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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33개의 기록물
  • 논산시장의 일부
    1920년대경 논산의 정기시장 장날 풍경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전면에는 論山市場の一部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시장의 한 골목에 점포와 노점, 거래를 위해 모인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대정하토인(大正鳩印) 계열의 판본으로,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에서 제작한 자료로 판단된다. 기와지붕의 점포들이 좁은 시장길 양쪽에 이어지고, 점포 앞에는 천막과 차양을 치고 각종 상품을 진열한 노점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길에는 갓·삿갓·모자 등 다양한 쓰개를 착용한 사람들이 빽빽하게 오가며, 등에 짐을 지거나 물품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과 좌판에서 물건을 거래하는 상인들이 함께 나타난다. 특정 상품이나 점포를 중심으로 촬영하기보다 시장 전체를 가득 채운 인파와 거래 모습을 강조하여, 당시 논산장의 높은 집객력과 장날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논산장은 20세기 초 이전부터 충청남도 남부의 주요 정기시장으로 성장하였다. 1905년경의 조사기록에서는 논산천이 취락 중앙을 흐르고 수운 이용이 가능하여 상업이 매우 번성했다고 기술하며, 3일과 8일에 시장이 열려 약 3,000명에 이르는 사람이 모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수많은 상인과 주민이 시장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본 사진그림엽서의 도상과도 잘 부합한다. 1911년 호남선 논산역이 개업하면서 논산에는 기존의 육로와 하천 수운에 철도 교통까지 더해졌다. 1923년 충청남도 시장자료에서도 논산은 강경 등과 함께 도내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언급되며, 특히 철도와 하천 교통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장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본 자료는 단순한 향토 풍속 장면뿐 아니라 철도·도로·하천 교통을 배경으로 지역의 농산물과 생활물자가 집산되던 논산의 유통 중심지 모습을 기록한 자료로 볼 수 있다. 본 사진그림엽서는 시장을 건축물이나 시설 중심으로 소개하기보다 장터를 이용하는 다수의 주민과 상인, 상품과 노점이 뒤섞인 생활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논산시장을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조선의 대표적인 장시 풍경으로 재구성하여 유통한 사진그림엽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 #다이쇼 #논산시장 #논산 #논산시 #論山市場 #논산오일장 #전통시장 #재래시장 #오일장 #노점상 #노점 #보부상 #행상 #장터 #호남선 #논산역 #大正鳩印
    생산일자 미상
  • 목포소항 조선우선회사 부근
    1920년대경 목포소항(木浦小港)의 조선우선회사(朝鮮郵船會社) 부근 항만경관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로, 목포의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이 발행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木浦小港 朝鮮郵船會社附近이라는 원표제와 (井堀小間物店發行)이라는 발행표기가 인쇄되어 있다.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에도 정굴소간물점이 발행한 「朝鮮木浦市街全景」 사진그림엽서가 복수 소장되어 있어, 이 업체가 목포의 시가지와 항만경관을 소재로 사진그림엽서를 제작·판매했던 지역 발행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목포소항의 잔잔한 수면과 그 양편에 정박한 다양한 선박이 넓게 나타난다. 화면 왼쪽에는 높은 연돌과 선실을 갖춘 기선 여러 척이 정박해 있으며, 오른쪽 해안에는 돛대를 세운 다수의 범선과 연안 운송선이 밀집해 있다. 중앙에는 작은 소형선 한 척이 수면을 가로지르고 있고, 항만 안쪽에도 여러 선박이 이어져 있다. 근대적인 증기선과 기존의 연안 범선이 한 공간에 함께 정박한 모습은 식민지기 목포항에서 서로 다른 규모와 방식의 해상운송이 병존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이 일대는 朝鮮郵船會社附近, 즉 ‘조선우선회사 부근’으로 소개되어 있다. 