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센터소식입니다] 인천을 사랑한 사람들의 기록,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로 모이다
[아, 센터소식입니다]
작성자 아카이브센터 게시일 2026.10.15
  • 0

시민의 날에 공개된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25년의 기록
[아, 센터소식입니다]는 '아카이브센터'를 줄인 '아센'의 말맛을 살린 소식 코너입니다. '아센지기 하늘'이 아카이브센터 곳곳을 살피며 함께 만든 기록과 현장의 이야기를 찾아 전합니다.
 


아센지기 하늘이 전합니다!

안경을 쓰고 기록과 현장을 살피는 아센지기 하늘이 아카이브센터의 오늘을 전합니다. 아카이브센터가 함께 만든 기록, 만난 사람들, 지나온 현장의 이야기를 짧고 쉽게 소개합니다.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 메인화면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에 들어가면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뒷모습이 먼저 이용자를 맞이한다. 연단 뒤 현수막에는 '(사)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제1회 정기총회'라는 글자가 또렷하다. 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그 궁금증을 따라가 보면 이 아카이브가 어떤 곳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2003년 시민단체 97곳이 모여 출범한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이하 협의회)가 2026년 10월 15일, 아카이브센터와 함께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의 문을 열었다.

10월 15일은 인천 '시민의 날'이다. 아카이브 공개에 맞춰 만든 '인천 바로알기' 포스트에서는 1413년(태종 13년) 10월 15일 '인주(仁州)'라는 이름이 '인천(仁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2015년 같은 날에는 협의회가 10년 전부터 '인천의 발상지'로 부르자고 외쳐 온 문학산의 정상이 시민에게 열렸다. 인천이라는 이름이 생긴 날에 인천을 사랑한 사람들의 기록이 시민 곁으로 돌아온 셈이다.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 왜 만들었나

소개 페이지에는 아카이브를 연 이유가 이렇게 적혀 있다.
 

인천사랑운동 아카이브는 인천사랑운동의 발자취와 그 안에 담긴 시민들의 소중한 기록을 모아 함께 나누는 기록공간입니다.


소개 페이지에는 아카이브가 단순히 과거의 자료를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당시 시민들이 무엇을 고민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어떤 실천으로 인천을 바꿔왔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소개글은 이 기록이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에게 새로운 관심과 참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난다. 기록을 쌓아두는 곳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시민에게 말을 거는 곳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소개 페이지 바로가기

무엇이 담겨있나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의 기록 분류와 현황

기록으로 본 인천사랑운동. 지금까지 공개된 기록물은 456건이다. 협의회의 활동 사진과 회의 자료 같은 문서, 소식지와 발간 도서, 인천·경기 언론의 신문기사, 홍보 포스터와 리플릿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인천사랑 포토세상'이다. 2008~2009년 인천신문에 날마다 실린 시민 사진 코너인데, '중앙공원의 변화', '추억의 사이렌', '과자 먹는 갈매기' 같은 제목만 읽어도 그 시절 인천의 골목과 바다가 눈앞에 그려진다.

찾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분류별 탐색' 메뉴를 열어 볼 수 있다. 출처(협의회, 언론기관, 인천광역시, 인천시의회, 공공기관, 시민단체, 개인), 형태(도서/간행물류, 문서류, 사진류, 시청각류, 박물류, 신문류), 주제(문화활동, 교육·연구, 범시민운동, 인천인네트워크, 협의회조직·운영, 추진사업, 협의회 간행물), 시기(~1999년, 2000~2009년, 2010~2019년, 2020~2029년)를 좋바해 골라 볼 수 있다.

기록 통합검색 바로가기

이야기로 본 인천사랑운동. 기록이 낱장의 자료라면, '인천사랑운동 이야기'는 그 낱장들을 엮어 만든 책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포스트 세 편이 실려 있다.
 
- '인천사랑운동의 시작': 2001년 12월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의 제안에서 출발한다. 연구 의뢰, 시민 공청회, 「인천사랑운동실천지원조례」 제정을 거쳐 2003년 협의회 창립에 이르는 과정을 원문 기록과 함께 차근차근 따라간다.

- '인천사랑운동은 어떻게?': 인천사랑 지도자아카데미 이야기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81회 열렸고 2,671명이 수료했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수료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실천 모임 네 개를 꾸렸다. 강의실에서 피어난 불씨가 시민의 생활 속으로 번져 가는 과정이 이 한 편에 담겨 있다.

