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낙지] 흡족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
양지원
게시일 2022.02.04  | 최종수정일 2022.03.29


  다리가 여덟이나 달려 생김새가 비길 데 없이 독특하여도, 대가리가 흡사 사람과 같고 그 속에는 먹물까지 품고 있기에 문어(文魚)는 글자를 아는 동물로 대접받아 왔다. 지금도 공부 좀 하였다며 유식이나 떠는 인물들을 우리는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고 속칭 ‘먹물’이라 부르는데, 문어가 들으면 퍽 섭섭할 일이겠다. 이 먹물의 원조는 실제로 척추가 없는 동물 중에 가장 영리하거니와 유난히 한국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는 어물로, 관혼상제에 두루 오르며 그 여덟개의 다리 마냥 ‘팔방미인’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어 정도의 능력은 되어야 소위 지식인이요, 진짜 먹물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실로 문어와 친척뻘인 낙지, 오징어, 꼴뚜기, 주꾸미까지 이들은 회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건어물과 반찬의 왕자인 젓갈까지 소용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넓을 박(博)자를 써서, 어물계의 박사(博士)라 할만하겠다.

  그런데 동해와 서해가 엄연히 다르기에, 다리 여덟과 열을 담당하는 대표 어물도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통팔달 도로가 자락 자락 퍼져있어도 영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역시 문어와 오징어가 대세이다. 반면 서해안 지역의 대표주자는 낙지와 갑오징어이다. 예전 인천에서는 짬뽕을 시켜도 갑오징어를 넣어줄 만큼 흔하게 쓰였고, 그 맛도 일반 오징어보다 한 수 위로 쳐줬다. 또한 낙지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은 개펄을 자랑하는 서해이기에 그 대표 가는 식재료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두 짐승 모두 어획량이 급감하고 또 수입산과 경쟁을 해야 하기에 ‘국산’은 몸값이 만만치 않다. 짐승은 짐승대로 해수(海水)가 뜨거워지고 남획되어 제 몸을 보존하기 힘들고, 서민은 친숙한 밥반찬과 점점 멀어져만 가니, 사람이든 짐승이든 신토불이(身土不二)로 사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도 어느덧 가을은 돌아왔고 이 계절에는 낙지가 제격이라기에, 계절을 흡족하게 해줄 집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흡족하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세 식구가 운영하는 이 가게는 그런 흡족하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영종 토박이인 주인이 선대부터 물려받은 배를 직접 부리며 날마다 조업을 나간다는, 그 내력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즉 가게에서 소비할 낙지는 직접 자기 배로 잡아 공수하겠다는 까다로운 방식을 고수하는 가게였다. 애초에 주인이 음식점을 인수할 적에는 낙지를 다루는 흔한 체인점이었는데 받아오는 낙지의 품이 생각했던 것보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왕에 시작하기로 한 장사이니 재료에 빈틈을 두고 싶지 않았고 또한 주인 자신의 입맛이 까다로워 국산만을 고집하겠다는 것이 이 ‘직접 공수’라는 비책의 발단이었다. 푸성귀나 고기를 직접 공수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계절마다 종잡을 길 없는 깊은 바다에서, 그것도 날마다 쓸 낙지를 콕 집어 꺼내온다니 품과 노력이 예사가 아니다. 이 집 식구들의 깐깐하고 치밀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인은 영종에서 배를 몰고 무려 백령도 근해까지 나가 통발로 낙지를 잡아 올린다 한다. 삭힌 홍어나 고등어를 통발에 넣어 바다에 뿌려놓으면, 그 냄새의 유혹을 못 이기고 낙지나 꽃게가 제 발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흔히 생각하는 개펄 낙지가 아니라 제법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리는 놈들이 가게로 들어온다. 그래서일까. 여기서 내주는 낙지는 돌문어 새끼만큼이나 풍염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호남에서는 다리가 가는 ‘세발낙지’를 웃등으로 쳐준다지만, 입맛은 제각각이어서 회로 먹는 것이 아닌 이렇게 탕으로 먹는 낙지는 살진 놈이 더 좋다고 한다. 아마도 입때 먹어본 낙지 중에 가장 살점이 토실하였던 것 같았다. 하늘이 높은 가을이면 말이 살찐다고 하더니, 그 말이 무색하게 만추(晩秋)의 바다는 낙지를 살찌우고 있었다. 바야흐로 온갖 어물이 찬 기운에 지방을 축적하고 살점을 키우는 계절이 바투 다가왔다고 낙지가 선뜻 일러준다.

