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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지, 옛날 기억에 자꾸 젖어들게 돼"_박성희
양지원
게시일 2021.11.03  | 최종수정일 2022.08.25

옛날 기억에 자꾸 젖어들게 돼



 



구술자 : 박성희 (63세, 1960년대부터 주안동 거주)

- 채록일 : 2019년 10월 25일(금) 오후1시
- 채록자 : 남희현
- 채록 장소 : 학산지속발전협의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주위에 한 집, 두 집씩 지어진 것 같고. 이게 커진 건 뚜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 쯤, 아마 그 때 즈음이 아닐까 싶어. 중학교 때 집들이 많이 들어섰던 거 같아… 거진 밭이고 논이고, 화교분들도 사셨고. 수영이랄 것도 아 니고물장구 정도지. 차 두 대가 겨우 빗겨갈 정도니까. 고 정도 폭이 될까 말까.”




선생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주안에서 평생, 부모님 전 세대부터 6.25 때도, 일제 때도 평생. 지 금 말하면 주안사거리에서 신기사거리 가기 전에 살아온 박성희 라고 합니다. 주안초등학교가 이사간 곳이니까 우리 사는 집에선 주 안사거리에서 학교를 가는데 예전부터 경인국도가 있었고, 예전 이 큰 길(신기사거리에서 주안으로 난 미추홀대로)은 없었고 우리 사 는 데는 조그만 언덕이 있어서 그 마을을 지나면 승기천이 흐르고 여기는 전부 논바닥이었어. 우리가 기억하는 건 기억이 뜨문뜨문하고 그 당시 주안초등학교(주안2,4동 재개발구역)가 있었으니까 새미마을이라는 곳에서 우리 동네로 와서 같이 어울려서 넘어가, 신비마을에서 오는 아이들이 여기 다리를 많이 다녔지. 이름보다는 천다리로 부르고, 그때는 승기천이라고 하지 않았어.
동양장 사거리에서 오는 아이, 동암에서도 오고 논길, 밭길로 해 서 학교를 다녔어. 동암이 나중에 3,4학년 때 학교가 생겨 가지고 주 안염전 건너서 다니다가 다른 학교로 간 아이도 있었어. 직선도로 없이 재같이 조그만 언덕을 다녔지. 사진이 있으면 좋을 텐데. 옛날 에 가족사진이나 찍으면 찍었지 누가 도로 같은 걸 찍었겠어. 모르 지. 사진기자가 있었으면.

학교가는 거리가 얼마나 걸렸을까요? 
한참 걸렸지. 실질적으로 성인의 걸음으로도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그 당시엔 직선거리도 아니고 꽤 걸린 거지. 57년생이야. 초등학교 저학년, 그러니까 1학년에서 3학년의 기억이니까. 요쪽 친구들이 같이 넘어갔으니까 고학년 때는 거기 또 가서 놀지도 않았지. 이 지역이 전부가 스케이트장이라구. 그 당시에 인천에서는 스케이트장으로 제일 크니까 주변에서, 여기 지역 사람뿐만 아니라 많이 왔지.

그때 기억하면 어떤 느낌, 생각이 드나요? 
없지만 좋았지. 부는 없었지만 놀 거리가 많았지. 어릴 때 무슨 고민이 있겠어. 지금에야 나이 차니까 어떻게 사냐 고민이 있고 그런 거고.

선생님께서 이야기해 주시는 것은 주안2동 일대고, 거기서 학교 가고, 아니면 친구들과 이 일대를 다니시던 기억이지요? 
65년에서 68년 사이의 이 근방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새미마을 친구들이 꼭 천다리를 건너서 이쪽으로 오는데 초등학교 동창회도 하는데 이쪽 얘들이 만나질 못해. 어디를 이사 갔거나 했겠지. 동네가 전부 개발이 됐으니까. 이쪽도 개발이 되면 나도 이사를 갔겠지만 개발이 안 되는 바람에 남아있는 거구. 예전 그 터는 아니고.
78년도인가 아시안 게임 하면서 큰 도로도 생기고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고. 이 큰 도로 자체가. 그전보다 넓어진 거지. 도로 자체가.

