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데이터로만 저장되어 있던 기록이 서로 연결점을 갖게되면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키비스트의 발견"은 아카이브센터 아키비스트가 여러 아카이브가 공개한 기록과 콘텐츠를 살펴보면서 발견한 연결점을
새로운 맥락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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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년 다음 해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치열한 한 해를 뒤로 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으로, 누군가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정비의 시간으로. 새해의 다짐은 역시 지난 날을 거울 삼아 새로운 모습을 꿈꾸는 나만의 이상향이자 작은 비전이겠죠.
우리는 매년 다음 해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치열한 한 해를 뒤로 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으로, 누군가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정비의 시간으로. 새해의 다짐은 역시 지난 날을 거울 삼아 새로운 모습을 꿈꾸는 나만의 이상향이자 작은 비전이겠죠.
새천년이 딱 10년 남았던 1990년 1월. 새해를 맞이하는 어느 두 운동가의 마음도 이와 같았습니다. 이제는 아카이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종이 신문의 기고란과 빛바랜 손편지에서는 오늘날의 우리가 새해마다 수없이 다짐했던 그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던 이 두 사람의 성찰과 염원의 글은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와 신영복 아카이브 각각에 담겨 있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1989년 3월 25일 방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받고 1989년 4월부터 1990년 10월까지 약 19개월 간 안양교도소와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때를 '5차 투옥' 시기라고 하는데, 문익환 목사는 옥중에서 아내인 박용길 장로를 비롯한 인사들과 2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당시 그와 편지를 주고받은 인물들 중에는 20년 감옥생활에서 가석방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성공회대학에서 강의 중이던 신영복 선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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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답습않고 함께 성장하는 통일의 길
김유신의 말은 천관녀의 집 앞에서 목 잘려 죽었습니다. 생각없이 어제의 골목을 답습하다가 칼날 아래 목 잘리고 말았습니다. 경오년‘말의 해’는 모든 말들이 생각해야 하는 해입니다. 주인의 뜻을 생각해야 하는 해입니다. 새로운 길을 생각해야 하는 아침입니다. (중략)
20년만에 대하는 친구들은 괄목할 만큼 변하였습니다. 크게 변한 것은 옷과 의자 그리고 그의 사회적 주장입니다. 별로 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인간적 자질입니다. 20년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심성의 바탕’‘사고의 틀’은 완강합니다. 이는 예상 밖의 놀라움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의 20년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그 뿌듯했던 자기개조의 성취감이 기실 보잘 것 없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의 낭패감, 이는 당신의 것을 내것인양 여겼던 환상의 공허함입니다. 개인을 단위로 하여 자신을 개조하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개인으로서의 변혁마저도 최종적으로는 이웃들과 삶을 공유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웃만큼의 변혁이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치인지도 모릅니다.
종아리를 때리는 편달의 고독한 노력보다는 수많은 도자기가 가마속에서 함께 익어가는 훈도의 훈훈한 풍토가 삶의 본래 모습이며 함께 ‘잘나고’ 더불어 성장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중략)
북악산의 쌍굴공사장은 아직 우람한 현장이 못됩니다. 일꾼의 수도 적고 중기소리도 높지 않고 현장사무소의 간이건물도 약소합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산을 뚫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뚫어가고 저쪽에서 뚫어오는 굴이 빗나가지 않고 마주 만나는 날, 그날이 최대의 축제일이라 합니다. 깜깜한 동굴의 끝과 끝이 만나 열리면서 빛이 통하는 날, 바람이 통하고 사람이 통하는 날, 그날은 곡괭이 대신 서로의 팔뚝을 잡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더불어 춤추는 날이라 합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모든 조각들마저도 탄탄한 길바닥이 되는 날이라 합니다.
20년만에 대하는 친구들은 괄목할 만큼 변하였습니다. 크게 변한 것은 옷과 의자 그리고 그의 사회적 주장입니다. 별로 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인간적 자질입니다. 20년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심성의 바탕’‘사고의 틀’은 완강합니다. 이는 예상 밖의 놀라움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의 20년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그 뿌듯했던 자기개조의 성취감이 기실 보잘 것 없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의 낭패감, 이는 당신의 것을 내것인양 여겼던 환상의 공허함입니다. 개인을 단위로 하여 자신을 개조하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개인으로서의 변혁마저도 최종적으로는 이웃들과 삶을 공유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웃만큼의 변혁이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치인지도 모릅니다.
종아리를 때리는 편달의 고독한 노력보다는 수많은 도자기가 가마속에서 함께 익어가는 훈도의 훈훈한 풍토가 삶의 본래 모습이며 함께 ‘잘나고’ 더불어 성장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중략)
북악산의 쌍굴공사장은 아직 우람한 현장이 못됩니다. 일꾼의 수도 적고 중기소리도 높지 않고 현장사무소의 간이건물도 약소합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산을 뚫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뚫어가고 저쪽에서 뚫어오는 굴이 빗나가지 않고 마주 만나는 날, 그날이 최대의 축제일이라 합니다. 깜깜한 동굴의 끝과 끝이 만나 열리면서 빛이 통하는 날, 바람이 통하고 사람이 통하는 날, 그날은 곡괭이 대신 서로의 팔뚝을 잡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더불어 춤추는 날이라 합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모든 조각들마저도 탄탄한 길바닥이 되는 날이라 합니다.