  특히 앞서도 말했듯 호남에서는 세발낙지를 쳐준다는 말이 있는데, 이 살찐낙지를 맛보러 오는 손님 중 상당수가 오히려 호남 사람이라고 한다. 주인 짐작으로는 낙지 맛을 아는 사람들은 싱싱한 국산 낙지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점이 조금 의아하였다. 정작 여기서 내주는 대표 음식은 ‘박속 낙지’이니 호남색이라기보다는 충청도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온갖 지역색이 녹아 있는 인천 음식의 습속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개펄 낙지 맛에 도가 튼 호남 사람에게, 영종도 선주가 직접 잡은 이 심해 낙지를, 충청도 농가의 박속을 가미한 연포탕으로 선보인다니 음식의 내력이 종횡무진이다.

  통상으로 연포탕에는 무가 들어가기 마련이고, 또 가을무가 유난히 달고 맛있기에 그게 제격이라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금 더 감칠맛과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무는 육수에 넣는 것이 기본이요, ‘박속’을 듬뿍 넣어 토속적인 색깔을 가미하였다. 기실 그 맛은 당연히 무를 넣은 것보다 윗길이어서 세련된 맛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박속이 들어갔다고 하니, 어쩐지 토속적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박이 어떤 물건인가? 잘사는 집 지붕이 아니라, 시골 초라한 초가집 지붕에 열리는, 말 그대로 ‘흥부네’ 박이 아닌가. 속은 말려 박고지를 해 먹거나 김치로 담그기도 하고, 껍질은 바가지로 쓰이는 버릴 것 하나 없는 서민의 작물이다. 버릴 것 없는 녀석이 덩굴져 무시로 잘 자라기에, 박은 가난한 흥부네 집 식구나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온다는” 각설이의 바가지마냥 공복의 가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이런 아름다운 시구절에도 박은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손 합쳐 세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내 우시어

하이얀 박꽃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이용악 「달 있는 제사」 중)

  시인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행방불명되고, 청상이 된 어머니가 혼자 아들을 키워가는 가난한 삶의 장면이 애절하다. 남편의 기일이 되면 홀로 삶의 막막함에 눈물로 지새웠을 어머니를 밤에만 피는 박꽃에 비유한 것이니, 박이란 서민의 삶과 늘 함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박이라는 작물이 이런 까닭에 오히려 시대가 변한 지금에는 아예 구할 길이 없다. 심지어 민속촌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진기한 바가지니, 박을 구해 연포탕에 넣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주인은 유명한 요리연구가에게 이 ‘박속 낙지’를 직접 전수 받았다고 하는데, 정작 박의 대량 입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 집은 과연 이 집다운 처방을 내린다. 박씨를 구해서 영종도에서 직접 재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낙지도 직접 공수요, 부재료인 박도 직접 공수. 그 준비와 추진력은 가위 수송부대의 작전과도 같이 연포탕을 위한 태세 만반이다. 또한 인삼부터 게까지 10여 가지 재료가 육수의 맛을 거든다니, 결국 이러한 하나하나의 차이가 엇비슷한 연포탕을 다른 음식으로 바꾼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를 허용하지 않고 준비하여야 풀리는 직성, 재료로 맛이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고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하였던 것이다.