승기천 복개공사한 건 혹시 기억나세요?
그건 기억은 아예 안 나지. 이거 크게 된 다음에. 나는 주안역 주 변 먹거리들이 많고 하니까 이쪽으로 많이 다녔지. 부평 쪽으로도 가고. 농촌 쪽이니까 고등학교 가고 대학갈 때는 잘 안 다니지. 이쪽 (새미마을) 아이들이 이쪽으로 넘어왔으니까 변화된 것이 기억나 는데 우리는 발달된 쪽으로 다니니까 다닐 기회가 아예 없지.

승기천이 길에 바로 있는 게 아니라 좀 위쪽에 있다고 하셨던 걸 봤어요.
그러니까 여기 천다리 있는 데라구. 왜냐면 신기시장 있으면 여기가 장화 없으면 못 다니는 길이라고 했어. 옛날에는 이게 5번 버 스가 다녔어. 미니버스야. 지금은 대형버스고 어디가면 35인승 그런거 있는 건데 이 버스가 우리 동네 앞으로 해서 이렇게 돌아서 구릉지 산소가 있어. 여기 한라아파트, 조그만 아파트가 있었는데 여기 철거가 됐고. 논길로 꾸불텅하니 가겠지. 신기시장 종점으로 가는 차가 있으니까. 여기도 직선도로가 어느 정도 되면서 꺾였을 수 도 있겠지. 그리고 화장터가 있었어. 그 당시에는 문학산에 레이더 기지가 있었어. 우리가 옛날에는 이 쪽(주안) 에서 보였어. 그 당시에 송도 쪽으로 넘어가는 길도 있었는데. 차가 있을 리가 없지. 허허벌 판이었으니까. 나중에 군대 제대하고 예비군 훈련받으러 가면 허허 벌판 한가운데 순복음 교회가 있었어. 팔십몇 년도일 텐데 그 주위 가 워낙 발전되고, 터미널도 이쪽으로 생겼으니까. 터미널도 미추 홀구 이쪽에 있었는데 나중에 그쪽이 생긴 거지.
그 당시의 기억으로 집들이 있는 사람 외에는 굳이 넘어갈 사람 이 없었지. 허허벌판에 논바닥인데 누가 거길 넘어가겠어. 그때 우리 여름에는 주안 염전 가서 수영 치러 가고 그랬지. 더우 면 물놀이하러 가자 그러면 그 바람에 (승기천에) 몇 번 가게 된 거지. 그렇게 멀지는 않으니까.

지금도 그 친구들 만나고 계시다고 했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 있 으면 이야기해주세요.
그런 거 자체는 크게. 이쪽에서 기억나는 거는 여기서 놀다가 수 영하고 그런 것밖에. 놀다가 그 당시 뱀 같은 거 나오면 후다다닥 나 오고. 물뱀인 거지.

남자아이들에게는 노는 곳이 지천이었겠어요. 
보통 동네에서 많이 놀고. 특히 여기는 또래가 많았어요. 우리 또 래가 열다섯 몇 명이 되었으니까. 그게 한 동네가 아니라, 여기 무슨 동네, 이쪽은 무슨 동네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같이 겨울 되면 축구 경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독정이 고개나 수봉산은 판잣집으로 이주해서 온 느낌이 많은데 선생님께서 사신 곳은 그런 느낌이 아닌 것 같아요. 
워낙 농사짓는 사람들, 터가 잡혀 있는 사람들이었어. 몰라. 나도 어렸을때 독정이고개 어디에서 살다가 이사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큰 집이 여기 계속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잠시 갔다가 오신 것 같아.

주안2,4동 재개발하고 그럴 때 동네 분위기는 달랐겠어요? 
오래 있었던 분들이 많았으니까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은 그 전에 이사 가고 그랬으니까. 본토 사람들 거의 없지. 내가 살던 동네에 상조회라고 동네 어르신분이 돌아가시면 친목회로 지금도 운영이 되고 하는데 사람들이 연세 드신 분들이 점점 돌아가시고, 그러면서 자식들도 떠나가고. 기존 본토 사람들은 없고, 외지 사람들이 이 동네에 찼지.

