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결 따라 살아온 삶
백반집같은 목공 장인
미추홀학산문화원
게시일 2022.12.23  | 최종수정일 2023.02.25



"음식점으로 말하면은 갈빗집이나 홍어집, 횟집 이런 게 아니고 그냥 백반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은 나무로 된 거는 거의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1. 대한공예를 하기까지

사장님 지금 일하고 계신 곳이 대한공예잖아요. 이름을 대한공예라고 지으신 이유가 있으세요?
간단하죠. 뭐. 아들내미 이름이 이대한이라 그래서 대한공예로 지었죠. 딸은 이름이 이은형인데 아들래미가 먼저 태어나서 제가 그 시기에 창업을 했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죠. 딸이 워낙에 무던한 애라 이름에 대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 섭섭해하지는 않더라고요.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연애 결혼했어요. 연애는 길게는 했는데 사실 많이 오래 만나지는 않았어요. 길고 띄엄띄엄 보고, 길 가다 보고. 아까 말씀드리는 울산인데 거기는 이제 여기 같으면은 나 송도 간다, 나 연수동 간다, 나 여기 신포동 간다 이러는데 울산에서는 그냥 시내 간다 그러면 옥교동 한 군데예요. 옥교동 거기가 시내에요. 거기가 거의 뭐 신포동만 해요. 신포동 정도 되는데 약간 좀 번화하긴 한데 시내에 나간다 그러면 다~ 거기죠. 시내 나가다 보면 어쩌다 만나기도 하고 그래서 만나기도 하고. 제가 28살에 결혼을 했으니까 제가 57년생이에요. 아들을 스물여덟에 얻었어요. 

계속 인천에서 사셨던 거예요?
태생은 서울이고요. 군대 제대를 하고 울산에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리로 갔었는데 공교롭게 거기도 목재 회사더라고요. 뭔지 알지도 못하고 가보라 해서 무작정 가봤는데 거기서 일을 조금 더 배우고 나서 인천으로 오게 됐죠. 울산에서 근무했던 회사가 아마 동남 목재로 기억을 해요. 회사 생활을 거기서도 하고 인천에 와서도 회사 생활을 했는데 사실 회사 생활에서는 제가 뜻하는 대로 오래 있지를 못했어요. 당시에 오래 있었던 데가 2년, 3년 이렇게 있었는데 거의 다 회사가 부도가 나고 해가지고 오래 못 있었어요. 인천에도 마찬가지로 목재를 해서 가구 만들고 인천에 몇 군데 있잖아요. 인천에 가구 만드는 회사들이 있었던 곳이 지금은 이제 없어졌죠. 거기서도 부도가 났어. 가는 쪽마다 이렇게 부도가 나더라고. 그래서 직장생활이나 하려고 그랬는데 그것도 안 되고 그래서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게 뭔가 생각했더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자본으로 할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부터 여기에 있지는 않았고요. 처음에 있었던 곳이 간석동이라는 데 있어요. 거기가 전체적인 재개발은 아니고 건물을 짓고 하다 보니까 이전하게 됐어요. 그래서 대한공예사를 하게 된 거예요. 저는 여기 이분들보다는 좀 늦게 왔다고 보는데 이분들은 원래는 여기보다는 배다리 쪽에 이 사람들이 거기 있다가 거기가 지금 아시다시피 정리가 됐고 그분들이 여기 와서 터전을 잡고 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한 20년 이상 된 사람들이 많죠. 나는 여기 한 10여 년 있었나요.

간석동에 계실 때도, 여기 계실 때도 지금 하시는 주 종목은 같으세요?
주 종목은 변함이 없는데 아까 보여드렸던 그런 스탬프 작업이라든지 또 좁은 장소에서 이제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개발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가게 되더라고요.