- '문학산을 다시 부르다': 2005~2006년 문학산 역사공원화 운동을 다룬다. 협의회는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시민공청회를 거쳐 125명의 서명을 받은 건의서를 시장에게 전달했다. 글 곳곳에 날짜와 쪽수까지 밝힌 출처가 붙어 있어 아키비스트의 꼼꼼함이 느껴지는 포스트다.


여기에 '인천 바로알기' 포스트 두 편이 더해진다. '인주(仁州)가 인천(仁川)이 된 사연'과 '이름 부자, 부평의 개명 변천사'다. 협의회가 펴낸 지명 연구서를 바탕으로 인천의 땅 이름에 담긴 이야기를 풀었다. 매일 지나다니던 동네 이름에 이런 사연이 있었나 싶어, 인천 시민이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주(仁州)가 인천(仁川)이 된 사연' 포스트 중 일부

인천사랑운동 이야기 바로가기

연표로 본 인천사랑운동. 25년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인천사랑운동 연혁'이 제격이다. 2001년 첫 제안부터 2026년까지 120건의 활동이 교육·연구, 문화·확산, 시민실천, 정책·현안, 조직·기반, 협력·교류 여섯 유형으로 정리돼 있다. 특히 반가웠던 기능은 '원문 있는 기록만' 필터다. 이 필터를 켜면 연혁 속 한 줄이 아카이브에 소장된 실제 기록으로 바로 이어진다. 걷기대회나 합창제 같은 축제부터 재정위기 극복 서명운동, 아시안게임 지원 같은 지역현안까지, 협의회가 걸어온 길이 한 화면에 펼쳐진다.
 
인천사랑운동 연혁의 일부

연혁 바로가기


용어로 본 인천사랑운동. '용어사전'에는 인물·조직·사건·개념 네 유형의 전거 데이터 12건이 실려 있다. '문학산' 항목을 열어보면 학산, 성산, 남산, 배꼽산 같은 다른 이름이 함께 정리돼 있다. '인천사랑운동센터' 항목에는 이 기관의 옛 이름이 '인천가치재창조지원센터'였다는 사실까지 적혀있다. 이름이 바뀌어도 같은 대상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놓아 둔 것이다.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가 기록을 대하는 태도

이번 아카이브를 둘러보며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은 '문학산을 다시 부르다' 포스트의 마지막 대목이다.
 

문학산 정상 개방을 우리 운동 하나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단체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쓰기란 쉽지 않다. 포스트는 정상 개방이 인천시와 군 당국의 협의로 이뤄졌고, 다른 시민단체들도 개방을 요구했다는 점을 함께 밝혔다. 그러면서 협의회가 남긴 2005년의 기록이 보여 주는 것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그때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정리한다. 성과를 부풀리지 않고 기록이 말해주는 만큼만 말하는 태도. 아카이브가 왜 믿을 만한 곳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투명함은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인천 바로알기' 포스트에는 원저작을 AI로 요약·재구성한 뒤 아키비스트가 검수하고 원본 기록물을 첨부했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숨기지 않고 밝혀 둔 것이다.
 
AI를 활용한 포스트 제작 표기문

공개 기록은 출처를 밝히고 수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누구나 비영리 목적으로 쓸 수 있다(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기록물 기증' 메뉴로는 시민의 기증을 상시 받는다. 집 서랍 속에 잠든 인천사랑운동의 사진 한 장도 이곳에서는 소중한 기록이 될 수 있다. 아직 준비 중이라는 안내가 걸린 '인천사람' 메뉴는 이 아카이브가 앞으로도 계속 자라날 거라는 약속처럼 보인다.

25년간 이어진 시민운동을 기록물 456건, 포스트 다섯 편, 연혁 120건으로 엮은 이번 작업은 행정기관이 아닌 시민단체가 지역의 역사를 어떻게 남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행사 사진과 회의 자료를 상자에 쌓아 두고만 있는 단체라면, 그 기록이 어떻게 한 도시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꼭 한 번 둘러보시길 권한다. 이번 시민의 날에는 인천사랑운동아카이브에 들러 인천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 보면 어떨까.


 


글 | 기하늘
사진 | 아카이브센터

목록으로
목차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