이쪽 분들은 언제 이주하셨을까요?
초등학교 들어가기전부터 주위에 한 집 두 집씩 지어진 것 같고. 이게 커진 건 뚜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때 쯤, 아마 그 때 즈음이 아닐까 싶어. 중학교 때 집들이 많이 들어섰 던 거 같아. 주안은 인하대가 들어서면서 많이 활성화됐고, 서울서 내려와서 여기서 버스타고 인하대 가고 그랬으니까. 그 바람에 주 안이 좀 커졌고, 여기 공단 때문에 먹자골목도 있었고. 구청도 예전 에 보건소 자리에 있었다고. 우리 어릴 때도 제일 먼저 있었던 게 구청이었다고.
거진 밭이고 논이고, 화교 분들도 사셨고. 수영이랄 것도 아니고 물장구 정도지. 차 두 대가 겨우 빗겨갈 정도니까. 고 정도 폭이 될까 말까.

골목길로 다니다 확실히 여기, 용일사거리 쪽이 넓어진 거는 확실하네요.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을 가려면 물길이 세 개가 있었다고. 폭이 좁은, 실지로는 농수로지. 길 쪽이 가장 컸던 거 같은데 논농사 지으려면 여기서 물을 퍼올려야 하니까 그런 개념이지.

친구들하고 어떻게 노셨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되면 스케이트 타고. 그 바람에 군대 가서 스케이트타고 합숙 훈련도 하고 그랬으니까. 군대 갔는데 부대마다 특 성이 있는데 강원도 추운 데 있으니까 그쪽 양구 쪽 있는데 평소에 는 축구하고, 겨울 되면 연대별로 시합하고 사단별로 시합하고. 그 것밖에 안됐지. 선수는 안되고.

저도 아이 데리고 연수동까지 가서 스케이트 태워주고 그랬는데. 되려 주변에 있었으니까.
그 당시 일반 스케이트 타다가 물려받아 생긴 스케이트 탔던 거지. 여름에는 개울 다리 가서 수영이라는 개념보다는 물속에서 물놀이하고, 고기 잡으면 잡는 거구 그런 거지.

승기천 기억하면 비가 많이 와야 무릎, 아니면 더 차기도 했다고 했는데.
어려서도 무조건 가는 게 아니고. 승기천 근처 지나는 애들이 가자하면 가는 거니까.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는 차 있긴 했어. 농수로 였으니까.

고기 잡으면 뭐하셨어요?
그때 어려서는 모르니까 디스토마(1)있다 이런 게 아니고 생으로 먹은 거 같아. 큰 거도 아니고 요만하니까. 개구리 잡으면 뒷다리는 구워먹고, 몸통은 닭모이 주고. 이 자리가 대보름 되면 쥐불놀이하 지. 이쪽에 탈 게 없으니까 여기서 했지. 옛날에는 짚단을 바깥에 두는 게 아니라 집으로 갖고 간다고. 집에다 땔감으로 쌓아놓는다고. 동네에 논 있고, 밭있는대서 하고.

기억 떠올리시면서 어떤 기분이나 느낌 있으세요? 
근데 그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새미마을 쪽은, 옛날에는 가정방문 같은 게 있었다고. 선생님이 가까운 쪽에 전달(방문)하면, 전달 전달해서 내가 맨 마지막이었다고. 그래서 새미마을까지 넘어가는 거지. 선생님은 집을 모르니까. 그 바람에 새미마을에 세 명인가 친구가 있었는데 몇 번 다녀간 거지. 선생님이랑 이렇게 가면 중간에 녀석들이 놀다가 넘어오면 싹하고 도망가고. 그럼 집에 가면 없어. 옛 날 어른들은 밭에서 일하시니까.

그 때는 아이들끼리 알아서 먹고 놀고 그랬던 시절이었나 봐요.
옛날엔 밭에 가면 무 뽑아먹고, 당근 뽑아먹고 먹을 게 밭에 가면 있으니까. 쓱쓱 씻어서 별 탈 없이 먹었지. 개념이 없으니까 물고기 그냥 먹고. 누군가는 먼저 먹으니까. 쟤도 먹으니까 너도 먹어 하니까 같이 먹는 거지.

