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밴댕이] 밴댕이회, 삶의 마지막을 배웅해주는 간곡한 기름기
양지원
게시일 2022.02.03  | 최종수정일 2022.03.29

  태생이 워낙 약골이라 어릴적 날 걷어 먹이는 일은 어머니가 아니라 연로하신 할머니가 도맡아 하셨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철철이 석쇠에 구워주시는 생선 덕에 골골했던 기골도 사람 구실할 정도로 여물게 되었고, 무엇보다 가난한 와중에도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니 입때 철이 나지 못한 것은 반절쯤 할머니 탓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당신 드실 음식도 손주 녀석 입에 넣어주시기 바빴던 탓에 장유(長幼)의 순서 따위는 늘 전도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해마다 할머니 제사상을 물리고 나면 오도카니 있는 조기구이를 바라보며, 오늘도 조기를 드시고 가셨겠구나 생각한다. 이제는 이날이 일 년 중 할머니와 겸상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 나는 할머니가 남기고 가신 조기구이를 내장째로 싹싹 긁어먹는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면, 황해도 연백, 고향에서 당신 처녀 시절 생선 구워드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숯불을 피워놓고 청어나 정어리 따위를 석쇠에 굽는데, 참기름장이 묻은 솔가지가 지글거리는 생선살을 지나갈 때마다 불길이 황황히 솟아오르며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는 두메산골 이야기. 그 생선을 맞보느라 마당에 묶어놓은 개를 밀쳐놓았더니 냅다 호랑이가 채갔다는 이야기까지. 호환(虎患)도 울고 갈 생선구이 맛이라니, 말 그대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인천으로 피난 내려와서는 밥상 사정이 야위어졌다. 좋아하셨던 청어나 정어리는커녕, 봄이면 지천이었던 준치도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 푸념하시며 조기, 황새기, 밴댕이 새끼를 구워주셨다. 하긴 인천 최초의 의학박사이자 수필가였던 신태범 선생께서도 이제 인천에 봄철 시어(時魚, 계절 생선)는 씨가 말라 준치는 고사하고 괄시받던 밴댕이를 시어의 반열에 올릴 판이라고 주장하셨으니, 의박(醫博)이나 면박(麵博-냉면 장사를 하신 할머니)이나 양학계 거물들은 이미 봄철 생선에 대해서는 일치를 보셨던 것이다.

  밴댕이를 말하는 자리에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내 이리 장황하게 풀어놓은 까닭은, 오늘 방문한 가게 상호에 황해도 연백 금산리 지명이 박혀 있어서이다. 상호가 궁금하여 주인께 여쭈니 선대 어머니께서 내 할머니와 동향분이셨다. 기실 밴댕이야 그 특유의 기름기 때문에 구이로나 찾아 먹었지 회로 먹는 것은 꺼려하였다. 그러던 것이 당장에 할머니 동향분이 시작한 음식이라는 사실에 먹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치미는 것을 보면, 머리 검은 짐승 속이 이토록 간사한가보다. 그래 주인께서 오늘 내주신 음식은 밴댕이회와 회무침이었다. 밴댕이회는 나비 모양으로 반을 갈라 켜켜이 포개어 놓았는데, 살결이 연분홍빛이다. 어복(魚腹)부터 번들거리는 누런빛이 돌다가 꼬리에 가서는 샛노란 빛을 머금은 녀석이 속살은 오히려 기름진 정체를 숨기고서 연하고 발그스름한 색으로 반전한다. 특히 전어 모양으로 몸에 비해 턱없이 작은 대가리와 얄쌍한 입매 때문에 더없이 ‘속 좁아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한 마리 온 모양으로 포개어 제 살을 내어주니 오히려 풍성해 보였다. 사실 이런 통째로 먹는 회는 경험이 일천한 까닭에 처음에는 멋없이 간장에나 찍어 음미랍시고 몇 점 떠봤다. 밴댕이 고소한 것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기름진 음식이 깔끔하고 똑떨어지기도 이만치 힘들 텐데, 뒤에 남는 비릿한 향이 매력적이구나. 이러며 청승을 떨고 있으매 기실 내 먹는 모습이 주변 분들 보기에 밴댕이 모양으로 속 좁고 박복해 보였을 터이다. 함께 자리하신 선생께서 ‘강화식’으로 먹는 방법이 최고라고 훈수를 주신다. 방법인즉 반 마리만 올려도 큰 횟점을 한 점 더 올려 온전한 한 마리로 만들어 상추에 각종 채소들과 척척 싸서 먹는 것이다. 마늘에 양파에 쌈장까지 올려 먹는 방식이 구운 삼겹살과 진배없는데 회를 먹을 때 초고추장도 꺼리는 입장에서는 회맛이 날까 싶었다. 그런데 과연 먹어보니 오히려 풍성하고 조화롭다. 나는 쌈까지 싸 먹는 한국식 회문화를 도통 이해 못하였는데, 밴댕이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제격이었다.

