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의 발견
아카이브는 어떻게 지역공동체 문화에 기여하는가
아카이브센터
게시일 2022.03.14  | 최종수정일 2022.04.25

각자의 데이터로만 저장되어 있던 기록이 서로 연결점을 갖게 되면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키비스트의 발견>은 여러 아카이브에서 공개하는 기록과 콘텐츠를 살펴보면서 발견한 연결점을
새로운 맥락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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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요즘에는 지역의 명물이나 명소도 많아지고 축제니 전시회니 하는 행사도 다양해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후로 각 지역의 유·무형의 문화자산이 꾸준히 발굴되어 콘텐츠로 개발되고 있다는 증거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문화 자산을 찾아내고 예술 활동의 방식으로 즐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걸음 나아가 그 모든 활동을 아카이브화하는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내용은 지역과 단체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한 예로 미추홀시민아카이브는 인천 미추홀구의 지역공동체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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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아카이브에 담긴 의미

인천의 남구가 미추홀구라는 이름으로 바뀐 2018년부터 미추홀 구민들은 지역의 문화 자산을 조사하고 배우고 즐기는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미추홀학산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미추홀시민기록단'을 꾸려, 주민 스스로 지역의 산, 하천, 장소, 주거, 음식, 사람 등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탐사하고 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예술 창작에 참여하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기록이 차곡차곡 모아져 2021년 8월 미추홀시민아카이브로 공개되었습니다. 

다양한 활동 기록 가운데 눈에 띄는 주제는 ‘미추홀의 맛’입니다. 지역의 어느 식당이 맛집으로 이름나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어떤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온 집의 가정식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를 주민들이 직접 탐사하고 취재한 기록들입니다. 지역 특산물이나 맛집을 소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추홀의 맛’으로 소개된 21가지 음식 가운데 밴댕이 무침 전문 식당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밴댕이무침, 대물림의 맛 기록물 1~3page(미추홀사람들은 맛을 안다 책 수록원고) 아카이브에서 보기
금산식당 경진대회 수상 상패 아카이브에서 보기
 
구술자 : 추현숙(1956년생)
면담자 : 표기자
면담장소 : 금산식당


-고향은 어디세요? 그리고 미추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고향은 동인천이고, 미추홀구에 살았었고, 지금은 중구에 살고 있어요. 이곳 학익동에서 식당 운영한 지는 1994년 8월 6일에 사업자 등록을 했어요. 그 이전에 시어머님이 생선회가 흔했기에 그 시절에 연안부두에서 밴댕이 식당을 하셨었고, 큰동서도 했었고, 시누이님도 하셨고, 저는 1996년부터니까 25년을 넘어서는 말하자면 대를 이어가는 ‘이어가게’인 거죠. 식당 간판도 대를 잇는 상호예요. 시부모님 고향이 이북 금산이시라 남한에 정착해서 식당을 하시면서 고향 이름을 붙이셨어요. (…)

-동네식당이라고 생각했을 때와 이렇게 이 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먹으면 음식 맛이 다를 것 같아요.
지금 이 식당 자리가 음식점을 하기에는 도로에서 들어가 앉은 곳이라서 좋지는 않아요. 처음 개업을 할 때는 이 주변이 번화가였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며 안으로 묻히게 되었죠. 식당 외관도 허름하고 간판도 옛날식이지만 어찌 보면 그 점이 또 오래된 식당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단골손님들이 여전히 찾아주시니까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내용은 2021년 8월 26일 미추홀시민기록단(표기자 씨)이 금산식당 주인(추현숙 씨)과 면담한 기록의 일부입니다. 그 밖에 식당 주인이 알려주는 밴댕이 무침 맛의 비결과 특징, 특별한 경험담도 담겨 있습니다. 다른 식당에 비해 특별할 것 없는 내용 같지만 기록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사실들이 발견됩니다. ‘금산’은 전라북도 금산이 아니라 황해도 연백군에 있는 금산이며, 그곳 출신의 시어머니가 차린 밴댕이 식당을 이어받은 ‘대물림’ 식당이라는 사실입니다. 금산식당의 밴댕이 무침은 황해도 연백군의 맛을 품고 있으며 현재는 미추홀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미추홀의 음식 문화 변천사에 관한 작은 증거로 남겨질 수 있습니다. 미추홀의 문화적 뿌리를 찾고 변화의 과정을 담고자 하는 기획 취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자료입니다. 