여자애들은 같이 안 놀아요?
또래에 남자들이 많았어. 한동네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 가 면서 가면서 옛날에는 여기 뭉쳐있고, 조그만 언덕이 있거나 논밭 이 있고. 지금 시골 같은데 가면 몇 집 몇 집 모여 있었지.

만약 물길이 계속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복개를 안했다면? 
그랬다면 동네가 제대로 살릴 수 있었을까? 물길이 있으면 그 옆 에 사람이 다니거나 달구지가 다녀야 하잖아. 물길 옆에는 그래야 여기서 농사 지은 거 집에 가서도 타작하고. 싣고 가야되니까 그폭 은 있었지. 그래야 하니까 달구지 타고 갔던 기억도 나지. 덜덜덜 거리지. 옛날엔 자주 가진 않지만 일손이 모자르면 가기도 하고. 지나 가면 어른들이 타라고 하면 타고. 걸어 다니고 뭐하고 하니까.

마을 일도 많이 하시고, 봉사하시니까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 다르실 것 같아요.
그것보다는 옛날 기억에 좀 자꾸 젖어드는 것 같아. 생활 자체가 개인사업을 하니까 통장을 하고, 통두레 일도 하고. 점점점 그 쪽으로 가까워진 거지. 생활 자체가. 옛날 생각보다는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리던 것이 좋았던 거지. 지금은 친한 친구가 서울에 한 명, 성남 시 · 안산시에 둘, 1년에 두 번 1박2일로 노는 거지. 집은 서울인데 경주에 있는 친구도 있으니까 로테이션으로 인천에서 한 번, 대전 에서 한 번, 경주에서 한 번 그렇게 만나지.

그렇게 만나시면 무슨 이야기 나누세요?
남자들은 얘기보단 술 먹고 당구 치고, 그러다가 옛날이야기 나 오면 옛날이야기하고 그러지. 군대 같이 했던 사람들하고는 군대 이야기하고.

만난 사람하고 꾸준히 만나시나 봐요.
새로운 사람보다는 기존에 만난 사람들 지속적으로 가는 거 같아.
나이 들면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 왜냐면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게 겉만 아는 거지, 나중에 어떻게 해꼬지(해코지) 당할 수 도 있고. 내가 그럴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은 겉만 만나지 깊게 만 나지 못해. 단막적으로 일이 있어 그때만 만나는 거지 지속적으로 만나지는 못하더라고. 되려 한 시절을 같이 보냈던, 같이 오래 있던 사람이 그때 이야기 를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으니까. 추억이 있어야 오래 갈 수 가 있지. 군대에서 만난 사람이 서산에 있어. 한 사람이 마침 김해에 서 거기까지 가서 동네 마을회관 찾아가서 누구누구 이름 대면 그 사람들 아니까. 연락처를 안주고 그냥 왔다는 거야. 그래서 다시 간다고.

요즘같이 시시때때로 하는 일이 전시되는 시대에 색다른 이야기네요.
38년 전에 만난 사람이니까 잘 모르니까.(웃음) 초등학교 친구는 항상 그곳을 다녀야 했으니까 그곳을 잘 기억할 텐데. 이쪽(새미마 을) 사는 그 놈은 기억이 뚜렷하겠지. 학교를 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테니까.

선생님께서는 여기에서 계속 사셨고, 지역 일도 좋아서 하셨다고. 선생님께서 미추홀구는 어떤 의미세요? 
좋아서 한 게 아니라 자연히 그 자리가 되니까 한 거지. 하다 보니 까 그렇게 되었어. 내가 목적이 있어서 이걸 하겠다 해서 한 게 아니라 어울리며 하다보니 그 방향으로 간 거구.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한 건 아니지. 내가 큰 일을 하기 위해서 뭘 하고 그런 게 아니니까. 좀 하다 보니까 범위가 넓어지고 그런 거지.
고향이지. 어차피. 내가 태어나서 군대 생활 외에는 다른 데서는 살지 않았으니까.