  주인 말씀으로는 밴댕이라는 놈이 알게 모르게 속살 안으로 잔가시가 많다고 한다. 그 가는 뼈부터 시작하여 어복과 꼬리까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것이라 맛이 더 깊고 풍미가 고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먹는 사람들도 저마다 개성을 살려, 고추장, 쌈장, 기름장을 골라서 넣고 좋아하는 푸성귀까지 가득 싸서 먹는 것이었다. 기름진 생선이니만큼 풍성하게 먹는 것이 제격인 셈인데, 밴댕이 속 좁다는 말은 이제 어불성설이지 싶다. 이토록 한 마리 통 크게 먹는 놈이 또 어디 있겠느냐라는 의견에, 나는 함께 하신 선생의 훈수를 봄마다 깊이 받들겠다 다짐하였다. 같은 이치로 생선회를 채소와 함께 갖은양념으로 버무려내는 무침도 이러한 밴댕이 맛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인 셈이다. 꼭 밥까지 비벼 한 숟가락 가득 먹어보길 추천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기서, 황해도 출신의 어머니께서 시작하신 음식이 이제 자손들을 통해 그 명맥을 이어간다는 점이 이 음식의 귀중한 가치라고 생각하였다. 토박이보다는 외지인이 더 많은 인천이기에 이렇다 할만한 향토 음식이 태부족인 현실에서 이 음식은 향토 음식의 반열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까닭은 실향에서 정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우선 이유일테고, 그 고향으로부터 이식된 솜씨가 인천에서 제일 흔한 밴댕이와 만나, 다른 지역과는 완연히 다르게 날것으로 즐길 수 있다는 이유가 또 하나일 테다. 기름져 선도 유지가 쉽지 않은 밴댕이를 횟감으로 낙점한 까닭도 연안부두에서 냉동된 것이 아닌 싱싱한 생물을 공수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린 것이다. 물론 생물을 공수하는 일도 이 작고 연한 생선을 다치지 않게 반으로 갈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예리한 집도(執刀)가 있을 때에만 가능할 터이다. 타고난 고장의 특색과 그 고장에 정착한 솜씨가 만난 것이니 가위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이라 할만하다.

  다만 이날 찾아 아쉬웠던 점은 메뉴판에 준치회가 있었는데도 먹지 못한 일이다. 여전히 준치라는 놈은 인천 바다에서 코빼기도 보일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일 년 중 준치가 들어오는 날은 손에 꼽는다고 한다. 그래도 시어(時魚)를 다루는 집이라서 밴댕이와 함께 출석부에 오른 모양인데 결석이 태반이라는 소식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밴댕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싱싱한 생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주인의 하소가 준치의 공백을 더욱 절실하게 하였다. 행여 이 밴댕이조차 귀해지면 우리는 무엇으로 배를 채운단 말인가. 하나둘, 시어를 죄다 잃어버리고 황량한 바다와 빈껍데기 어물전을 기웃거리게 될 미래 세대를 볼 낯이 없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절실한 사정은 옛 맛을 그리워하는 세대에게 그리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함에 있다. 이는 밴댕이회를 내는 이 집이 실향민 출신이라는 연원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인천과 지척인 황해도를 고향으로 두신 분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것이다.

