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발간사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추천사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이나 학대 등의 경험이 다른 또래들에 비해 높은 아이들이 많아 더욱 세심한 배려와 보호가 필요하지만 오히려 비난과 낙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 그들은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는 이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전문 심리상담사와 1:1로 만나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40회, 70회, 100회 이상의 만남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성착취에 이용된 아이들은 이미 너무 큰 상처를 입고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성착취에 더욱 쉽게 유인되고 이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착취 범죄자들은 상처입고 도움이 필요한 외로운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장악하여 성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법은 칭찬해주기, 선물 사주기, 이야기 들어주기, 헛된 희망 부추기기 등의 방식을 사용하여 아이들의 환심을 사고, 심리적으로 장악하여 본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착취 수법이 이러한데, 우리사회는 성착취에 이용된 아이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습니다. 상처받았고 또 착취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문제아, 방탕한 아이로 보고 있습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의 피해 실태를 알리고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場을 마련하고자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심리치료작품 전시회 ‘오늘’展을 기획하였습니다. ‘오늘’展의 ‘오늘’은 아이들이 성매수자를 만나는 날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아이들을 지지하고 돕는 날일 수도 있습니다. 또, 아이들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오늘’展은 2018년, 2022년, 2023년에 걸쳐 개최되었습니다.

어디서도 그 경험을 말할 수 없는 아이들, 학교에 물어 봐도 우리 학교에는 그런 아이들은 없다고 합니다. 집에서도 감추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展의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은 그들의 존재를 감추려고만 하는 세상에게 “내가 여기있다(Here I am).”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우리가 있다(Here We are).”고 응답합니다. 그래서 2018년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의 주제는 “Here I am. Here we are.”이었습니다.

‘오늘’展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하루 이틀 전시회가 무르익어 가면서 매일 찾아오는 사람들, 1~2시간 동안 전시작품을 꼼꼼히 관람하면서 준비된 포스트잇에 지지와 공감의 한마디를 정성껏 쓰고 가는 사람들, 가만히 흐느끼는 사람들, 돌아가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이끌고 다시 오는 사람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깊이 느끼고 있었고, 정말 따뜻하게 가슴을 열어주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감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늘’展은 끝이 났지만, 그 후 2년이 지난 2020년 5월, 성매매에 이용된 아동·청소년을 모두 피해자로 보호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습니다. ‘오늘’展을 함께 준비했던 우리 모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그것도 잠시, 코로나19가 창궐하여 모든 관계 맺 기가 과거와는 달라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손바닥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아이들은 대화를 하고, 만남을 시도해야 했습니다. 성착취자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또 그리고 더 은밀하고 더 교묘하게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여 성착취로 이용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피해 아동·청소년들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지켜지지 않는 법과 사이버 상에서 활개 치는 성착취자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의 시간들이었습니다. 피해 아동·청소년들은 더욱 어려져, 초등학교 3-4학년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성착취 범죄의 피해를 겪고 부모들의 손에 이끌리어 센터를 찾아왔지만, 상처받은 부모들과 피해를 입고도 피해인지도 모르는 그저 어리기만 한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을 돌보면서 하루하루 지쳐만 갔습니다. ‘아청법’은 바뀌었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뤄냈던 모든 것들이 후퇴해갔습니다.

절망 속에 나약하게 머물고 싶지 않아, 다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작품 전시회 두 번째 이야기를 기획했습니다. 두 번째 ‘오늘’展은 더 교묘해지고 악랄해지고 있는 성착취 범죄 실태를 알리는 것과 피해 아동·청소년들과 그 부모들이 함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 그리고 법이 바뀌어도 현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방관으로 일관하며 스스로 전혀 바뀌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 원인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2022년과 2023년 ‘오늘’展의 주제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입니다. 우리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법을 바꾼다해도, 아무리 방어막을 쌓는다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展이 다시 기적을 일으켜 줄 것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오늘’展이 열린 2022년에도, 2023년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대가 큰 만큼 절망만 커져 갔습니다. “자살갤러리”, 무슨 일을 겪었기에, 자신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생중계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까? 모든 것이 다 털려 텅 빈, 마지막 순간까지 한번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것 봐라’라며 스러져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재현될 것인지. 현장에서 그들을 매일 만나고 있는 저는 두려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도 그 답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리의 두 번째 ‘오늘’展을 통해 그 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망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던 그래서 우리 센터와 함께 치유와 회복을 이루어냈던 그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오히려 더욱 후퇴하는 현실 속에서 절망하고 싶어졌을 때, 성착취 피해를 입고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치유와 회복을 이뤄냈던 그 아이들의 빛이 저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展의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물음은 절망 속에 갇혀있는 우리 사회에 좌절하지 말고 부단하게 일어서라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피워낸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이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전국 국·공립 도서관에 기증될 것입니다. 이 책이 또다시 기적을 일으켜 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 책이 닿는 곳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치유와 회복이 이뤄질 것을 기대합니다. 성착취자들의 죄상이 명명백백 드러나 그들이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고 안타깝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아동·청소년들이 이 땅에 더 이상은 없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되는 일에 여러분 모두가 함께 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