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우리
“수초도 자라고 물이 흐르던” _이현준
양지원
게시일 2021.10.22  | 최종수정일 2022.08.25

수초도 자라고
흐르는 물이 흐르던

 


구술자 : 이현준 (50, 1980년대 용현동 거주)
 
- 채록일 : 20191125() 오후6
- 채록자 : 문성예
- 채록 장소 : 학산지속발전협의회

 

 
 






학교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용정초등학교가 언덕에서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눈이 온 날 아이들이 비료포대라던가 비닐
같은 것들을 타고 학교를 등교를 하고, 방과 후에도 거기서 놀았던
기억이 있고. 학교 바로 옆에는 배나무 밭이 크게 있었어요. 사과도
있고. 그래서 학교 바로 앞에 문구점이 있었는데 그 문구점 옆쪽
길로 해서 배서리도 좀 하고. 그 당시에는 먹거리가 그리 많지도
않았었고. 용현시장 같은 경우에는 어머님이 항상 시장 데려갈 때
만두를 먹었던 기억, 떡볶이나 순대를 먹었던 기억도 있어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미추홀구에 살고 있는 이현준이라고 합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곳은 미추홀구 미술협회에 공예분과 이사로 있고 숭의목공예마을에 우드버닝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 남구에서, 지금은 미추홀구로 바뀌었죠? 예전에 용현동에서 오랫동안 살았어요. 17, 18년 정도 살았어요. 제가 살던 동네 앞에, 용일초등학교 뒤쪽이었는데 갯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서 친구들이랑 다방구 놀이도 좀 하고, 공차기도 하고. 중간에 천에 들어가서 공도 꺼내오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천이 그 당시에는 깊이나 폭이 어느 정도였나요?
제가 다방구를 하면서 건널 정도였으니까. 초등학교 때 건널 정도면 1m 10cm에서 20cm사이?
 
다방구가 무엇인가요?
술래잡기 같은 거예요. 술래잡기인데 사람을 터치해야 하는.
 
그럼 물길이 이어져 있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용일시장 쪽에서 온 것 같아요. 용일시장 쪽에서 용일초등학교 후문 쪽이라고 봐야죠. 후문 쪽 밑으로 계속 이어졌었어요. 그래서 그 물길 따라서 공을 주우러 계속 달려가면서 뛰어갔던 기억도 있고. 그리고 공 못 주웠다고 혼나기도 하고. 물고기가 살았던 기억은 없는데, 비가 많이 오거나 장마지거나 하면 물이 많아졌고. 주변에 물풀에, 식물들도 많이 있었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비포장도로니까, 그냥 흙 사이에 물이 있었던 건가요?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다방구를 하고 다녔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턱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사이에 천을 뛰어넘고 하다가. 그러니까 높이가 우리가 턱을 잡고 내려갈 정도니까. 높이가 1m 20cm 정도고, 가로 폭은 1m 20cm정도 되는 곳에 내려가서 공을 주워 와야 하니까. 멀리서 뛰어오다가 훅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천. 예전에 제가 살던 집 뒤쪽으로는 턱이 없이 그냥 물길이었어요. 그 뒤 쪽은 오히려 더 넓었지. 용현동이란 동네에서 용일초등학교를 나왔고. 옛날에는 얼핏 흙길도 좀 있었는데 여기가 이제 뚝방이라기 보다는 돌을 쌓아놨던어스름한 그런, 완전 정리가 된 것도 아니고. 거기서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면 그때 당시가 몇 년도 이야기인가요?
제가 70년생이니까, 초등학교가 78년도에 1학년이었으니까, 4학년 때부터 용일초등학교를 다녔으니까 82년도네요. 82~83년도 그 때 기억이에요.
 
그러면 복개 공사하는 것도 다 보셨겠네요?
뭐 그냥. 덮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애매한 것이 제가 초등학교 하고 중학교까지 용현동에서 살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복개를 하지 않았었어요. 그때 이후에 복개를 한 거예요. 82년도부터 87년도까지는 복개를 하지 않았었어요.
 
그때부터 만약에 물길이 현재까지 계속 있었으면 어떤 모습이었을 것 같으세요?
물길이 있었다면, 물이 흐르니까 그것을 좀 깨끗한 물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을 좀 하지 않았을까요?
 
원래 물이 더러웠었어요?
장마 같은 것이 왔을 때는 아주 더럽지도 않았어요. 거기가 수초도 자라고,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었기 때문에. 그 물이 완전 지저분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물이 흐를 때는 맑게 보였으니까. 그 안에는 많이 안 보였어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지금 현재 인하부고 자리에 돌산이 있었는데. 돌산인 이유는 말 그대로 돌이 많아서 돌산이었기도 하고. 거기서 연 날리기도 많이 했고 그랬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어느 아이가 6.25때 버려진 폭탄을 폭탄인 줄 모르고 가지고 돌산에서 놀다가 터져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제가 기억하는 돌산은 지금처럼 나무가 많고 그런 형태는 아니었고. 말 그대로 황토빛 돌산이었어요. 거기서 놀았던 기억이 꽤 많아요. 지금의 인하부고 자리에.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연 날리기도 많이 하고 그랬던 추억들이 있어요.
 
