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결 따라 살아온 삶
윈스턴 스피커의 울림을 담은 장인
미추홀학산문화원
게시일 2022.12.23  | 최종수정일 2023.02.25



"메이커보다 야무지게 소량 생산해서 여기만의 시스템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1. 숭의 목공예마을에 정착하기까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변경인 이고요. 생년월일은 49년 3월 1일이에요. 고향은 여기 가까운 시흥시예요. 시흥시에서 나서 여기 인천에 들어온 게 18살에 들어왔어요. 서울공예사를 경영하다 올 5월 말로 가게를 접은 상태예요. 여기서는 지금 목공 체험 지도사 1급을 가지고 목공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미추홀로 온 것이 지금 한 40년 정도 됐어요. 미추홀구에서 꽤 오래 살았죠. 인천에 온 것이 지금의 송림동 있죠. 전도관 밑에 그리로 이사 와서 25살 때 지금의 이 도원역 있는 근처에 그때는 거기에 목선반 만드는 목공회사들이 많았어요. 그전에는 그때 당시에 농아들을 가리키는 목공 학교가 있었어요. 거기서 한 2년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제가 가구 사업을 했었어요. 30대 후반에 김포에서 우드박스라는 가구 회사를 한 15년 경영했었습니다.

그러면 직원 수도 꽤 되셨겠어요?
직원 수도 그때 당시에 제일 많을 때는 한 50명까지 됐었어요. 크다고 하면 큰데 그렇게 안 크더라고요.


 
숭의 목공예센터 교육장


2. 목공(예) 작업 이야기 

한 20년 이상 이렇게 하셨으면 혹시 특별한 고객 기억나시는 분 계세요? 특별한 주문이나요.
고정적인 거래처가 그냥 10년 넘게 거래를 쭉 하고 그러던 상황에서 지금 내가 후배한테 가게를 물려줬고요. 그 물려준 상태에서도 거래처들을 지금 다 연결해 줬어요. 사실은 제가 좀 몸이 좀 안 좋아져서 그만두게 된 거거든요.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도 좀 하고 있겠죠.

그렇게 오랫동안 거래하신 분들은 보통 뭘 계속 주문하세요?
나무 스피커도 했었고요. 스피커를 상당히 오래 했었어요. 10여 년 넘게 했었고요. 그다음에 볼링장에 들어가는 부품 같은 거 볼링장에도 목재제품이 많이 들어가요. 그다음에 제가 제일 많이 했었던 건 계단이었어요. 실내 나무 계단을 주로 많이 했었어요. 지금도 하고 있다가 후배한테 넘겨줬죠.

볼링장 레일도 그렇고 나무 계단도 그렇고 나무가 단단해야 될 것 같아요.
단단한 나무들 많이 했었죠. 볼링장 후면에도 나무가 많이 쓰여요.


 
원목계단



그 핀이 있으면 핀 뒤에 공을 받는 받침대가 있잖아요. 그거 받쳐주는 그 부품이 있어요. 목재로 된 게. 그래서 그런 것들도 많이 했었고요. 그다음에 계단, 어떤 계단을 했었냐면 계단의 종류는 엄청 많습니다. 그중에서 주로 많이 했었던 건 하나는 원형 계단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 달팽이같이 올라가는 거 있죠? 그 계단에 부품을 많이 했어요. 철제와 나무가 조합이 돼야겠죠. 그러니까 그 부분에서 목재 부분을 제가 담당했다고 보시면 되죠. 철제 부분만 또 담당하시는 분들이 있고요.

 
설치된 원형계단


한 메이커에서 이제 물건을 만들 때 여러 공정이 합쳐서 하나의 제품이 이루어지는 거죠. 근데 그 와중에 목재로만 하는 나선형 계단도 꽤 있었어요. 저도 이렇게 드라마 같은 데서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계단은 어떻게 만드는지 이렇게 간단하게 순서 같은 걸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계단도요, 좀 어느 정도의 노하우가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그냥 일자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가 하면 또 꺾어서 올라가는 경우가 있고 또 빙글빙글 돌아가는 계단도 있고 계단이 상당히 다양해졌어요. 특히나 한국의 건물들도 상당히 고급화되고 그러니까 거기에 걸맞는 계단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것들은 작은 공간에 가능하고요. 그다음에 이 계단이라는 게 그 집 안에 멋이잖아요. 꽃이라고요. 그러니까 일부러 장소를 좀 차지해도 멋있게들 만드시죠. 제일 멋있는 게 지난번에 청와대 가서 보니까 청와대 대통령들 올라다니시던 계단이 있잖아요. 그것도 나무로 잘 만드셨더라고요.


