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다

소혜자 목사님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정말 보고 싶습니다. 손을 잡아 보고 싶고 말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기어코 돌아오셨군요. 이 아픈 십자가의 나라로, 꿈틀꿈틀 다시 살아 일어나는 부활의 나라로.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군요. 역사의 주 하느님께 감사, 찬양, 만세, 만세. 저는 한국의 통일을 생각할 때 언제나 독일의 통일도 생각해 왔습니다. 한국의 통일이 독일 통일의 서광이 될 거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어쩌면 역사는 세상을 뒤엎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소련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말았군요. 제일 부정적일 줄 알았던 프랑스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건 놀라움이 아닐 수 없군요. 이해할 만합니다. 아직도 통일은 우리가 먼저일지 모르죠.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 한반도 통일에 큰 서광이 되리라는 건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제가 평양에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역사는 이미 정치가들의 계산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 셈이죠. 안 그렇습니까? 이번에 평양을 다녀온 후로 하느님의 섭리라는 말과 역사적인 필연이라는 말이 별 모순 없이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걸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콜 총리가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지요? 여기 한반도에서는 말 엉덩이에 채찍질을 해야 하지만, 독일에서는 말고삐를 꽉 틀어쥐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땅 껍질) 변동을 보면서 역사의 변증법적인 발전을 위해서 독일 민족이 중대한 기여를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르크스는 독일 사람이니까 레닌, 스탈린의 안경을 벗고 마르크스의 안경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레닌, 스탈린의 안경을 벗고 마르크스를 다시 봐야 한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적인 인민민주주의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 이념, 새 제도를 창출해 내야 하는 변증법적인 종합의 길목에서 마르크스를 상대화시키면서 다시 이해하는 일이 절박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에게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고 레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거든요.

물론 기독교 신앙과 유물론을 대립적으로 보는 전통적인 두 세계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 또한 독일 민족이 벗어 버릴 수 없는 세계사적인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최근 소련,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면서 서구와 동구의 공통된 기반으로서 기독교가 얼마나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느냐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동독과 서독의 공통의 기반으로서도 기독교가 거의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거기 비해서 남한과 북한의 공통 기반은 1300여 년 동안 한겨레, 한 나라로 살아왔다는 민족 공동체 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족 공동체 의식이 얼마나 뜨겁게 통일을 부르짖는지 모르는데, 기독교는 이데올로기적인 선입관 때문에 통일에 역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독일 민족, 특히 독일 교회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독과 서독의 공동 기반이 기독교라고 해서 같은 민족의식이 없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나치 치하의 독일이 보여주었듯이 그것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지요. 다만 공동 기반의 성격을 한국과 비교해서 성격지어 본 것입니다.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기쁩니다. 소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께

 

오늘 아침 성경 석 장, 신영복 씨의 사색, 택 목사의 죽음을 앞에 놓고 쓴 그 내외의 신앙 일기를 읽고 명상에 잠겼는데, 점심 배식이 떴군요. 오늘은 어쩌다 한빛교회에 마음으로 가 있지 않았군요. 신영복 씨의 사색은 두 번째 읽기 시작한 거구요. 아침에 성서와 함께 읽을 책이 또 하나 생긴 셈이군요.

유(원호) 선생 부인의 따뜻한 마음이 실린 세타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

소혜자 씨가 목사가 되어 한국으로 다시 왔다는 걸 총회 회보에서 알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구미혜 씨가 하던 일을 넘겨받는 모양인데, 구미혜 씨는 카나다로 돌아갔나요?

다들 좋은 사람들, 좋은 사람들. 수요일에 만날 걸 기다리며. 

 

사랑 1989. 11. 17.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마침 목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독일 선교사 소혜자에게 한국과 독일의 통일 문제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고 그에게 의견을 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