다음 세대에 물려줄 미추홀구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우리 집 주위도 그렇고 재개발이 돼서 전부 아파트가 된다고. 이 거는 정부정책인데 이거는 아니라고 보는 거지. 옛날 집, 단독주택 도 수리해서 가게 해야 하는데 아파트 만들어서. 편하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고 동네에 포장마차도 있고, 조그만한 선술집도 있고 그게 사람 살면서 얘기하고 그게 좋은 거지. 달랑 아파트만 져 놓고 위아래 오르락내리락하면. 요새 미추홀구가 아파트 단지가 된다는데 그건 포인트가 잘못한 거 같아.
지금 얘들은 아파트하고 학원밖에 생각 안 날걸. 옛날보다 갖고 있는 거구 뭐고 풍족해졌는데 아파트별로 차별을 두고 울타리를 치는 거지. 그러니까 왔다 갔다 하지 않지. 같이 둥글둥글해야 하는데. 개발도 어쩔 수 없는데 아직까지는 주위에 몇 개가 있는데 기존 있는 데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문화공간을 주던지 그래야 하는데. 사업성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휴식할 수 있는,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는데. 투자하는 데는 수익성이 없으면 안 되니까 구에서 좀 하던가.

통두레 활동하실 때 주변분들이 선생님을 많이 신뢰하는 모습 봤어요. 어떻게 운영할 수 있었나요? 
내가 운영한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이 한 거지. 나는 앞에서 문제점 과 방향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그 사람들이 했지. 독단적으로 하면 그 사람들도 안하지. 통두레는 옛날에 전부 농사를 지었잖아. 지금이야 트랙터 있으면 얼마 주면 일이 됐지만 모를 심던 쟁기질을 하던 사람이 있어야 뭘 할 수 있었던 거야. 사람들이 오늘은 누구네 집 꺼, 또 누구네 집 꺼. 친목개념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품앗이 하는 개념이지. 그걸 두레라 하는데 각 동이 통단위로 있으니까 마을에 있는 일을 사람들이 해서 그런 모임을 갖고, 뭘 할 것인 지 결정했지. 통장하면서 했지. 한 사람 이사 가고 사람들이 빠지고 있어. 거기서도 뭔가가 나오겠지만. 아파트 들어서면 젊은 사람들 이 모여서 아이들 가르치고 하는 움직임들이 있을 거 같아. 그래야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도 될 수 있겠지. 지금 하고 있는 게(육아협동 조합, 작은도서관 등) 있으니까 그런 자리를 마련해서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지. 아파트 지으면 경로당도 짓고 마을회의도 운영할 수 있게 하고, 헬스장도 만들잖아. 남보다 우리 아파트 값어치 좋게 하려면 활성화되고, 이런 게 더 좋다 하면 좋겠지. 내가 내 가치 를 좋게 받으려면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같이 노력하면 좋지.

미추홀구에는 참 귀한 분이 계세요. 통두레 하면서도 이 인터뷰 하면서도 미추홀에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미추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얘들 보면 저 아이들에게 무슨 추억이 있을까 싶은데. 학교 다녀 오면 학원 가야 하니까. 혼자 있으면 놀 게 없으니까 게임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승기천보다는 어려서 초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 생각나고. 우린 80명이 넘었다구. 콩나물처럼 꽉 차 있었지. 오전반 오후반도 3학년 까지 했고. 요즘엔 학교 운동장이 없어. 이건 아닌데. 아이들 뛰어다 녀야 하는데. 체격은 커졌는데 몸은 약해. 옛날엔 먹을 거 없으니까 배꺼진다고 뛰지 말라고 했는데. 승기천의 인위적인 복원이나 현대 건축물은 반대야. 옛 정취가 있는 풀과 흙이 있는 도랑 정도의 복원이면 좋겠어. 어린이나 청·장년 그리고 노인이 어울려 공존할 수 있는 동네로 회귀하면 얼마나 좋을까. 꿈이겠지....




(1) 흡충강 이생목(二生目)에 속하는 편형동물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