2. 아버지께 물려 받은 재능

사장님이 다양한 걸 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니까 손재주가 진짜 좋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렸을 때도 그러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는 뭐를 잘한다고는 못 느꼈고요. 어렸을 땐 공 차고 노는 걸 좋아했죠. 개구장이처럼 노는 걸 좋아했지. 실상 이제 나무를 만지다 보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큰 자본 안들이고 하려다 보니까 나만의 할 수 있는 거를 하려다 보니까 자꾸 이것저것 찾는 거지. 내가 만들어보고 또 해보고 지금까지 그렇게 했던 거죠. 뭐 그런 거에 칭찬은 많이 못 받은 것 같아요.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쟤는 남 안 하는 것만 한다고. 그리고 우리 세대들은 부모님들이 뭐 이렇게 지나친 칭찬이나 사실 그런 게 좀 어색했어요. 6남매나 되니까 일일이 신경 쓰지도 못했고. 제가 막내에요. 제일 위에 형님하고 저하고 7~8년 정도 차이 나요. 제가 막내기 때문에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런데 그런 거는 나는 잘 못 느꼈는데 위에 누나들이 셋이 있는데 누나들과 같이 크면서 자라다 보니까. 근데 자기 먹고 살건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사실 그때는 부모님들도 참 어려운 시기를 겪었죠.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버님은 건재 상회를 하셨어요. 건재라는 게 집을 지을 때 적절히 필요한 것을 말해요. 시멘트가 필요할 거고, 골조가 필요할 거고 뭐 그런 거죠. 어머님은 그냥 주부셨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할 때 저희가 잘살고 있다가 아버지 회사가 조금 어려워져 학교도 하여튼 뭐 다니다 말고 그랬어요. 아버님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을 주문받았을 때에는 직접 하기도 만들고 그러셨어요. 그런 쪽으로 보면 재능을 물려받기는 한 거 같아요.


3. 아르바이트로 목공의 길에 들어서다.

목공쪽에 들어선 계기도 있으실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접하다 보니까 나이 스무 살 때. 그때는 뭘 모르니까 학교도 다니다가 공백 기간도 있고 돈 벌고 그냥 용돈 벌 욕심에 목공 쪽 아르바이트를 했지. 들어가서 하루에 돈 천 원도 받고 그렇게 하다가 개인적인 얘기지만 가지 말았어야 되는데 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신 거죠. 발을 잘못 담가서. 가지 말았어야 되는데. 어느 순간에 제가 나이가 조금 먹다 보니까 지금 같아서는 괜찮다 이거죠. 이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나무가 좋으니까 지금은 괜찮고 앞으로도 더 일을 할 수 있으니 괜찮지. 또 이게 제가 이제 몸에 밴 일이고 할 수 있으니까 아주 좋은 선택이라고 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구한테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힘드니까. 힘드는 건 사실 몸에도 좋은 건데 그마만큼 사실 그 문제가 있는 거라고. 수입이 처음에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러니 힘들고 저희는 운이 좀 많이 따라줬고 80년대에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일이 항상 넘쳤으니까. 이게 단가가 좋든 나쁘든 그걸 떠나서 하여튼 신발만 신으면 돈 벌었어요. 그때는 신발만 신으면 돈 벌었고 그렇게 이제 일을 많이 하고 그래서 좀 괜찮았죠. 운이 좀 좋은 상태죠. 근데 지금 시작하면은 또 물론 자기 아이템을 갖고 하면은 어떨지 몰라도 그냥 우리네들 하는 거 보고 나도 할 거야 이렇게 하면은 어렵다. 옛날에는 나무가 생활용품으로 많이 쓰였는데 지금은 플라스틱 산업에 밀리고 있고. 물론 플라스틱 쓸 사람은 쓰고 나무 쓸 사람은 나무 쓰는데 그만큼 시장성이 좀 좁죠.


4. 백반집같은 목공 일

사장님이 주로 하시는 거는 어떤 작업이신 거예요?
음식점으로 말하면은 갈빗집이나 홍어집, 횟집 이런 게 아니고 그냥 백반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어떤 나무가 생활 공예 같은 게 경우에는 절구갱이 이런 것도 전부 플라스틱으로 나오지만 그런 형태라든가 프로야구 선수들이 쓰는 야구 배트라든가. 이거는 스트레드에 들어가는 그런 부품 중에 하나에요. 제 거 중에서 이런 거 보면 아마 쉽게 이해할 수 있지. 글자 맞추고 하는 건데 도장이에요. 팬시 스탬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죠. 이런 건 시장이 커요. 종류도 많고. 엄청 많아요. 제품이 많은데 일일이 이게 어떤 건지 모르니 뭐. 이거는 꿀꿀이. 노트나 다이어리에 많이 하는 건데 오늘 꿀꿀이로 꿀꿀해 찍고 뭐 이렇게. 해골도 있고. 이게 범위가 크니까 이런 형식이다라고 제가 하는 거를 그냥 알려드리는 거고 웬만한 것들을 이렇게 만드는 거죠.
이거는 불도장 만들어서 꼭 찍은 거예요. 지워지지도 않아요. 이거는 뭘 만들까 하다가 내가 운동도 좋아하고 그래서 한번 만들어 보자 한 거죠.





