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션 아카이브의 첫 단추를 끼운 김창기 아카이브
아키비스트의 발견
작성자 아카이브센터 게시일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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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데이터로만 저장되어 있던 기록이 서로 연결점을 갖게 되면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키비스트의 발견>은 여러 아카이브에서 공개하는 기록과 콘텐츠를 살펴보면서 발견한 연결점을
새로운 맥락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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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아카이브라는 창고는 생산과 쓰임의 성격에 따라서 크게 공적 기록물과 사적 기록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대중을 상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기록 공간은 그 활동의 특수성 때문인지 경계가 모호하다기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경계를 지우는 활동 기록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대중음악에 종사하는 아티스트의 기록물이라면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한 시기를 고증하는 자료적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2021년에 오픈한 김창기 아카이브는 그룹 동물원의 원년 멤버인 가수 김창기 개인의 아카이브입니다. 김창기는 동물원과 김광석의 대표곡들인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거리에서>,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널 사랑하겠어>, <그날들> 등을 작사·작곡한 장본인입니다. 따라서 김창기 아카이브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룹 ‘동물원’의 전반기(1988~1997년) 활동 기록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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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데뷔 전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

더레코드(주)의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최근 오픈된 김창기 아카이브에는 2022년 3월 15일 현재 89건의 기록물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1차 수집 작업의 결과로, 앞으로 더 많은 기록이 수집되고 생산될 예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주제 분류를 보면 크게 음악 활동과 사적 활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음악 활동이 81건이고 나머지 8건이 사적 활동 기록입니다. 이중에 특별한 한 장의 사진이 보입니다. 1987년 여름 동물원 멤버들이 가정집 거실로 보이는 공간에 음악 장비를 갖춰놓고 연습을 하는 모습으로, 날이 무더웠는지 청년 김광석은 웃통을 벗고 있습니다. 이 사진에 대해 ‘1987년 여름 반월에 있는 유준열 부모님의 별장에서 김창기, 김광석, 유준열, 박경환, 박인규가 곡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동물원’이 정식으로 데뷔한 때가 1988년 1월 15일이었으니 1집 앨범 녹음을 앞두고 연습하던 시기로 짐작됩니다. 이 사진은 데뷔 이전 ‘자연인’ 신분의 동물원 멤버를 볼 수 있는 드문 기록물입니다. 
1987년 여름, 동물원 결성 전 연습 모습이 촬영된 사진 아카이브에서 보기
 

김창기의 육필 악보에 담긴 이야기들 

그런가 하면 김창기가 작사·작곡한 <그날들>, <혜화동>, <엄마가 딸에게>(작곡 당시의 제목은 <엄마가 부르는 노래 or 딸에게>)의 육필 악보도 보입니다. <혜화동> 악보는 제목만 담겨 있고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로 시작하는 가사가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작곡을 먼저 하고 노랫말은 나중에 완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노래는 가수 김창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혜화동을 생각하며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아카이브 안에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사진이 한 장이 있습니다. 1974년 혜화국민학교 4학년인 김창기가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혜화동' 육필 악보 아카이브에서 보기
1974년 서울혜화국민학교 4학년 시절 가족사진 아카이브에서 보기
많고 많은 사진 중에 굳이 혜화동 배경의 사진을 골라 아카이브에 올렸다는 것은 그가 만든 노래 <혜화동>이 아카이브 안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가수 김창기는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2006.12.13. 기사)에 출연했을 때 어린 시절 혜화동에 살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혜화동에서 성장기를 보내셨는데요. 혜화동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께서 일을 하셨고, 저희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녁 때면 저랑 형이랑 여동생이랑 언덕에서 엄마 언제 오시나 기다렸어요. 그러면 이웃집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고, 배가 고프고. 그럴 때 형이 노래 불러줬던 기억이 나요. 

출처: 노컷뉴스, 노래하는 의사 김창기 "광석이의 괴로움 알지 못해 죄책감"
가수 김창기의 또 다른 육필 악보 <그날들>과 <엄마가 부르는 노래 or 딸에게> 역시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엄마가 부르는 노래 or 딸에게>라는 제목은 작곡 당시의 가제였던 모양으로, 곡이 발표될 때는 <엄마가 딸에게>로 바뀌어 있습니다. 다만 작곡과 작사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인지 악보 안에 가사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또한 악보 오른쪽 상단에 ‘for 양희은’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가수 양희은이 부를 노래로 점찍어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육필 악보 아카이브에서 보기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그리는 아카이브 

김창기 아카이브를 공동 기획한 더레코드(주)와 사운드프렌즈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우리는 왜 빛나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를 잊고 있을까?”라는 아쉬움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록큰롤 명예의전당’처럼 ‘한국 대중음악 명예의전당’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 작업의 하나로 1970~2000년대 활동했던 주요 뮤지션들의 아카이브를 제작하게 된 것이며, 그 첫 번째 작업이 바로 김창기 아카이브라 합니다. 2021년 5월부터 시작하여 그해 연말에 오픈한 김창기 아카이브의 목록 구성을 보면, 김창기의 생애와 시기별 음악 활동을 기반으로 한 실물 기록(김창기 작사 작곡 노래 등으로 참여한 앨범, 저서, 작사·작곡 노트, 공연 영상 녹화 테이프, 신문기사, 포스터, 팸플릿 등), 전자기록(김창기의 발매 음원, ebook,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자료, 방송 출연 영상파일 등), 구술자료 등입니다. 음악적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과 생각을 총망라하는 구성입니다. 김창기 아카이브의 기록을 직접 수집하고 운영하는 더레코드(주)의 이형수 대표는 김창기 아카이브의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김창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뮤지션이다. 새로운 싱글도 곧 발매된다. 아카이브는 현재 진행형의 뮤지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음악 활동과 연계한 이벤트에 활용할 아이디어나 자원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두 번째, 김창기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본인이 만든 음악이 팬들에게 위로, 행복감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 이것이 원곡의 의도와 부합하는지, 아니면 원곡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동감이 되는 등의 김창기와 팬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김창기 아카이브는 대중음악가 아카이브 작업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역사와 규모를 생각한다면 부분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일 수 있으나, 이러한 개개의 아카이빙 작업이 계속 진행된다면 개개의 나무가 숲을 이루듯이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이형수, 대중음악가 아카이빙의 시작-김창기 아카이브
 
이 내용으로 볼 때 뮤지션 아카이브 사업은 아마도 세 번째 항목, 즉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작업”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취지라면 김창기 아카이브 안의 사적 기록들은 충분히 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상태라 기록 창고를 채우려면 좀 더 많은 시간과 품이 들겠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의 기록물들 속에서도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창기의 육필 악보들에서 곡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한 정보를 엿볼 수 있었고, 데뷔를 앞둔 그룹 ‘동물원’의 연출되지 않은 모습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기록물들은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신뢰성 없는 자료가 아닌, 가수 김창기 당사자만이 생산하고 제공할 수 있는 오리지널 원본이기에 남다른 가치를 지닙니다.

더레코드(주)와 사운드프렌즈에서는 김창기 아카이브에 뒤이어 김현철, 한영애, 안치환 등의 아카이브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뮤지션들은 서로 많은 교류를 통해 영감을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앞으로 뮤지션들의 개인 아카이브가 많아진다면 음반이나 공연 무대라는 결과가 완성되기까지 음악적 교류 과정을 알 수 있는 ‘메이킹 필름’의 기능도 제공하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디지털 아카이브라는 펜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새로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김창기 아카이브 바로가기
https://kimchangki-archiv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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