  이제는 유명해져서 젊은 층도 제법 찾는다고는 하지만, 이곳을 오래도록 내왕하시는 분들께는 이런 집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주인께 사연을 들으니, 이 집에서는 ‘찾지 못하는 그릇’이 몇 개나 있다고 한다. 이승에서의 삶이 다되어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냐고 자식들이 물으면, 이 밴댕이회를 먹고 싶다고 하신 분들이 계셨던 모양이다. 까닭에 부탁을 받은 주인이 그릇째로 포장을 하여 보낸 것이다. 이승과 하직하는 순간 드셨던 것이니, 보잘것없는 밴댕이회가 삶의 마지막을 배웅해주는 음식이었던 셈이다. 고인이 드신 접시를 다시 돌려주지 못하고, 주인에게 그 부채 의식을 말할 때마다 주인도 그 접시를 돌려주지 말라고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삶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절실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뜩 천상병 시인의 아슴푸레한 그림 한 폭이 떠오른다. 시인의 「귀천」이라는 작품에는 삶의 마지막을 저녁노을과 노는 소년 시절의 모습으로 노래한다. 나는 이 구절을 처음 읽어주셨던 선생님 말씀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것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였다. 삶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순간임에도 마치 순진한 소년의 목소리와도 같다고. 그런데 ‘노을빛과 단 둘이서 노는’ 그 외로운 소년은 누구일까? 아이들은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다가도 노을이 질 때면 저마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노을빛과 단둘이서 노는 아이는 저녁밥이 없거나 저녁밥을 차려줄 엄마가 없는 쓸쓸한 처지인 셈이다. 삶의 마지막 길에 가장 가난하고 쓸쓸했던 순간을 소중히 추억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 노래는, 마지막 식사로 보잘것없는 밴댕이회 한 접시를 찾는 마음과 다를 바 없다. 가난하여 기름기가 간곡하였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워줬을 그 비릿한 생선은 어떠한 화려한 음식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배웅은 사람이든 음식이든 가장 소중하고 절실했던 존재에게 어울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을 마지막에 드셨노라고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를 대물림하는 것이야 말로 끊어져서는 안 될 전통이다. 나 역시 할머니로부터 그 간곡했던 기름기에 대한 사연과 맛을 대물림받았기에 주인의 사연이 무엇인지 알 만하였다. 이 작은 짐승의 기름진 뱃속에 담길 사연은 또 얼마나 많고 풍성할 것인가.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뜩 내가 아는 처녀가 생각났다. 황황히 치솟는 숯불에 생선을 굽던 연백 처녀가 몹시도 그리워졌던 것이었다. 눈앞에 자욱한 연기도 없건만 자꾸만 눈이 아려오는 밤이었다.






밴댕이회와 회무침
밴댕이회는 싱싱한생물이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는 일부러 전화를 해서 생물이 들어온 걸 확인하고 갔다. 단골집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금산식당의 밴댕이회는 유난히 깔끔하다. 기름진 밴댕이의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차가운 옥돌 위에 내어놓는데, 한 쌈 푸짐하게 입에 넣었으니 약주 한잔하지 않을 수가 없다. 회무침 맛은 하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비법을 전수받아 서울에다 체인점을 내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 같이 반찬으로 나오는 황게 간장게장도 밴댕이 못지않아 단골들이 있을 정도이다.

 

- 기록 : 학산 미담식회  (글 : 고재봉 / 사진 : 김상태, 천영기)
- 답사장소 : 금산식당 학익점 / 답 사 일 : 2021년 6월 24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