목공 일을 하시는 분들이 그런 것 같아요.
나무라는 재질이 주는 부드러움과 또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잖아요. 그 재료를 만지시니까 그렇게 닮아가시는 건가 그 생각도 들어요. 저는 나무를 만진 지 오래됐어요. 오래 했는데도 하면서도 나무가 좋은 줄은 몰랐어요. 그냥 솔직히 말씀드려서 일단 향이 너무 좋은데 향도 좋기도 했지만 이게 좋은지 그걸 잘 사실 몰랐고 그냥 나무인가 보다 했죠. 이렇게 쭉 지내다 보니까 나무를 만들면 저는 장갑을 안 껴요. 저는 보시다시피 이제 이 정도인데 그렇지도 않아요. 살도 별로 없고 그래요. 잘 안다치는 편이죠.
거는 아까 말한 합판인 건데 나무처럼 만드니까. 이렇게 넓게 나오는 나무는 사실상 없어요. 이게 상당히 넓은 나무예요. 이거는. 넓게 나온 나무가 없으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나무로 이렇게 하는 거죠.그거는 저희 취급 품목이 아니고요. 일반 문구 스탬프 쪽으로 가시면은 기본적으로 현재 나와 있는 스탬프로 나와 있는 기성이 있을 겁니다. 제가 하는 일이 대충 이런 일이에요. 그리고 나무로 된 거는 거의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근데 나는 목공에서 다른 사람들 일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일을 할 수가 있을라나(하하). 특정 분야라. 그래도 일이라는 게 쭉 있으니까 계속하는 거예요.


5. 사용하는 나무 이야기

사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목재 가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예를 들어 스피커 같은 경우에는 지금 만들어진 나무 합판도 많이 하지만 부드러운 나무로 스핏 같은 걸 만들면은 센소리, 잡소리를 잡아주니까 소리가 부드러워지죠. 그래서 나무로 만든 스피커를 많이 알아주죠. 저는 진짜 이만한 거 선물 받았거든요. 그것 때문에 나무가 매력적이라는 걸 느끼게 된 거예요. 매력적이라 그래서 관심을 갖고 보는데 진짜 뭔 종류가 그렇게 많아요. 저 같은 경우는 특수 목적으로도 많이 쓰는데 특수목은 색깔이 있는 나무에요. 이거를 쉽게 특수목이라고 그러죠. 저는 그나마 고급 재료로 많이 쓰는 편이에요.
나무가 생활 가구로서 계속 접해져 있다가 시대가 변하고 발전되다 보니까 이제 플라스틱이 들어왔어요. 플라스틱이 지금은 많이 사용되지만, 당시에 공예품이라는 게 전부 다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플라스틱이 들어왔는데 그게 나무 시장을 잠식을 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나무 시장이 사양화 되기도 했고요.시대가 이제 좀 흐르다 보니까 나무라는 개념을 어린애들은 잘 모르는 거예요. 요즘에 다시 나무라는 것을 젊으신 분들이 나무가 좋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아시고 온라인을 통해서 나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니까 나무를 점점 알게 되는데 나무가 플라스틱 비슷한 줄 알아요. 사람들은 나무가 깨끗해야만 되는 줄 아는데 나무는 이렇게 보면 옹이도 있고 광솔이라고 그러죠. 광솔도 있고 그래요. 소비자분들이 깔끔한 것만 찾으니까 소비자에게 맞춰줘야 돈을 버는데 나는 나무 외에는 안 할 거야 이렇게 고집만 세우다가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지. 돈도 벌어서 자식들도 가르치고 해야 되는데. 소비자분들이 깔끔한 것만 찾으니까 업자들은 그냥 깔끔하게 가자 그러다 보니까 그에 맞는 나무를 만들게 된 거예요. 이렇게 압축을 해가지고 나무처럼 깔끔하게 만들어가지고 거기에 나무 무늬를 붙인 거예요.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나무라는 게 점점 설 자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나이를 좀 먹은 사람들은 나무라는 따스함을 아는 거고요. 젊으신 분들도 이제 나무의 따스함 그리고 다시 나무에 대한 관심이 돌아왔지만 까다로워지는 거지. 그래서 저희들 같은 가공하는 사람들이 옛날에 이렇게 해도 다 그냥 넘어갔는데 이게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장비들도 다 바뀌게 됐지만 저희들은 그때 당시에 일을 했던 기계 가지고 따라가니까 좀 어렵긴 하죠.

