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이 땅에 세우는 힘든 길

사모님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땅이 꺼지는 것 같겠지만, 사모님, 유감없으시지요? 목사님과 살아오신 하루하루가. 그 하루하루가 몽땅 축복이요, 기쁨 아니었습니까? 그 숱한 고생까지도. 세상에 나서 목사님만큼 유감없는 생을 살고 가신 이는 별로 없습니다. 조시라고 써보았지만, 써도 써도 미진한 것만 같습니다. 제 아버님은 북간도의 역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가시는 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은 한껏 당신의 뜻을 펴시고 가셨습니다. 

저의 가족이 피난 나왔을 때, 목사님과 사모님이 저의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저와 동환이가 학교 다니는 동안 안방을 내주셔서 한 식솔처럼 살 수 있었던 일도 꿈 같은 추억입니다.

저는 잘 압니다. 목사님의 공적의 반은 사모님께 있다는 것을. 사모님은 사모님으로서 우리 모두의 사표이십니다. 제 아버님과 함께 어버이로서 모실 단 한 분 스승이 김 목사님이시라면, 어머님과 함께 어버이로서 모실 단 한 분 사모님도 사모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어머님과 오가면서 여생을 보람있게 보내시기 빕니다. 두 분다 하실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말동무가 필요하고 의지할 벗이 필요할 테니까요. 사모님이나 제 어머니에게 아직 남아있는 부덕(婦德), 의연하면서도 부드럽고, 굳건하면서도 너그러운, 80년 90년 풍상에 부대끼면서 더욱 원숙한 부덕 오래오래 쳐다보도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익환 올림

 

관용씨 내외분께

 

두 분 정말 효자 효부였습니다. 설치는 기색도 없이 피곤한 모습도 보이지 않으면서 그 긴 투병을 하루 같이 보살펴드린 두 분의 모습은 정말 우러러 뵈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어머니에 그 며느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분이 번갈아 병원에 남아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데, 하루 저녁이라도 내가 대신 목사님 옆에 있어 드렸어야 하는 건데, 벼르기만 하다가 이렇게 마지막 가시는 길도 같이 갈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이 섭섭한 마음 무엇이라고 표현할 길이 없군요.

그러나 나는 기쁨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제자라는 것이 그리도 자랑스럽습니다. 끝까지 “익환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시며 사랑과 격려를 주시던 일이.

두 분뿐 아니라, 모든 후손들은 기뻐하십시오. 세상에 그런 아버님, 그런 할아버님과 한 지붕 아래서 산다는 일이 예삿일입니까?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훌륭하신 아버님의 유감없는 일생을. 나도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정말 기뻤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승리인 거군요.

김 목사님 만세 만세!

 

늦봄 드림

 

어머님께

 

어머님이 김 목사님 사모님 찾아가서 하루 동무해 드리고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게 자주 오가시면서 말동무하시고 의지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우정을 개발하십시오.

어머님은 제 이름을 안 불러 주십니다. 정말 제 이름을 불러 주시던 마지막 분이 가셨다고 생각하니, 그 섭섭한 느낌 무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 가지고 섭섭하니 어쩌니 하는 것 너무 사소한 개인감정이지요. 내일이면 뵙겠지요. 어머님의 건강한 모습을.

 

호근아!

 

시험 잘 보았겠지? 5일에 오는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었다. 너무 처참한 자동차 사고들이 연달았기 때문에. 의근이도, 너도 정말정말 운전 조심해라. 노이로제 될 것까지는 없지만, 언제나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도록. 

대학원 공부가 시작되면 네 연구소는 어떻게 하는 거냐? 그대로 계속하는 거겠지. 성근의 새 연극은 어찌 되어 가는지 궁금하구나. 내일이면 소식을 듣겠지만. 정말 겨울이 다 가고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해동은 정계에도 와야 하는 건데. 

한빛교회 32주년에 보내는 글을 아래 적겠다.