  기왕에 인상이 깊은 음식을 말하자면, 나는 엉뚱하게도 이 집에서 내주는 밑반찬을 명물로 꼽고 싶다. 직접 잡은 낙지 중, 버티지 못하고 일찌감치 죽는 녀석들을 족족 엿기름과 소금에 재워 만든 낙지젓은, 밑반찬이라는 말이 섭섭할 정도로 상차림의 버금을 다툴만하다. 닷새에서 일주일 적당히 숙성 시켜 내놓는다니, 일종의 어리젓이다. 낙지 자체가 실한데 여기에 양파나 고추 등 각종 채소를 아쉽지 않게 첨가하여, 그 자체로 좋은 술안주 감이었다. 물엿에 덩그러니 담갔다가 정체불명의 고춧가루로 불그죽죽하게 내놓는 것이 소위 오징어 젓갈의 다반사인 마당에 이렇게 젓갈을 젓갈답게 내주는 이런 씀씀이는 이제는 쉽지 않은 경험이다.

  덧붙여 주인이 낙지를 대접하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고 한다. 아픈 아내와 함께 찾아온 손님이라는데, 아내를 위해 먼 길을 우정 찾아온 것이다. 몸에 좋다는 보양식이 넘치는 세상이라지만 아픈 아내를 위해 남편이 고른음식이니 연포탕으로 부부의 인연을 더 길게 이어지길 바랐을 것이다. 그걸 기억하고 고맙게 여기는 주인의 마음마냥 억척스러운 낙지가 그 애틋한 사랑의 힘을 북돋아 주길 나도 바라본다. 연포탕에 입수하는 낙지는 여덟 다리를 치마 폭처럼 뒤집어쓰고 들어갔으리라. 흡사 심봉사 제 아비의 눈을 위해 인당수에 뛰어들었던 갸륵한 심청이처럼. 그러니 짐승의 희생이 부부의 희망에 보탬이 된다면 고마운 일이겠다. 낙지가 몸에 좋다는 말은 많아도 이런 절실한 사연을 들으면, 그 효험을 주술처럼 바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걸 직접 내주는 주인의 마음과 그 사연을 한참 동안 가게에서 이야기한 부부의 마음은 단순한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훌쩍 넘어섰을 것이다. 대체로 정성과 진심은 이러한 것 같다.

  어느 집이나 그렇지만 유독 올해는 장사를 하는 분들에게 지독한 한 해였다. 특히 재료에 타협을 두지 않고 음식에 투여하려는 이런 가게들은, 주인의 시름이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재료가 한 가지라도 덜 들어가면 그게 걱정이요, 당장에 낙지의 크기나 조황이 좋지 못하면 전전긍긍인 이런 집은 타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연포탕에서부터 시작하여 밑반찬까지 흡족한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하나 타협하고 현실 사정에 넘겨주다 보면 결국 모자라고 빈자리는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가을을 흡족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은 결국 저런 고집에서 온 것이니, 나는 저런 고집을 과연 가질 수 있을까. 그 속살은 치밀하지만 엉뚱하게도 목에서는 부드럽게 넘어가는 낙지처럼 그런 매력은 쉬 얻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속 연포탕
박속을 넣고 끊이는 연포탕은 갓 잡아 온 인천앞바다의 맛을 입으로 전해준다. 많은 이들이 산낙지를 즐겨하지만 연포탕 속의 살짝 데쳐진 낙지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보드랍다. 맛있는 한우 육회보다 부드럽다. 낙지의 맛을 아는 고수는 힘들게 산낙지를 먹기보다 연포탕 속 낙지를 찾아 헤메일 듯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배불리 먹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내일 연포탕을 찾을 것이다.

 



낙지볶음
질기지 않게 적당히 볶은 낙지와 어우러진 매콤한 양념에 비벼 먹는 밥맛은 매운데도 꿀맛이다.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때로는 낙지의 빨판이 입안에서 터지며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숨을 다한 낙지는 젓갈로 다시 환생한다. 여기에 서해에서만 잡히는 갑오징어의 두툼한 살은 생김새와 다르게 보드랍다.

 


 

- 기록 : 학산 미담식회  (글 : 고재봉 / 사진 : 김상태, 천영기)
- 답사장소 : 본가물텀벙 / 답 사 일 : 2021년 10월 26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