 
윈스턴 스피커



처음에 얘기하실 때 이제 가게 접으시고 은퇴하신 거잖아요. 그동안은 그럼 안 해보신 분야도 있으실 것 같아요.
특별히 안 해본 거는 지금 쉽게 얘기해서 이 거리에서 제가 안 해본 거 이런 간판 내지는 이런 조각 종류 이런 거는 안 했어요. 저는 그쪽하고는 또 길이 틀리니까 그래서 소품 가구부터 시작해서 또 할 수 있었던 분야가 제가 스피커를 좀 한 십여 년 했었어요.

나무 스피커요?
예. 그래서 나의 스피커가 지금 제 스마트폰에도 있습니다만 좀 조그만 스피커가 아닌 엄청 큰 걸 했어요. 무성 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뀔 때니까… 윈스턴 스피커라고 그래요. 사람 키보다 더 큰 그런 것들을 했었어요. 옛날 극장 화면 뒤에서 감춰져 있었어요. 
뭐 엠프도 다 진공 공간이었겠죠. 그때 당시에는 지금 같이 무슨 디지털이 아니죠.
굉장히 오래된 스피커죠. 옛날 고전 스피커 그런 걸 재생해서 좀 만들었었어요.
이제 처음에 개발해서 만들 때 한국에서는 그런 거 못 만들었을 때 만들어서 성취가 될 때 거기에 나오는 제품들을 볼 때 아주 기가 막혔죠.
스피커 같은 데 들어가는 거는 아주 소나무인데 미국 소나무 소위 햄녹이라고 그래요. 거기 옹이가 하나도 없는 거 조금 좀 선별하기 좀 어려운 것들 있죠. 그런 목재로 사용을 했고요.

스피커에 이름도 있었나요?
그거 제가 이름 짓는 게 아니라 미국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놨죠. 무성 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뀔 때니까 윈스턴인데 ‘윈스턴 스피커’라고 그래요.


3. 목공예 거리의 변화

숭의 목공예거리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이야기 들려주셔요.
배다리 그쪽에서 또 그런 게 기억이 나시는지 몰라도 그 염전에서 쓰는 수차 있죠. 물레방아 그런 것도 만드시는 분들도 있었고, 돌아가는 그런 수차도 그때 당시에 그 배다리에서 만들었었어요. 많으니까 염색에 관계된 그런 것들도 많이 생산하고 그랬죠. 그래서 그런 거 만드는 것도 두세 집이나 됐었고요. 여기는 밀집되기가 좀 쉽지 않잖아요. 이렇게 이제 다른 업종하고도 막 이렇게 섞여서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에 여기 와서도 그렇게 자리 잡기들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며칠 동안은 또 문 닫고 정리해버리고 그래서 또 나이 드신 분들 다 또 손 놓고 이런 상황이었죠.

왜 배다리 쪽에 계속 안 계시고 이사를 오신거예요?
배다리도 아시겠지만, 배다리에 주로 이 철로 변 쪽에 있었는데 철로 변 자체가 없어졌죠. 도로가 확장되면서 지금 여기 도원역 양쪽으로 지금 다 상가가 없잖아요. 거기가 다 목공소였어요. 동해사 있었고 그런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거기 있던 상가들이 싹 다 없어졌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그 도로 자체에 점유해 있던 땅들이 실질적으로는 있었던 거 아니고 전면에는 뭐 제대로 된 건물이었는지 몰라도 뒤쪽으로는 전부 철로변 땅이었다고 봐야죠. 그래서 그렇게 가로로 돼 있다고 봐야죠. 그때 도로가 정리되면서 가게를 정리한 분들이 거의 다라고 봐야죠.

이사하면서 접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또 새로 유입되신 분들도 있고 이러지 않았을까요?
그 도원역에서 건너편 철로 말고 이 건너편 쪽에 목공소들이 그래도 꽤 유지돼 있었어요. 지금 거기는 또 운동장이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가 개발되면서 거기서도 또 밀려난 거죠.

요즘 여기 목공예거리 분위기는 좀 어떤가요?
그러니까 목공예거리 분위기를 뭐라고 얘기할지 몰라도 노쇠했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왜 그러냐면 여기서 벌써 70이 넘은 그분들도 제가 봐도 지금 한 10명이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안타까워하는 게 그거예요. 그거의 타개책이 바로 무슨 제조를 목표 삼아서 추진을 해야 되는데, 그걸 추진할 수 있는 주체가 없죠.