지난번에 보여주시던 제품이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예뻐서 기억에 남는데 그때도 보여주셨던 제품마다 나무가 다 달랐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사이즈마다 좀 다르기도 하고요. 이건 고객분이 주문한 안마기 같은데. 지압할 때 쓰는 거라고. 누워서 이렇게 한다고 악기가 아니에요. 이거 앞뒤로 보니까 또 악기로 해도 되겠네 이렇게. 하하. 오늘 한 50개 했는데 지금 제작 중이에요.

  

이 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는 아니고요. 우리나라 소나무는 무늬가 더 선명하고 이쁘긴 한데. 우리나라 소나무는 많은 옹이가 있어요. 이건 농도가 좀 우리나라하고는 안 맞고 뉴질랜드 소나무에요. 소나무가 약간 가벼운 쪽이죠. 이거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국산 나무고 비슷한 나무인데 굉장히 예뻐요. 느낌이 좀 묵직하잖아요. 일반인들도 보면 알 수 있죠. 좀 단단하고 그런 거. 
이런 거는 당구 큐대용으로도 쓰고요. 일반적으로 당구 큐대는 단풍나무 메이플목인데요. 그건 강도가 작업하기에 좀 여려도 경도가 좀 세가지고 탄력도 있어요. 현재 프로야구 한창이잖아요. 프로야구 야구 방망이로 많이 써요. 이런 나무들은 수입을 하는데 수입은 이제 저희가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재료상에서 수입을 해놔요. ‘우리는 이런 게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찾아가 가지고 용도에 맞춰서 사용해요. 재료상은 목재 회사 쪽을 이용하는데요. 수입상에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것을 쓰기도 해요. 인천에 주로 많이 있어 지방에서 많이들 인천으로 와요. 인천에 제일 많아요. 저희가 소량으로 해도 공급을 받고 그렇게 맞춰서 쓸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사장님께서는 어떤 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하세요?
저는 단풍나무를 많이 쓴다고 봐야 돼요. 아까 스탬프 손잡이도 단풍나무에요. 단풍나무 무늬가 이것도 다 자연적인 무늬인 거죠. 이거는 뉴질랜드 소나무. 소련산 나무. 소련이 아니라 러시아. 세대 차이가 느껴져. 원래 소송이야 이거는. 소련. 
이런 용도는 저기 안 보이는 거 내장재에요. 겉에서는 잘 안 보이고 또 기초적인 공사를 할 때 쓰는 거죠.
예를 들자면 인테리어 할 때 이 안에다가 합판을 붙인다든지 하면은 이거는 시공을 한 다음에 합판을 붙이는 용도죠. 이거는 사실은 튼튼하지는 않아요. 튼튼하지는 않은데 규격화가 되는 자재다 보니까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써요.
이 나무는 뽀플라라는 나무인데요. 포플라 나무 이것도 수입산이네요. 국산 나무는 다도나 그런 경우에 많이 쓰죠. 우리나라 나무도 많이 써요. 우리나라 소나무가 써본 중에서 결도 이쁘고 나무도 질감도 좋고. 우리나라 나무가 이렇게 굵지가 않아요. 좀 굵어야 식탁용도 쓰고 하는데 알이 이렇게 작단 말이에요. 20cm, 30cm 정도 되는데 사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양이 많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나무는 예쁘지만 무거운데 그런 점에서 맞지를 못하니까 다른 나무에 의존을 하게 되는 거죠. 사실상 국산 나무가 사실 나무 중에 나무에요. 제일 좋아요.

  

소비자분들이 벌레 먹거나 결점이 많아도 난 이게 좋다고 한다면 그게 많이 쓰여지는 거고. 골라놓고 보면 그 나무가 제일 많은 것 같아. 농산물 중에 벌레 먹고 하면은 주부님들이 싫어하니까 자꾸 깨끗한 것만 이렇게 골라서 해주잖아요. ‘그래도 벌레 보는 게 난 우리 몸에 좋습니다’ 한다면 농약도 덜 치고 좀 더 낫겠죠. 마찬가지로 국산 나무가 결점이 있어도 찾으시는 분도 있겠지. 작품이 되는데. 워낙에 깔끔한 걸 많이 좋아하셔가지고 주부님들이 조금 달리 보면 우리나라 나무가 제일 예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6. 제품 제작과 주문