 

서른두 돌 맞는 한빛교회 교우들에게

 

서른두 해라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한 세월이라면 2부, 3부로 2천~3천 명 모이는 교회가 벌써 되었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제가 여러모로 부족해서 큰 교회로 자랄 기틀을 잡지 못했고 전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한결같이 하루같이, 이 작은 교회를 저버리지 않고 지켜 주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작은 무리에게 하늘나라를 맡기시기를 원하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넓고 큰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자루를 들고 교회로 모여들 때, 여러분은 민족의 축복을 위해서 땀 흘리는 수고로운 길을 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천당에 가려는 일념으로 예수를 믿을 때, 여러분은 천국을 이 땅에 세우는 힘든 길을 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 된 밥상에 모여들 때, 여러분은 곡괭이를 들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김을 매어 곡식을 거두는 농사꾼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목자를 치면 양 떼들은 흩어지는 법인데, 여러분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모였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하느님의 교회라는 것을. 교회당은 작고 모이는 교인은 적지만, 여러분이 흩어져 나가 쳐드는 횃불이 바로 한빛, 하느님의 큰 빛이라는 것을. 꼭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꼭 타올라야 할 바로 그때 타오르고, 하느님이 원하시고 시대가 바라고 기다리는 바로 그 빛, 참 빛을 비추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타올라도 한껏 타오르는 빛이라야 절벽 같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새 시대를 이끌어 들일 수 있다는 것을. 한빛의 구실을 톡톡히 하면서도 나는 한 작은 빛이라고 겸손할 수 있어야 우리의 빛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이 드러난다는 것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눈앞에 삼삼한 그리운 교우 여러분! 더 많은 빛이 모여 더 큰 한빛으로 어두운 역사를 비추도록 한껏 타오르게 한껏 치켜드소서. 한빛의 한빛, 하느님의 빛을.

 

1987. 2. 문익환 드림

 

당신께 

 

오늘은 오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내일 온다고? 덕분에 당신이 오기 전에 이 편지를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당신 말대로 이 봄엔 모든 일이 활짝 풀려야 할 텐데.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세계는 슬슬 풀려 가는데.

중국의 자유화에는 소련도 충격을 안 받을 수 없는 거죠. 드디어 70년에 걸친 소련의 경직화 된 공산주의가 풀리기 시작하는 판이니까. 소련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민주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명문화했다는 건 정말 역사의 일대 사건이지요. 공산주의 세계가 말로는 ‘인민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실은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이제 공적으로 고백한 셈이니까요. 그리고 이를 역사에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정말정말 대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세계사가 일대 전환점에 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세계사의 큰 매듭이 풀리는 것이 아니겠소? 고르바초프의 민주화 정책이 흐루시초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흐루시초프의 실패는 고르바초프에게 좋은 거울이 되겠지요. 또 그때보다는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로 머리가 굳어진 세대가 더 많이 갔고 이를 탈피하려는 새 시대가 그만큼 더 자랐을 것이고. 소련으로서는 무시 못할 중국의 질적 변화를 보고 있으니까, 고르바초프는 흐루시초프처럼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군요.

이렇게 세계사의 큰 매듭이 풀리는 조짐을 보이는 판국에 우리의 매듭도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 과히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매듭을 맺은 편이 우선 그 매듭을 푸는 용단이 필요한 건데 정말 아쉽군요. 너무 굳어져 있으니까. 너의 살길을 열어 주면서 나의 살길을 찾는 슬기가 아쉬울 뿐이오.

택 목사가 나의 시 「땅의 양심」에 그렇게 감격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몇 차례 읽어 보았더니「자유」보다 깊이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김 목사님 조시를 쓰다가 양심의 새 면을 발견할 수 있었소. 양심이란 남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온갖 거짓을 간파하고 속지 않는 마음이라는 점 말이오. 김종삼 씨 심장이 안 좋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계란 노른자위 기름을 쓸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지면이 다 했으니까 붓을 던져야겠군요. 아쉬운 대로 그러면 내일 만납시다.

 

1987. 2. 10.

 

김재준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들내외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 한빛교회설립 32주년에 보내는 축하의 메시지. 아내에게는 소련의변화에 대한 생각를 보냄

이 편지는 김재준 목사님 조시의 끝부분으로 시작하지만, 그 부분은 조시의 연속성을 위해 2월7일자 편지에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