조선우선회사는 부산기선주식회사·목포항운회사·요시다회조점 등 기존 연안 해운업자들이 통합하여 1912년 설립된 회사이며,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연안항로를 운영하였다. 목포에도 1912년 조선우선 목포출장소가 설치되어 목포와 조선 연안 각 항구를 잇는 해상운송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목포는 1897년 개항 이후 서남해 연안과 일본을 연결하는 항구로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항만을 중심으로 운송·창고·정미·면화·수산업 등 여러 산업과 상업시설이 집중되었다. 조선우선 역시 이러한 목포의 해운망에 깊이 관여한 주요 운수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본 자료는 특정 회사 건물 자체보다 그 주변의 수면과 여러 종류의 선박을 화면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조선우선회사가 위치했던 목포소항 일대의 해상교통·화물운송 경관 자체를 목포의 대표적인 항만 이미지로 재구성하고 있다. 다만 화면 왼쪽에 정박한 기선들의 선명이나 회사 표지는 판독되지 않으므로, 이들을 조선우선회사 소속 선박이라고 직접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본 자료는 조선우선회사 부근의 목포소항에 정박한 기선·범선과 항만 활동을 기록한 사진그림엽서로 기술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굴소간물점 #목포항 #목포 #목포소항 #소항 #증기선 #해안 #井堀小間物店 #조선우선회사(朝鮮郵船會社) #연안항로 #朝鮮郵船木浦出張所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 #木浦航運會社 #汽船 #정굴상점 #井堀商店
    생산일자 미상
  • 마산역
    1920년경 마산의 마산역(馬山停車場)과 역전광장의 모습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로, 산성옥상점(山城屋商店)에서 발행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일본어로 馬山停車場, 영문으로 MABAN STATION, 발행표기로 (山城屋商店發行)이 인쇄되어 있다. 외부 자료에서도 산성옥은 마산 전경·마산부청·마산항·군사시설 등 마산 지역의 여러 경관을 사진그림엽서로 발행한 업체로 확인되며, 봉투를 포함한 10매 구성의 「馬山風景繪葉書」 세트도 현존한다. 엽서 전면에는 목조로 지어진 마산정거장 역사와 넓은 역전광장이 나타난다. 역사 중앙 출입구와 건물 주변에는 많은 인물이 모여 있으며, 광장에도 양복과 모자 차림의 남성, 한복 차림의 남녀와 어린이 등 다양한 인물들이 오가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제복과 모자를 착용한 철도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이 뒷모습으로 서 있고, 역사 출입구 주변에도 여객과 방문객이 밀집해 있어 당시 마산역의 활발한 이용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개별 인물의 신분과 해당 장면이 특정 행사와 관련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마산역은 러일전쟁기에 일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부설한 삼랑진―마산 군용철도의 종착역으로 출발하였다. 마산선은 1905년 개통하였으며 이후 통감부 철도관리국에 이관되어 여객과 화물 수송을 담당하였다. 철도의 개통은 마산항과 내륙의 경부선 철도망을 연결하면서 마산이 항만·상업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교통기반이 되었다. 동시에 삼마선 자체가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반도 군사·경제적 진출 과정에서 건설된 군용철도였다는 역사적 성격도 지닌다. 당시 마산역은 오늘날의 마산역과 다른 마산 시가지 남부의 월포동 일대에 있었으며, 항구와 일본인 거류지에 가까운 위치에서 여객과 화물을 연결하였다. 이후 구마산역과 북마산역이 추가되면서 마산의 철도시설은 확대되었다. 본 자료는 이러한 철도망 확대 과정에서 마산역이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사람들이 집결하고 도시와 외부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도시공간으로 기능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산성옥은 마산역뿐 아니라 전경·마산부청·마산항·군부대 등 당시 마산의 주요 시설을 반복적으로 사진그림엽서화하였다. 따라서 본 자료 역시 역사를 단순 기록하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근대적 교통시설인 마산역과 역전의 활기를 마산을 대표하는 도시경관의 하나로 선택하여 상품화·유통한 사진그림엽서로 이해할 수 있다.
