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희망의 씨앗 양징자 대표이사 인터뷰
공세의 기록⑧
작성자 조진경 게시일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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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징자 대표님은 재일교포 2세로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윤정옥 초대대표의 일본 현지 강연을 듣고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91년 ‘우리여성네트워크’ 단체를, 1993년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드는 등 위안부 피해 실태를 알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에 대한 지원 등을 하고 있습니다. 양 대표님은 한일언어 통역에 누구보다 능통하시고 십대여성인권센터 활동의 취지와 목적을 잘 알고 계셔서 한·일 간 성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할 때마다 대가도 없이 지지와 연대의 마음으로 늘 열정적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센터 십대여성인권센터가 본격적, 공격적으로 ‘아청법’ 개정활동을 벌이면서 그 일환으로 국제연대활동이 시작되었던 “공세(2018~2020년)”의 단계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서 양 대표님에게 묻고 싶은 점이 많습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한국과 일본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현황이 유사하다는 것에 주목하여, 2017년 한·일 심리지원사례회의를 진행하고, 이어 2018년에는 일본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을 돕는 시민단체 ‘콜라보(Colabo)’와 이화여대 대산갤러리에서 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오늘’展 ‘Here I am. Here We are.’를 개최하고 토크콘서트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시회 개최를 제안하신 분이 대표님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와 목표를 가지고 그 제안을 하셨는지요? 

양징자 일본에 ‘콜라보(Colabo)’라는 단체가 있는데, 십대여성인권센터처럼 집에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가 성착취를 당하는 등의 위험에 처해 있는 소녀들을 찾아내 성착취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에요. 니토 유메노라는 분이 대표인데, 본인이 20대 때 비슷한 경험을 해서 ‘본인과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면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 당시 콜라보가 ‘우리는 구매되었다’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했는데, 그게 큰 화제였어요. 소녀들은 자신이 몸을 판 게 아니라, 집을 나가 헤매고 있을 때 본인들에게 말을 걸어 준 것은 성구매자 또는 업자라는 사람들밖에 없었고 그렇게 성을 구매당하는 과정을 담은 전시회였어요. 그리고 그 전시회의 계기가 된 게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덜란드 사진 작가가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어 일본에서 사진전시회를 열었는데 니토 유메노 대표가 콜라보와 연결된 10대 여성들과 사진전을 보러갔고, 어떤 10대 여성이 “나랑 똑같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대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성착취 피해자의 공통점을 새삼 느끼고 우리도 이런 전시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운동을 하는 것과 한국에서의 활동은 의미가 달라요. 가해국 내에서 운동을 하니 보통 사람들의 반발이 심하고 젊은 세대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리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요. 위안부 문제가 일본에 알려진 게 제가 30대였던 1990년대였고 그 당시 40~50대 분들이 현재까지 30여 분 함께 하면서 70, 80대가 되었는데 젊은 세대에게 계승되지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니토 유메노 대표와 콜라보가 자신들이 피해받은 입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굉장히 놀라웠고, 그래서 그들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우리는 구매되었다’라는 전시가 일본에서 시작된 것은 2016년이고, 2015년 12월 있었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우리의 운동이 굉장히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었죠.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오해라 할까, 한일 합의를 통해서 끝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던 때였는데, 본인들이 처한 상황이 일본군 위안부분들과 똑같다고 말한 콜라보의 전시회를 협조하고 싶어 만남이 이루어진 거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제대로 알리고 교육을 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 ‘희망씨앗기금’을 결성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기금을 통해 단순히 젊은 사람이 아니라 성폭력과 성착취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방문해서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을 만나고 10대 여성활동가와 10대 여성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을 소개하고 싶어 ‘성착취 성폭력에 반대하는 젊은 활동가 기행’을 기획했고, 2017년 6월에 결성된 희망씨앗기금의 첫 활동이었죠. 콜라보와 포르노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팝스’의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에 갔어요.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 운동뿐 아니라 십대여성 관련운동도 앞서 있었는데, 저는 본래 위안부 운동만 했던 사람이라 어떤 단체들이 있는지 잘 몰랐는데 그 당시 정대협 윤미향 대표님이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소개해 주신 거죠. 그래서 십대여성인권센터와 조진경 대표님에 관한 기사도 찾아보고, ‘이렇게 대단한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 대표가 있구나’ 라고 알게 되었어요.


