000원), 소외여성복지사업 분야에 15개 사업 약 9천만 원(90,810,000원)이었습니다. 성평등 사회 조성사업 안에는 조사연구·정책개발, 국제여성활동 촉진, 성평등 문화, 여성인력개발, 지역여성활동 촉진, 여성운동 활성화 등 다양한 하위 범주를 두었습니다. 이듬해인 2003년부터 사업 이름은 '성평등 사회 조성사업'으로 정착됩니다. 이 시기에는 여성의 지역사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풀뿌리 여성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지역 여성활동 촉진클럽' 분야가 별도로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성평등 사회 조성 분야 26개 사업 약 2억 9천만 원(292,678,000원), 여성복지 분야 12개 사업 약 9천6백만 원(96,170,000원)이 지원되었고, 2005년에는 성평등 분야 22개 사업 약 2억 5천만 원(248,900,000원), 여성복지 분야 12개 사업 약 1억 원(99,590,000원)이 지원되었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성평등 사회 조성사업과 함께 '글로벌 리더육성 지원사업'이 공모사업으로 진행되어, 국제협력 네트워크 강화와 차세대 글로벌 여성리더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업은 이후 '짧은 여행, 긴 호흡' 해외연수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습니다. 2기 : 통합과 확장 (2010~2014년) 2010년은 사업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 해입니다. 그간 별도 분야로 운영되던 성평등 사회 조성사업과 소외여성복지사업을 하나로 통합하여,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이라는 단일한 이름 아래 자유공모사업과 기획공모사업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사업 규모도 꾸준히 이어져 2012년에는 자유공모 11개 사업, 기획공모 3개 사업에 총 지원금액 약 1억 5천만 원(151,539,000원)이 지원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사업이 아닌 '사람'을 지원하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됩니다. 마이크로 크레딧 방식의 여성가장 긴급지원 상환금 일부를 재원으로 삼아, 풀뿌리 여성활동가와 여성문화예술인 개인에게 직접 활동비를 지원하는 '변화를 만드는 여성리더 지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존 배분사업의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3기 : 분화와 심화 (2015~2019년) 2015년은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구조가 가장 크게 바뀐 해입니다. 자유공모사업 외에 두 가지 기획공모 분야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하나는 풀뿌리 여성단체를 위한 '신생여성단체 지원사업', 다른 하나는 '여성과 아동 폭력의 예방 및 해결을 위한 지원사업'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신생단체와 차세대를 분리하여 '차세대 여성운동지원사업' 분야가 독립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온·오프라인에서 급격히 성장한 젊은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10개 사업이 선정되며 활발하게 출발하였습니다. 2018년에는 #미투운동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여 수시지원사업으로 4개 단체의 미투 관련 연대활동을 지원하고, 별도의 미투 지원기금도 조성하였습니다. 2018년 자유공모 10개 사업, 차세대 여성운동지원 3개 사업에 총 지원금액은 약 2억 5천6백만 원(256,633,000원)이었습니다. 4기 : 연구와 재정비 (2014~2025년)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은 총 212개 사업에 약 22억 원(2,200,480,000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이 시기 지원사업들은 ▲아젠다 세팅 ▲젠더 담론 ▲차세대·신생 인큐베이팅 ▲문화예술·미디어·스포츠 ▲교차성 ▲지역과 글로벌 ▲활동가 역량강화 ▲기록과 아카이빙 등 8개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주제와 방식이 다양해졌습니다. 23년의 숫자로 본 성평등사회조성사업 구분 내용 사업 기간 2002년 ~ 2025년 (23년) 총 지원사업 수 470개 이상 총 지원금액 약 47억 5,000만 원 (4,750,000,000원) 2012년 지원규모 자유공모 11개 + 기획공모 3개, 약 1억 5천만 원 2018년 지원규모 자유공모 10개 + 차세대 3개, 약 2억 5천6백만 원 2014~2025년 누적 212개 사업, 약 22억 원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이 해마다 선정한 사업들의 목록은 그 시절 한국 여성운동이 무엇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는지, 어떤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했는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2000년대 초반 비혼 여성의 자리찾기, 2010년대 성인지예산 운동, 2016년 강남역 이후의 차세대 페미니즘, 2018년 미투, 2022년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까지. 한국 여성운동의 굵직한 흐름이 이 사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 나눔의 인간사슬 — 100인 기부릴레이의 탄생과 성장