    #산성옥상점(山城屋商店) #산성옥 #마산역 #마산 #마산만 #기모노 #마산정거장 #정차장 #정거장 #마산선 #월포동 #군용철도 #馬山風景繪葉書
    생산일자 미상
  • 조선명소 시리즈 - 용산역
    1920년대 일출상행(日之出商行)에서 발행한 조선명소 사진그림엽서 세트 중 용산역 모습을 수록한 자료이다. 우측 상단에는 일본어로 (朝鮮名所)龍山驛, 영문으로 RYUZAN STATION, KEIJO.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다. 화면에는 큰 박공지붕과 목재 골조를 외벽에 드러낸 서양식 목조 용산역사가 정면에서 넓게 제시되어 있으며, 두 개의 주요 박공부와 건물 전면을 길게 연결한 차양, 굴뚝 등이 확인된다. 역사 앞에는 넓은 비포장 광장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소수의 인물과 차량 또는 인력거로 보이는 교통수단이 나타난다. 용산역은 경인선 개통과 함께 설치된 뒤 러일전쟁기 일본의 군용철도 건설과 용산 일대의 군사기지화 과정에서 중요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기존의 소규모 역사를 대신하여 1906년 대규모 목조 역사가 건립되었으며, 이후 경의선과 경원선의 분기점이자 경부선과 연결되는 철도 교통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용산역 주변에는 철도공장·철도관사·철도관리기관과 일본군 병영 등이 집중되면서 용산 일대에 새로운 철도·군사도시 경관이 형성되었다. 이 사진그림엽서는 용산역을 단순한 교통시설의 기록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넓은 역전광장 너머로 서양식 역사를 화면 중심에 배치하고 이를 朝鮮名所라고 명명함으로써 새롭게 형성된 근대적 철도시설을 경성의 볼거리이자 도시경관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일출상행이 철도역·교량·관공서·호텔 등 근대적 기반시설을 반복적으로 사진그림엽서화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서, 식민지기 경성의 교통망과 도시공간이 관광·기념 이미지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일출상행(日之出商行) #히노데 #용산역 #호남선 #경부선 #철도 #철도역 #역 #역전 #龍山驛 #용산정거장 #용산정차장
    생산일자 미상
  • 한강 인도교
    1920년대 초중엽, 일출상행(日之出商行)에서 발행한 한강 인도교 모습이 담긴 사진그림엽서이다. 한강 인도교는 1917년 개통하여 용산과 노량진 사이를 이어주던 주요 교통로였다. 자료 중앙에 철제 트러스 구조의 한강인도교가 원근감 있게 이어지고 있으며, 교량 입구 좌우에는 여러 개의 등기구를 설치한 장식 기둥과 흰색 난간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경의 도로는 아직 비포장에 가까운 상태이며 인물이나 차량을 배제한 채 교량의 구조와 진입부를 화면 중심에 배치하여 새롭게 건설된 근대 교량 자체를 명소로 강조하고 있다. 도상은 1917년 처음 건설된 한강인도교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용산 쪽 소교가 유실된 뒤 재건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29년 재개통된 교량에는 전차의 복선 궤도까지 설치되었다. 현재 도상에는 이러한 궤도가 나타나지 않고 초기 교량의 좁은 도로와 진입부 시설이 확인되므로, 사진의 촬영시기는 1917년 10월 이후~1925년 7월 이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본 자료는 새롭게 건설된 한강인도교를 단순한 교통시설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화면 중앙에 철제 트러스 구조와 장식적인 진입 시설을 대칭적으로 배치하여 근대 경성의 새로운 도시경관이자 관광명소로 재구성하고 있다. 일출상행이 이러한 교량·철도·관공서·호텔 등 근대시설을 조선명소 사진그림엽서로 반복적으로 제작·판매했다는 점에서, 당시 사진그림엽서가 도시의 변화와 근대적 기반시설을 시각적으로 소개하고 유통하는 매체였음을 보여준다.