거기에는 물은 없었어요?
그 곳에는 물은 없었어요.
 
미추홀구에 물이 많았었나요?
미추홀구에 물이 많았다기보다는, 애매한 것이 용일시장에도 한참 장마 지고, 홍수난 것처럼 가옥이 잠기고 그랬던 적이 있는데 그 물줄기가 어디서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수봉산 자락에서 내려온 물이 거기서 고여서 용일시장 쪽에서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터진 물인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겠죠. 수봉산도 아니고, 수봉산 반대편이면 이쪽에 옛날 군부대 자리. 지금의 보훈병원 자리. 그 자리도 산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물이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보훈병원 바로 뒤에서 살았었으니까.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지대가 높으니까 물줄기가 그 밑으로 쭉 타서 용일초등학교까지 흘러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훈병원 쪽에서는 언제 사셨었어요?
그때는 초등학교 2학년 정도. 3학년을 아마 거기서 보냈던 것 같아요.
 
항상 근처에 물줄기가 있었네요?
그 당시에는 물줄기를 못 봤었어요. 용정초등학교로 다녔으니까 그 당시에는 그 밑으로 내려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용정초등학교를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녔는데, 저희 집이 현재 용현시장 밑에 있었어요. 학교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용정초등학교가 언덕에서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눈이 온 날 아이들이 비료포대라던가 비닐 같은 것들을 타고 학교를 등교를 하고, 방과 후에도 거기서 놀았던 기억이 있고. 학교 바로 옆에는 배나무밭이 크게 있었어요. 사과도 있고. 그래서 학교 바로 앞에 문구점이 있었는데 그 문구점 옆 쪽 길로 해서 배서리도 좀 하고. 그 당시에는 먹거리가 그리 많지도 않았었고. 용현시장 같은 경우에는 어머님이 항상 시장 데려갈 때 만두를 먹었던 기억, 떡볶이나 순대를 먹었던 기억도 있어요.
 
미추홀구가 지금은 물이 거의 없는데 만약 지금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만약에 있었다면 그 물길이 지금의 용일사거리까지 이어졌던 걸로 아는데 가면서 확장됐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면 나중에는 어차피 부평에는 굴포천이 있듯이 그것을 조금 더 물길을 넓혀서 생태적으로 어떻게 했었을 수도 있는 거고. 지금도 복개는 했지만 그 밑으로 아직도 물은 흐를 것이고, 왜냐면 집들마다 하수구가 그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집에 빗물들이 모이는 우수라인 타고 물이 그리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물들이 계속 이어지고, 그래도 미추홀구에 그런 물줄기를 잘 살리면 사람들은 물 주변에서 많이 사니까 만약에 복개를 했지만 다시 물길을 살린다면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해서 그러면 좋지 않을까. 요즘 시대에는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곤 하니까.
 
물줄기가 그런 감성이나 그런 것들을 확실히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 계속 미추홀구에 계신 거잖아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미추홀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상투적이긴 해도 살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미추홀구. 물려준다고 하면 저를 비롯해서 어른들이 잘 해야겠죠. 더 이상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은 친환경적인 것이 가장 좋잖아요? 그렇다 보니 더 오염 안 시키고. 더 오염 안 시킨 상태 그대로 넘겨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닌가 해요.
 
확실히 예전에 놀았을 때는 다 친환경적이었을 것 아니에요?
그렇죠. 흙도 떠먹고. 옛날엔 비석치기라던지, 놀이가 다 술래잡기, 비석치기 같은 흙과 관련된 놀이들이 많았고. 그리고 넘어지거나 해서 까져도, 지금은 아스팔트니까 까지면 많이 까지지만 옛날에는 흙바닥이라 넘어지면 털고 그냥 일어나면 약 같은 것 살짝 바르면 금방 아물고 그랬죠.
 
또 물길에서 놀았던 다른 기억이 있으세요?
아까 이야기했던 축구하다가 볼이 떨어져서 주우려고 갔던 기억이나, 다방구 하다가 천을 넘나들었던 기억.
 
물고기 같은 것은 없었나요?
거의 못 봤어요. 있긴 있었겠죠. 눈에 안 띌 정도의 송사리 같은 것은 있었겠죠.
 
확실히 그 때 당시의 물은 또 달랐나봐요. 그 전에는 미꾸라지도 있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는데..
, 개구리는 봤던 기억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미추홀구에서 누리고 싶은 일상이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제가 지역에서 미술협회 작가로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술 활동을 하다 보니까 문화 예술이 더 융성해질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저도 그 안에서 잘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이 숭의목공예마을 쪽에 공방도 있고, 그 곳에서 강의도 하고 있어요. 현재 자생적으로 형성된 목공예 마을에 센터가 있고 그 곳에서 강사 일도 하고 있지만 현재 숭의목공예마을의 활성화가 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전국에 지금처럼 자생적으로 여러 공예인이 모여 있고 센터가 있고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몇 곳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미추홀이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곳을 그냥 놓아둘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활성화해서 나무란 소재가 친환경 적이니까 사람들이 여기서 더 많이 혜택을 받고. 혜택을 받으려면 안에서 내부적으로 변화도 일어나야죠. 지자체에서도 많이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관심을 가져야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