    성평등기금모금 ② 나눔의 인간사슬 — 100인 기부릴레이의 탄생과 성장 2003년 봄, 한국여성재단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모금 캠페인을 세상에 제안했습니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직관적이고 단순했습니다. 당시 재단 이사로 활동하던 장명수 이끔이(이화학당 이사장)는 "한 사람을 부르면, 그 사람이 다른 열 사람을 이끌고 오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대중적으로 유행하던 '칭찬 릴레이'의 선한 영향력 구조에서 착안하여, 마침내 '기부릴레이'라는 혁신적인 모금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릴레이였나 기본 구조는 정교한 체인형 네트워크입니다. 100명의 이끔이가 먼저 기부를 실천하고, 한 달 동안 매일 한 명씩 새로운 주자를 이어 달리게 합니다. 이끔이 한 명이 31명의 주자를 모으면 '완주'가 되며, 100명의 이끔이가 모두 완주하면 이론상 3,100명의 새로운 기부 동반자가 탄생하는 구조입니다. “성평등 가치의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 모금캠페인에 무리하게 집중하기보다, 성평등 가치에 이미 우호적인 지도층 이끔이들을 통해 한국여성재단에 충성도가 높은 친구와 가족을 늘려가는 인간사슬형 접근을 선택한 것이다.” — 이숙진, 『여성의 미래를 펀딩하다』 (2020) 성평등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낯설고 생소한 가치이던 시절, 생면부지의 대중에게 무작정 기부를 권하는 것보다 이미 두터운 신뢰를 쌓은 관계망 속에서 나눔을 이어가는 방식이 훨씬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재단은 이를 "Fundraising? Friendraising!"이라 명명했습니다.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넘어 재단의 평생 친구와 연대자를 확장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부가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적은 돈을 모아 성평등 기금에 보태는 열린 철학, 그것이 이 릴레이의 본질이었습니다. 첫 발걸음 — 2003년 2003년 5월, 역사적인 첫 기부릴레이의 막이 올랐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과 故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각계의 상징적인 사회지도층들이 이끔이를 자처했고, 33명의 이끔이와 함께 총 1,528명이 동참하여 약 1억 5,366만 원의 기금을 결집했습니다. 기부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던 시절 이뤄낸 이 성과는 전국 여성단체들의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위한 귀중한 재원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일보와 공동 주관하여 1면 헤드라인에 '소외계층 돕는 나눔축제로'라는 타이틀로 소개되었으며, SBS 및 CJ홈쇼핑 특별 생방송 모금을 병행하는 등 기성 언론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국 사회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성장과 확산 — 2004~2012년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해마다 굳건해졌습니다. 2004년 58명이었던 완주 이끔이는 2009년 81명, 2012년에는 역대 최다인 82명으로 늘어났고, 총 참여자 수 역시 2004년 2,252명에서 2012년 5,077명으로 대폭 성장하며 재단의 독보적인 대표 브랜드로 안착했습니다. 2009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매칭펀드 방식의 '고사리손기금'을 론칭해 '나눔을 배우는 나눔'의 가치를 확산했으며, 유한킴벌리와 국군간호사관학교 등 주요 기업 및 기관 임직원들이 단체 참여하며 저변을 넓혔습니다. 대망의 10주년을 맞이했던 2012년 발행된 결과보고서의 타이틀 '나눔의 별, 희망의 은하수가 됩니다'처럼, 크고 작은 작은 기부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은하수를 완성해 냈습니다. 인간사슬의 힘과 한계 100인 기부릴레이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자금의 액수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이끔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권유하고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왜 여성을 위해 기부해야 하는가'라는 성평등 담론이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로 스며들었다는 점입니다. 모금 과정 자체가 곧 가치 확산을 이끄는 소프트웨어적 여성운동이었습니다. “100인 기부릴레이는 참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이다. 모금의 결과가 모두 성평등 사업에 사용되기 때문에 릴레이에 하나의 연결고리만 되어도 성평등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게 되는 결과다.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면 기쁘게 실천하는 당연한 의무가 기부다.” — 조흥식 교수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10년 연속 완주 이끔이 그러나 지인 중심의 아날로그식 인간사슬 전략은 세월이 흐르며 충성도 높은 초기 이끔이층의 연령 고령화와 신규 이끔이 발굴의 정체라는 확장성의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거시적 정치·사회적 여건의 변화도 초기의 우호적인 인프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참여자 수는 증가했으나 총 모금액이 완만하게 정체되는 현상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반증했습니다. 재단은 이 벽을 깨부수기 위해 '디지털 대중모금'이라는 새로운 대전환의 카드를 꺼내 들게 됩니다. 그 역동적인 전환기는 [모금이야기 ④]에서 계속됩니다. 연도별 100인 기부릴레이 현황 (2003~2021년) 연도 완주 이끔이 총 참여자 총 모금액 주요 특징 2003 33명 1,528명 153,663,000원 최초 시작, 한국일보 공동주관 2004 58명 2,252명 101,285,000원 - 2005 45명 1,760명 65,000,000원 - 2006 42명 2,100명 130,000,000원 - 2007 64명 2,310명 108,473,393원 - 2008 69명 2,845명 119,119,200원 - 2009 81명 4,436명 156,015,700원 SBS 모금방송, 고사리손기금 시작 2010 79명 4,158명 92,814,730원 - 2011 64명 3,227명 110,118,350원 고사리손기금 확대 2012 82명 5,077명 125,267,480원 10주년, 역대 최다 참여 기록 2013 83명 5,000명 이상 약 125,000,000원 4월로 캠페인 일정 변경 2014 97명 4,687명 135,884,648원 청소년 이끔이 3인방 활약 2015~2021 매년 80~100명 매년 3,000~5,000명 연평균 약 130,000,000원 안정적 패러다임 유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