통일을 노래하며 1990년 1월 4일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 아카이브에서 보기
주소 없는 편지로 답하다
신영복 선생님께.
한겨레 신문에 실린 『주소 없는 당신에게 띄웁니다』를 읽고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중략)
우선 말의 해를 맞아서 김유신이 천관녀의 집 앞에서 사랑하는 말의 목을 치던 이야기로 이야기가 시작되는군요. 모든 말이 주인의 뜻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걸어오던 익숙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생각해야 하는 새 아침이라고 하셨군요. (중략)
12월29일 제 아버님 기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역사에 밀려오다가 89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 뭡니까? 89년에서 90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점은 예사 해 바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는 천길 벼랑으로 단절된 저쪽 언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90년대의 통일을 향한 새 언덕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눈을 지끈 감고 건너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차라리 숨이 막혀 천길 벼랑 밑으로 곤두박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떨어져 몸은 박살이 나서 썩어버리고 새 마음 새 몸으로 저 언덕에 날아올라 우뚝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새해를 맞으시는 심정과 어쩌면 그리도 일치하지요? 분단에 길들고 익숙한 자기를 청산하고 맞아야 할 새 해가 바로 90년이라는 점 말입니다. (후략)
한겨레 신문에 실린 『주소 없는 당신에게 띄웁니다』를 읽고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중략)
우선 말의 해를 맞아서 김유신이 천관녀의 집 앞에서 사랑하는 말의 목을 치던 이야기로 이야기가 시작되는군요. 모든 말이 주인의 뜻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걸어오던 익숙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생각해야 하는 새 아침이라고 하셨군요. (중략)
12월29일 제 아버님 기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역사에 밀려오다가 89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 뭡니까? 89년에서 90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점은 예사 해 바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는 천길 벼랑으로 단절된 저쪽 언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90년대의 통일을 향한 새 언덕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눈을 지끈 감고 건너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차라리 숨이 막혀 천길 벼랑 밑으로 곤두박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떨어져 몸은 박살이 나서 썩어버리고 새 마음 새 몸으로 저 언덕에 날아올라 우뚝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새해를 맞으시는 심정과 어쩌면 그리도 일치하지요? 분단에 길들고 익숙한 자기를 청산하고 맞아야 할 새 해가 바로 90년이라는 점 말입니다. (후략)
아카이브에서 보기
서로 다른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하나의 맥락
문익환 목사는 9개월 뒤인 1990년 10월 형 집행정지로 19개월 만에 전주교도소를 출소했습니다. 이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초대 위원장에 취임, 통일운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1990년부터 독자 모임 '더불어숲'을 시작한 한편 『루쉰전 - 루쉰의 삶과 사상』, 『중국역대시가선집』 등 중국문학작품 다수를 번역하고 1993년에는 『엽서-신영복 옥중사색』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두 사람의 행보는 달랐으나, 문익환 목사와 신영복 선생은 분단의 현실을 넘어 민족통일을 견지하였으며, 느슨한 연방제로서의 통일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동목표는 1995년 경실련 총서에 실었던 신영복 선생의 기고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와 북한의 조국통일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연방제 이전의 중간단계로 '느슨한 연방제', 혹은 '국가연합'을 수용할 수도 있음을 밝힌다. ... 양체제를 인정하는 공존의 통일방식을 지지한다. 이것은 남북 양당국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이자 우리 민족이 반세기 동안 양 체제 아래서 겪은 소중한 경험들을 모아낼 수 있는 방안이다. 19세기가 봉건체제와 자본주의체제의 투쟁의 세기이고, 20세기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투쟁의 세기라면, 21세기의 세계사적 과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체제를 지양·발전시켜 새로운 제도를 창조해야 하는 세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계사적 과제를 민족적 과제와 통일시켜내는 역사적 관점을 민족통일 과정에서 굳건히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길이야말로 21세기의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했던 신영복 선생의 기고문. 아카이브에서 보기
여기서 우리는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와 신영복 아카이브 각각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맥락을 발견했습니다. 민족통일에 대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던 두 사람이 일찍이 교류하고 있었음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교류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1968년 통일당혁명 사건으로 구속된 후 옥중에서 쓴 편지를 엮어 1988년 8월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문익환 목사가 읽은 후 인연이 닿은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인연이 맞닿게 된 계기를 알려줄 기록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키비스트로서의 또 하나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신영복 아카이브 바로가기
https://shinyoungbok.net/shinyoungbok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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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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