    #일출상행(日之出商行) #히노데 #한강 #한강 인도교 #인도교 #도교 #가로등 #트러스트 #서울 #경성 #한성 #한양 #보행교 #용산 #노량진 #한남 #을축대홍수 #대홍수 #人道橋 #漢江 #노들섬
    생산일자 미상
  • 삼남은행 이리지점
    1924년 이리문화회 인쇄부(裡里文化會印刷部)에서 발행한 삼남은행 이리지점의 모습이 담긴 사진그림엽서이다. 기와지붕을 얹은 단층의 삼남은행 이리지점 건물이 정면에서 수록되어 있으며, 건물 왼쪽 기둥에는 은행 지점을 알리는 세로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하단 중앙에는 ‘三南銀行裡里支店’이라는 표제가, 왼쪽에는 ‘裡里文化會印刷部發行’이라는 발행표기가 인쇄되어 있어 이리 지역의 시설과 도시경관을 소개하기 위해 제작된 지역 사진그림엽서임을 알 수 있다. 삼남은행(三南銀行)은 1920년 전주에서 설립된 민족계 지방은행으로, 전라북도 일대의 지주와 상공인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으며 1924년 3월 이리에 지점을 개설하였다. 당시 이리는 호남선 철도와 농산물 집산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던 상공업도시였으며, 1920년대 후반 자료에서는 삼남은행 이리지점의 예금액이 50만 원을 넘어 이리 지역 금융기관 전체 예금의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금융기관으로 성장한 것으로 소개된다. 1926년 『경성일보』에는 삼남은행 이리지점의 개축을 다룬 기사도 확인되어 당시 지점 시설의 정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삼남은행은 1928년 조선총독부의 은행제도 개편과 자본금 요건 강화 속에서 조선상업은행과 합병하였으며, 이에 따라 삼남은행 이리지점도 독립된 삼남은행 지점으로서의 역할을 마쳤다. 본 자료는 1920년대 이리의 금융기관과 상업도시로서의 성장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역의 주요 근대 시설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하여 소개·유통한 사례이다.
    #이리문화회 인쇄부(裡里文化會印刷部) #이리 #익산 #裡里 #裡里文化會 #三南銀行 #삼남은행 #은행 #益山 #지방은행
    생산일자 1924.03.00
  • 조선풍속 시리즈 - 음식점 앞
    1920년대 부산오죽당서점(釜山呉竹堂書店)에서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풍속 사진그림엽서 시리즈 중 음식점 앞 상인과 손님의 모습이 담긴 자료이다. 목조 건물의 음식점 앞에 전통복식을 착용한 남녀가 배치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삿갓을 쓰고 긴 지팡이를 든 남성이 서 있고 중앙에는 갓을 쓴 남성이 짐과 함께 쪼그려 앉아 있으며 오른쪽에는 여성이 서 있는 모습이 채색되어 있다. 출입구 옆에는 ‘飲食店營業’이라고 적힌 세로형 간판이 걸려 있어 해당 건물이 음식을 판매하는 영업점임을 확인할 수 있고, 창문에도 여러 글자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어 당시 음식점의 외관과 영업공간을 보여준다. 전면 하단에는 ‘(俗130) The Eating-House of korea. 飲食店門前 (朝鮮風俗)’이 인쇄되어 있어 조선풍속 시리즈 가운데 ‘음식점 문앞’을 소재로 한 제130번 자료임을 알 수 있으며, ‘複製不許’라는 표기를 통해 해당 도상의 무단복제를 금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 도상·동일 번호의 현존 판본은 경성 일출상행 발행 자료로 확인된다. 근대기 음식점은 시장·도시·교통로 등 사람의 이동이 많은 공간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생활시설이었으며, 본 자료에는 짐을 휴대한 인물들이 음식점 앞에 머무는 모습이 함께 나타나 당시 음식점이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식사와 휴식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엽서는 이러한 일상적 상업공간과 이용객의 모습을 ‘朝鮮風俗’이라는 유형 아래 배치하고 일본어와 영어 표제를 병기함으로써, 조선의 생활문화를 외부 관람자의 감상·관광 대상으로 재구성하여 유통한 사진그림엽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부산오죽당서점(釜山呉竹堂書店) #오죽당 #釜山呉竹堂 #呉竹堂 #식당 #밥집 #곰방대 #삿갓 #시장 #상인 #飲食店 #주점 #주막