4. 현재 시점에 대한 소회, 바람

사장님 생각에는 지금 남아 있는 요 몇 개의 목공방이라도 잘 유지가 되려면 뭐가 좀 뒷받침이 돼야 할까요?
여기 이 목공센터가 탄생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 시작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여기 목공방들을 어떻게 해서는 좀 활성화시키자 이런 차원에서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먼저 박우섭 구청장님이 이 사업을 시작하실 때만 해도 상당히 열의가 있으셨고 또 우리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거기에 맞춰서 상당히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죠. 그게 벌써 이제 10년이 됐네요.

관이나 민, 구에서 많이 할 수 있게 좀 도움도 주셔야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도 뭔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여기 이 동네를 보시다시피 다들 영세해요. 솔직히 뭐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 집들이 없어요. 다 그냥 혼자 하는 그런 가게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냥 소일거리도 되고 그냥 호구지책이라고 그래야지. 지역화돼 있는 데 들은 아직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실 여기 처음에 공방 시작하시고 구청에서 손을 대실 때 초기부터 이제 참여를 해봤어요. 그래서 구청 소회의실에서 구청 관계자들하고 회의도 하고 이럴 때 다 참여를 하고 현지 시찰 같은 것도 같이 다 다녀보고 하여튼 100% 참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근데 그때 당시에 그 공무원들께서 얘기하시기에는 독일의 유명한 목재제품을 만드는 그런데들이 꽤 있어요. 아직도 그런 선진국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걸 모델로 해서 하겠다고 그래서 잔뜩 기대를 가졌었어요. 솔직히 그래서 저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 동네가 좀 더 활성화 되고 하려면 대표되는 제품을 생산을 해서 거기에 고용도 창출하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자기 제품이 없어요. 고유한 디자인도 없고 모든 제품이 다 이런 인테리어 내지는 이런 분들에 의한 부품 내지는 이런 거를 그냥 받아서 그걸 제조해주는 쪽이지 무엇인가를 꼭 집어서 제품을 만드는 집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전에도 한번 그런 얘기를 피력했었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인천이 원래 야구의 본고장이라고 그러잖아요. 전문적으로 많이 제작을 하는 데가 대전하고 부산에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전에는 조금 규모가 있게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개인이 만드는 건데요. 여기는 이렇게 기술들이 좋고 눈썰미들이 있으니까 그런 제품을 만들어서 공간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여기 사장님들이나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전문적으로 SK 야구단에만 이렇게 납품을 한다. 박물관에도 야구의 역사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진짜 애석하게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까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가졌었어요. 그게 야구 배트든 아니면 어떤 가구든 소품이든 그래서 딱 떠오를 수 있는 동네가 되면 진짜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 그래서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진짜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 보셔야 될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 공방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젊은 사람들이 없잖아요. 지금 저부터도 지금 나이가 먹어서 이제 쉬기로 했습니다마는 지금 나하고 뭐 거의 비슷한 연령대들이 지금 여기 여러 명 계셔요. 그리고 그 밑에 후배들도 다 60대 이상이에요. 중반도 되고 다들 그런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30~40대들이 같이 참여하고 고민하고 그래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안 되는 게 아쉽죠.

나잇대 별로 한 문제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느끼는 게 다르고 그러니까 좀 젊은 사람들의 시선도 필요하고 의견도 필요한 건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젊은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필요해요. 왜 그러냐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발전해서 모든 것이 다 인터넷을 통해서 판매도 되고 주문도 받고 다 이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세대 정도는 이 컴퓨터에 약해요. 다들 여기 지금 계신 분들 자체가 컴퓨터 이런 데도 좀 약해서 그런 시장에 진출하기도 어렵고 이런 거죠. 지금은 여기서 목을 보고 지금 영업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지금 세상이 바뀌어서 목을 가지고 가는 하는 시절이 아니죠. 온라인도 되고 이러니까 그렇게 폭을 넓혀야 하는데 그 폭을 넓히려면 젊은 사람들이 좀 와야 되겠죠.

뭔가 젊은 사람들도 이 나무에 관련된 일을 하는 거에 뭔가 매력을 느끼셔야 되는데, 대부분이 은퇴하신 나이에 관심을 요즘 또 많이 가지신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여길 와도 자리 잡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면 젊은 사람들의 필요하다는 첫째 급료, 페이 같은 거 이런 것들이 그 젊은 사람들을 채워줄 길이 없어요. 지금 현재 여기 있는 분들도 어떻게 보면 자기 월급은 그냥 자기가 만들어가는 꼴이거든요. 자기 품을 들여서 그러다 보니까 발전이 좀 적죠. 그런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는 여러 분들이 찾아 올 수 있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기록일지
• 면담자 : 이혜숙 (면담지원: 정은주, 조연희, 양지원)
• 면담일시 : 2022.8.16. 16시 / 2022.8.17. / 2022.10.4. 12시
• 면담장소 : 숭의목공예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