센터 그렇게 만남으로 그칠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한일 공동의 전시회와 토크콘서트로 이어지게 된 건가요? 그때 전시회는 어떠셨나요?

양징자 일본 내 전시회가 성공적이었고 큰 화제가 되어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희망씨앗기금의 이사 분들도 함께 조진경 대표님에게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라는 말씀을 드린 거죠. 보통 10대 여성이 본인들이 놀기 위해 몸을 판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전시회를 통해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등 꽤 설득력이 있다는 거죠. 그때 조 대표님이 마음을 움직여 주셨고 “일본 것만 알리는 것 보다 한국의 상황 또한 전시를 함께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라는 의견을 줬고, 구체적인 기획은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해주셨죠.

한국과 일본의 운동은 본질은 같지만, 운동방식은 달랐어요. 콜라보보다 십대여성인권센터가 보다 상담이나 법률 서비스 등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등 조직적으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어요. 그래서 십대여성인권센터는 10대 청소녀들이 심리 치료 과정에서 만든 그림 등의 작품을 전시했고, 일본은 얼굴은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을 상징하는 이미지 사진과 본인의 사연에 대한 글이 많았어요. 제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마트료시카 작품이었는데, 인형의 겉모습은 웃고 있지만 그것을 열어보니까 울고 있는 모습, 억울해하는 모습, 화를 내는 모습도 있었는데 결국 그건 표면상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고 억울해하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나타낸 거죠. 그 마음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어요.


센터 그 이후 콜라보와 희망씨앗기금의 활동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양징자 십대여성인권센터와 같은 단체를 만나면서 콜라보에게는 굉장히 큰 자극이 되었고, 운동방식의 변화도 나타난 것 같아요. 현재는 없어졌지만 엑시트(EXIT)라는 버스를 운영하며 버스에 1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도 나누고 식료품을 나누어주는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그 활동도 벤치마킹했고, 피해자 지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대여성인권센터와 같이 법률 제정 운동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지금 콜라보가 매우 난처한 상황에 있어요. 일본에서 콜라보가 열심히 활동하지만 성착취를 없애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콜라보에 대해 공격하고 있어요. 업자들이나 업자들이 부추긴 유투버들이 콜라보가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다는 등 지어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일본은 10대 여성과 관련된 운동이 본래도 어려운데 그런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영향력을 높여가며 잘 싸우고 있어요.

그리고 희망씨앗기금을 통해 활동하는 젊은이들이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일본의 가해 사실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절대로 잊혀지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계승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할머니들도 어렸을 적 일본의 속임수로 위안부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재 성착취를 당하는 상황과 유사하잖아요. 이를 성폭력, 성착취 문제로 결부시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죠. 코로나 전에는 도쿄 중심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활동하면서 오히려 전국으로 본 활동들이 더 확장되기도 했죠.


센터 2018년 1차 전시회를 통해 십대 아동·청소년의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렸고,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2차 전시회를 이화여대와 국회에서 각각 개최함으로써 피해아동·청소년들이 변화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십대여성인권센터는 보다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였고, 2022년부터 디지털/성착취 피해 지원에 대한 국제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범아시아권,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양징자 십대여성인권센터가 하는 활동은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대단한 운동으로 보여요. 사업들이 체계화되어 있고, 법률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개정 운동도 하면서 피해 청소녀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병행하는데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앞으로도 10대 여성들이 성착취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을 텐데요, 지난번 십대여성인권센터와의 활동을 통해 콜라보가 많은 것을 배우고 도약할 수 있었듯이 다른 나라들에도 이 사례를 확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 피해를 입은 10대 여성과 위안부 할머니의 공통점을 이야기하자면 마음의 상처가 깊은 건데요,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접한다는 것 자체가 같은 사람으로서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들과 만나는 활동가들이 그들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피해자의 상처가 본인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말할 수 없고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어요. 이 활동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한데요, 그래도 지원받는 상대는 더 큰 뭔가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더 열심히 뛰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물론 충분히 역할을 하고 계시고, 이렇게 더 노력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무책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십대여성인권센터의 활동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니 충분히 보람을 느끼시고 이 활동을 확장해 계속해 주시면 좋겠어요.


센터 말씀주신대로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영향력이 더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반갑게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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