    생산일자 미상
  • 조선풍속 시리즈 - 지게꾼
    1929년 동경송성당(東京松聲堂)에서 제작한 「조선풍속(朝鮮風俗)」 계열의 채색 사진그림엽서로, 지게를 이용하여 짐을 운반하던 지게꾼을 소재로 한 자료이다. 전면에는 흰색 계통의 전통복식을 착용하고 머리를 동여맨 남성이 지게를 등에 진 채 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채색되어 있으며, 허리춤에는 작은 주머니가 매달려 있다. 인물 뒤편에는 지게의 짐받이 구조가 확인되고, 주변에는 수목과 수변을 표현한 풍경이 배치되어 있다. 전면 하단에는 ‘チゲクン’과 ‘(朝鮮風俗)’이 인쇄되어 있어 조선의 지게꾼을 하나의 풍속 유형으로 소개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지게꾼은 시장 어귀나 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지게를 지고 기다리다가 운반할 짐을 가진 사람과 흥정하여 물건을 나르던 직업적 운반노동자로, 인력거·수레 등이 접근하기 어려운 골목이나 비탈길에서도 물자를 운반할 수 있어 근대 도시와 시장의 일상적인 운송을 담당하였다. 뒷면에는 솔방울을 도안화한 상표와 ‘TRADE MARK SHOSEIDO TOKYO JAPAN’이 인쇄되어 있어 도쿄의 동경송성당에서 제작한 판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소면은 통신란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형식이며 ‘郵便はかき’가 사용되어 있어 우편엽서의 서식 변천을 기준으로 1918년부터 1932년 사이에 제작된 형식에 해당한다. 또한 뒷면에는 남대문을 도안화한 ‘京城參觀紀念’ 관광기념 스탬프가 찍혀 있고 ‘名産商會’, ‘南大門前’ 및 ‘4.5.9’가 확인된다. 명산상회는 경성 남대문 앞에서 명소 사진그림엽서 등을 제작·판매한 업체로 확인되며, 주소면의 형식과 스탬프의 연도를 함께 고려하면 이 실물은 1929년 5월 9일 명산상회에서 경성 관광기념 스탬프가 날인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자료는 1920년대 조선의 운반노동자인 지게꾼의 모습을 일본에서 제작된 ‘조선풍속’ 사진그림엽서의 소재로 유형화한 사례인 동시에, 동경에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가 경성의 관광기념품점에서 판매·유통되고 관광객에 의해 소비되었던 구체적인 유통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도쿄 쇼세이도(東京松聲堂) #東京松聲堂 #동경송성당(東京松聲堂) #송성당 #지게꾼 #노동자 #조선풍속 #松聲堂 #朝鮮風俗 #チゲクン #지게 #짐꾼 #京城參觀紀念 #名産商會 #남대문 #숭례문
    생산일자 1929
  • 조선명소 시리즈 - 경성 용산 한강철교(경부선)
    1920년대 일출상행(日之出商行)에서 발행한 「조선명소(朝鮮名所)」 계열 사진그림엽서로, 경성 용산과 노량진 사이의 한강을 가로지르는 한강철교의 모습을 수록한 자료이다. 엽서 전면에는 철도 선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트러스 구조의 한강철교가 중심에 배치되어 있으며, 왼쪽으로는 이와 나란히 놓인 또 하나의 철교가 확인된다. 전면 하단에는 일본어로 ‘(朝鮮名所)京城龍山漢江鐵橋(京釜線)’, 영문으로 ‘(34) The Kanko Iron Bridge.’가 인쇄되어 있어 한강철교를 경부선의 주요 철도시설이자 경성의 명소로 소개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후쿠오카시박물관에 동일 표제의 사진그림엽서가 소장되어 있으며 발행처는 경성 일출상행으로 확인된다. 