사장님께서는 제품을 직접 개발도 하시고 판매도 하시네요.
내가 직접 개발하는데 아무리 작은 거더라도 종합적인 일을 해야 되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 나올 때까지 전부 제 손을 거친다면 괜찮은데 발주 처리를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처리하면서 한 군데 모아서 제품을 만들게 되는 거죠. 거기에는 복잡한 공정이 있어요. 상당히 공정이 많아요. 공정이 한 15회 정도 되지 않을까? 하나 만드는데도요. 인쇄부터 시작해서 고무 디자인 그리고 캐릭터 디자인도 해야 되고. 내가 쓸 거라면은 간단하게 하는데 판매를 하려다 보니까 그렇죠. 직격화가 돼야 되고 좀 깔끔하게 제품이 나와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일이 많게 되는 거죠. 스탬프 같은 종류들이 보통 거의 똑같은 작업 공정을 거쳐서 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서 케이스이거나 그런 거는 좀 더 된다고 봐야죠. 스탬프나 그런 거는 저한테는 생산 품목 중에 한 가지이고 또 다른 주문 일이라던가 이런 것도 같이 접목하면서 작업을 하는 거죠.

주문은 어떤 걸 좀 받으세요?
나는 이거 아니면 안 돼 이런 건 아니고요. 목재로 짜는 거라면, 목재를 이용하는 거라면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고 봐야죠. 필요하신 거를 말씀하시면 저희가 경험이 있고 하니까 예를 들자면은 꼭 갖고 계시고 싶은 게 상자를 갖고 싶은데 그런 거를 그 용도에 맞게 제안을 드린다든지 이렇게 해서 짜게 되는 거고. 어떤 분들은 자료 없이 손짓, 발짓 해가면서 설명해 주시는데 그래도 알아들어요. 같이 하면서 가르쳐주고 소재를 선택하거나 디자인을 갖고 오시는 분들은 그대로 해드리는 데 없으신 분들은 저희가 알아서 하죠. 예를 들자면 집안에 쓰는 절구갱이가 있는데 그게 시중에 나와 있는 게 다 작아요. ‘좀 크게 좀 해주세요.’ 그럴 때는 거기에 맞춰서 알아서 해주는 그런 정도로. 그거보다 크게 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소비자분들께서 사이즈를 재서 가져오시는 분들이 극히 드물어요. ‘지금 쓰는 게 좀 작아요.’, ‘시중에 이게 좀 작으니까 조금 더 길게 좀 도톰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시죠.


7. 고객을 위한 천연오일

지금 만드신 게 어떤 거예요?
십자가인데요. 좀 언발란스한 거예요. 이렇게 손에 잘 쥐게 해달라고 주문을 받았어요. 손에 쥐는 십자가라고. 이렇게 손에 쥐기 때문에 그립감이 좋아요. 지금 이거 잘 오려야 돼 가지고 연습하는 거예요. 이게 깔끔하고 이쁘게 잘 나와야 돼요 그래서 연습을 해서 발주가 이제 된 거니까 본 작업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연습을 좀 해서 하려고 했지. 이거는 저 시골에 가면 정자 앞에 보면 왜 느티나무 한 그루씩 서 있죠? 큰 거. 그게 우리나라 정서상 마을을 보호한다. 뭐 그렇거든요. 그러한 의미에서 느티나무로 이걸 제작을 하는 거죠.



좀 전에 쓰신 그 작업 도구는 이름이 뭐예요?
이거는 실톱이라고 그러는데 흔히들 얘기하는 게 스카시라고 그래요. 그래서 예전에 일본 잔재에서 나온 말인데 정교한 걸 올릴 때 쓰는데 사실 실톱이라고 해야 원래 맞는 거예요. 주로 얘기하기를 스카시죠. 곡선을 자를 때 유리 같은 거에서 큰 원형을 오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작은 곡선을 요걸로 오리고 그러거든요. 지금은 기계가 발달해가지고 이렇게 자동으로 이렇게 올리는 게 있어요. 저희는 예전부터 이걸 썼기 때문에 이걸로 고집을 하죠. 기계로 오리는 것보다는 이런 손으로 작업한 거는 좀 느낌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기계에 딱 떨어지는 거보다 수작업으로 이렇게 한 게 더 이쁘거든요. 사포로 마무리하는 건데 지금 공정상 50% 된 거예요.