사실 맛이라는 것은 오감 중에서 가장 주관적인 감각으로, 그야말로 ‘개취(개인의 취향)’에 속하는 것이죠. 하지만 추억의 맛, 고향의 맛, 엄마의 손맛 같은 것은 개취를 넘어서는 정서의 맛입니다. 정서라는 것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와 깊이 관련된 것으로,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밴댕이 같은 바다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곳의 생활 정서가 몸에 배어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니 미추홀에 놀러 온 사람들이 밴댕이 무침을 먹는다는 것은 그곳 생활 정서의 한 자락을 향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역 주민이 자기 고장의 맛을 탐사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활동은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물론 그 작업의 결과물은 인천의 맛을 깊게 음미할 수 있는 훌륭한 맛집 정보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주민, 기록의 주체가 되다

‘미추홀의 맛’ 기록물을 들여다보면 이 작업은 기록관리 전문가가 아닌 7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미추홀시민기록단의 손에서 탄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추홀시민기록단은 이 작업을 위해 인천의 문화사를 배우고 구술 채록 작업에 관한 교육을 받은 후 탐사·섭외·취재·녹취·기록까지 수행했습니다. 작업을 끝낸 후 그들은 기록화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습니다.
 
"이런 많은 어려움 속에 구술 녹화와 기록을 마치니 큰 공부한 것처럼 뿌듯하다. 우리가 한 구술작업이 시간이 흘러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김용경

"지인들과 협력하며 작업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미추홀구의 구민으로 최선을 다해 내가 사는 지역의 상황들을 기록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김순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가게인 만큼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도 의미가 있는 이번 기록 활동은 힘들기도 했지만, 지역의 변화된 모습까지도 담아낼 수 있어 의미가 있는 활동이었다."
-정은주

"시민기록단 활동은 나에게 배움의 장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새로운 지인을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이번 경험에서 얻은 기쁨이며 의미다."
-조용희

"내 주변 가까이에도 찾아보니 이곳저곳에 숨은 맛집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혜숙

"이번 인터뷰를 통해 평상시에 몰랐던 미추홀 주민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기에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정지선

"현대는 여러 음식을 만들어내고 트렌디화하여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맞춰버린다. 새로운 음식도 좋지만, 전통과 훈훈한 스토리가 담겨진 귀한 음식을 보존하는 일 또한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모습들을 남기고 기억하고자 함이 시민기록단 활동의 의미이고 가치이다."
-표기자
소감의 글 가운데 일부만 발췌한 내용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의 활동이 단지 지역문화를 기억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식의 발판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인주의 문화가 가득한 도시에 새로운 공동체문화가 싹트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미추홀시민아카이브의 형태분류에서 ‘도서/간행물’ 항목을 살펴보면 좀 더 확실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시민기록단의 구술 채록 작업은 『미추홀, 살아지다5: 미추홀 사람들은 이 맛을 안다』 라는 단행본으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무형의 디지털 파일이 유형의 기록으로 오롯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미추홀, 살아지다’라는 시리즈로 5종의 단행본이 더 있습니다.
(『미추홀, 살아지다1: 안녕? 신기촌 사람들』, 『미추홀, 살아지다2: 승기천을 기억하다』,
『미추홀, 살아지다3: 미추홀, 안부를 묻다-삶』, 『미추홀, 살아지다3: 미추홀, 안부를 묻다-일상』, 『미추홀, 살아지다4 미味추홀 : 바다를 담다』)

이 책들은 주민을 대상으로 과거에 사라진 지역에 대한 기억, 곧 사라질 지역의 현재 모습,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인생 이야기, 미추홀의 오래된 식당과 음식을 취재, 탐사하고 소개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조사한 내용을 원천 자료로 삼아 영화, 연극, 미술, 사진 등의 다양한 예술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 활동의 기록까지 간행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주민이 지역문화의 생산 주체로서 활동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아카이브 덕분에 주민들이 참여한 모든 활동의 기록들이 문화원이나 구청 서가에 몇 년간 꽂혀 있다가 분실되거나 폐기될 걱정은 없습니다. 미추홀구 변천사를 말해주는 역사 기록물의 자격을 얻어 잘 정돈된 디지털 서랍 속에 차곡차곡 보존되고 있으며, 지역주민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열어볼 수 있는 기록보존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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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chivecenter.net/Michuhol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