한강철교는 1900년 7월 5일 준공된 한강 최초의 근대식 교량으로, 경인선 철도 운행을 위해 건설되었다. 이후 1905년 경부선 개통 등으로 철도수송량이 증가하면서 기존 철교의 상류 측에 제2철교가 추가로 건설되어 1912년 9월 준공되었고, 두 철교를 이용한 복선 운행이 가능해졌다. 본 자료에는 두 철교가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 수록되어 있어 적어도 제2철교가 완공된 1912년 이후의 한강철교 경관을 보여준다. 한강철교는 경인선과 경부선을 비롯한 철도망을 통해 경성과 인천·부산 등지를 연결한 주요 교통시설로, 일제강점기 사진그림엽서에서는 대규모 철제 트러스 구조와 철도망을 근대적 경성의 대표적인 도시경관으로 제시하는 소재로 반복적으로 이용되었다. 본 자료는 20세기 전반 한강철교의 구조와 철도교통 환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근대적 교통시설이 ‘조선명소’라는 이름으로 관광·감상용 사진그림엽서에 재현·유통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일출상행(日之出商行) #히노데 #朝鮮名所 #경성 #한성 #한양 #한강 #한강철교 #노량진 #경부선 #철교 #철도교 #漢江鐵橋 #京釜線 #경인선 #鷺梁津
    생산일자 미상
  • 부산어시장
    1927년경 가쓰야마 포스트카드(KATSUYAMA' POST CARD)에서 발행한 부산어시장의 모습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전면에는 지붕과 기둥으로 이루어진 시장 내부에 다량의 생선이 바닥을 따라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상인과 시장 종사자들이 오가거나 상품을 살펴보는 모습이 수록되어 있다. 전경과 오른쪽에는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생선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어 당시 부산어시장의 대규모 수산물 거래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상단에는 ‘釜山魚市場’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이어 경남의 대규모 어장을 배후에 두고 연간 거래고가 약 200만 원에 달하는 조선 최대의 어시장이라는 내용의 설명문이 기재되어 있다. 1927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釜山案内』에서도 당시 부산어시장은 남빈1정목에 위치하고 부산수산회사(釜山水産會社)가 경영하였으며, 근해에서 어획된 선어의 대부분이 이곳에 양륙되어 조선 각지뿐 아니라 장춘·하얼빈·대련 등지로도 운송되고 연간 거래고가 200만 원 이상에 이르는 조선 제일의 어시장으로 소개되어 있다. 부산수산회사는 1889년 부산의 일본인 거류민들이 설립한 수산회사로 어시장 경영과 어획물 판매·수출 중개 등을 담당하며 부산의 수산물 유통체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본 자료는 1920년대 부산의 대규모 수산물 집산·거래 공간과 시장 종사자들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항 이후 부산이 경남 연안의 어획물을 집산하여 조선 각지와 일본·만주 등으로 연결하는 수산물 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한 모습을 사진그림엽서를 통해 보여주는 자료이다.
    #부산 #부산항 #어시장 #어물전 #자갈치시장 #갈치 #가쓰야마 포스트카드(KATSUYAMA' POST CARD) #KATSUYAMA #鮮魚 #수산업 #釜山水産會社 #南濱一丁目
    생산일자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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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엽서 아카이브(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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