오일을 왜 바르시는 거예요?
나뭇결 자체도 이쁘게 더 나오고 손에 이제 닿는 거니까 더 질감도 좀 좋게 하려고 써요. 오일은 독일산 거랑 외국 건데요. 수입품. 처음에 갈 때 초벌. 초벌을 하면 이게 느낌이 확 다를 거예요. 이 느낌하고 뭐 이런 스타일도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고 그렇죠. 이건 천연 아로마 오일인데 고객들이 손에 쥐어야 되니까 이걸로 써요. 니스는 생활 가구에 들어가는 건데 이거는 천연 아로마 오일이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재료로 만들거든요. 1차로 연마가 되면 2차로 또 바르죠. 이제 좀 스며들게 놔뒀다가 바르면 마감으로 한 번 더 바르는 거죠. 이거 오렌지 향 나죠.
요즘은 가구가 이렇게 좀 필름 붙이고 판에다 작업을 하지만 예전에는 순수 원목으로 장인분들이 순수 원목으로 장롱이나 서랍장 같은 거를 만들었단 말이에요. 근데 그거를 가구점에서는 예전에 쓰시던 동백기름을 조그마한 병에다가 이렇게 담아주셨어요. 사면 주는 건데 가구점 사장님이 동백기름을 조그마한 병에다가 줘요. 그러면 어머님이 갖고 오시면 이게 살림이거든요. 큰 살림인데 장롱이 하나 예쁘게 들어왔으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어머님도 여자분인데. 그러면 그거를 동백기름으로 가구를 계속 닦았어요. 근데 이게 사실 예전 기법인 거예요.동백기름이 오일로 바뀐 것뿐이지. 상업적인 걸로 바꿨을 뿐이지 사실 예전에 내려온 것은 동백기름으로 하는 게 우리나라의 가구에 손질하는 전통 방법이에요. 가정에서나 만드시는 분들이 하나씩 동백기름을 만들 때도 하시고 동백기름이 없으면 참기름, 들기름으로 가구에 발랐죠. 사실 여기에다가 들기름을 발라도 굉장히 좋아요. 근데 상업적인 오일이라는 게 나와서 이걸 발랐는데 정확히 무슨 추출물이라고 하는데 사실 천연 그런 재료가 이렇게 많이 나오기는 사실 어렵죠. 상업적으로 나온 오일이고 이걸로 대체를 하는거죠.



시대에 따라서 오일도 달라졌네요.
많이 좀 변했지. 그래서 예전에 어머님들은 동백기름이나 참기름, 들기름으로 장롱이나 가구를 손질하면서 애장품으로 갖고 계신 거죠. 지금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달라진 거지. 오일 바르는 기법이 우리 어머님들 손에서 이렇게 전해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8. 어린시절 꿈으로 미래를 그리다.

사장님 꿈은 어떤 거였을까요?
저는 운동선수나 연예계 쪽으로 하고 싶었어요. 사회를 본다거나 그런 쪽으로 많이 했다가 군대 갔다 오고 나이도 좀 먹고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부닥치니까 좀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전혀 쑥스럽지가 않았어요. 사람들 앞에서 사회도 보고 얘기도 잘하고 다른 사람을 리드해가면서 했는데 그 시대가 다 어디로 갔네요.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돈 버는 쪽에 신경을 써야 되지 않겠냐 한 거지. 
노래는 잘하는 거는 모르겠고 제가 어디 대회에서 나가서 최우수상 받았어요. 그때는 노래를 쉽게 쉽게 불렀어요. 기억나는 게 최병걸 씨라고 그분이 고인이 됐는데 그분 노래가 약간 좀 고고송이면서 어깨를 들썩하면서 분위기를 좀 잡아서 됐나 봐요.

기타도 칠 줄 아세요?
앞길을 하나 다시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기타를 다시 사게 됐어요. 이젠 악기 하나 정도 다루고 싶고 하네요. 아들은 결혼 안 했고 딸은 36살인데 집사람한테 어저께 나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은데 색소폰으로 할까 그랬더니 기타를 하래요. 기타를 친 경험도 좀 있고 그러니까 기타를 해라. 기타가 더 보기가 좋지 않느냐. 노래도 부르고 좋지 않냐 그래서. 이젠 그렇게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살아볼까 해요. 여기도 운영하면서.

대한공예 사장님께서 만드시는 제품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주문할 날이 오겠죠? 인터뷰 감사합니다.

시민기록일지
• 면담자 : 정은주 (면담지원: 이혜숙)
• 면담일시 : 2022.8.19. 10시 / 2022.9.5. 16시 / 2022.10.21. 16시
• 면담장소 : 대한공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