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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 배움의 과정으로 베푸는 음식
최지은
게시일 2022.02.10  | 최종수정일 2022.03.29

배움의 과정으로 베푸는 음식

 
구 술 자 : 최명숙(1964년생)
면 담 일 : 2021년 11월 8일(월)
면 담 자 : 고재봉
면담장소 : 삼원일식

음식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
오랜만에 찾아뵙는데요. 삼원일식이 오래되셨잖아요. 몇 년 정도나 되셨나요?
제가 한 건 34년 정도?

그럼 몇 년도에 시작을 하신 거죠?
88년이요.

사장님 고향이 어디세요?
저는 충북 제천.

충북 제천에서 인천까지 오셔서 식당을 차리셨네요. 충북이면 아예 물이랑 거리가 먼데,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저희 집안이 남편 형이 일식집을 운영하다가 남편이 특별한 직장 없고 하니깐 물려줬죠.

 

그렇게 해서 일을 배우신 거예요?
처음에는 남편이 한 15년 정도 전적으로 했었고 저는 아기 키우고 그러다가 IMF 맞으면서 일식집들이 문 닫기 시작됐죠. 일식집이 무너지고 횟집들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었었는데 어쨌든, 사실은 그때 제가 한 15년 애 기르고 하다 보니까 특별히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거에 뛰어들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 길이라는 게 참 어렵구나 그럼 이거를 내가 배워야겠구나.’ 그때 한 15년 정도 지나서 내려앉은 다음에서야 서울 종로 낙원빌딩에 요리학원을 다녔어요. 다니면서 한식, 일식, 제빵 그렇게 차근차근 배우면서 자격증 따고 해서 아마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그러면은 애초에 여기서 처음에 장사를 하신 게 아니시고?
도화IC 내려가는 쪽 우측에 거기서 있다가 여기 온 지 7년 정도 됐죠.



선어회
보통 삼원일식에서 먹는 회는 선어회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먹을 적에는 수족관에 가둬두고서는 그 자리에서 잡지 않으면 잘 믿지를 못하잖아요. 그거 때문에 왜 여기는 활어회 없냐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요?
애로점이 많았죠. 나도, 손님도 지식이 없었고 그때 당시는 저도 처음이었고 몇 년은 뭣 모르고 했고 욕도 얻어먹고 안 좋은 소리도 듣고 고발한다고 그런 소리도 듣고 그랬죠.

살아있는 생선 아니라고 고발한다고 얘기했어요?
네. 그런 소리도 듣고 냉장고 한 번 보겠다는 손님도 계시고 그런 일들이 있으면서 그래도 사람들이 지식이라는 게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잖아요. 그때 당시엔 사람 견해 차이도 있고 지식도 때로는 시대에 따라서 있나 보다, 내가 가진 지식이 다는 아니겠구나 그래서 그분들이 뭐라 그래도 제가 수용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수용했다기보다도 이해도 못 하지만 넘어간 거지.

사실은 억울하잖아요?
억울해도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위치나 가진 거라든가 대항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지. 그때 당시는 일식집 가면 남자들이 칼을 잡고 여자분들이 칼 잡는 게 없었어요. 우리는 공무원 위주로 다 했기 때문에 술 주고받고 주방장이 대접도 하고 그랬다가 제가 칼을 딱 잡는 순간 남자분들이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좀 그런 생각도 들긴 하는데 내가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깐 그런 부분도 감수가 되더라고요. 근데 손님들이 먹으러만 오는 게 아닌가 보다, 전적으로 100% 먹으러 와서 남의 가정에 관심이 많을까 그러면서 그때부터 손님들을 파악하기 시작한 거죠. 먹으러 오는데 ‘신랑 어디 갔냐고 왜 물어볼까? 회 먹으러 온 집에 내가 칼을 잡던 남편이 칼을 잡던 누가 잡던 먹는 회만 좋으면 되지 너무 오바 하시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많이 들고, 여러 가지로 부부가 같이하다가 남편 잘 안 하고 들여다보니까 그런 거에 얽히게 되었는데 내가 흔들리지 않고 자격증 따려고 열심히 했던 그게 나를 도왔지 않나 싶어요.

 

요즘은 선어회 가지고 시비 거시는 분은 없죠?
지금은 없죠. 그때는 내가 지식이 딸리고 경력도 없고 더군다나 여자고 그러다 보니깐 그걸 이길만한 조건이 나한테 하나도 없었던 거지. 근데 지금은 손님들보다 제가 경력이 또 있고 오래 하다 보니깐 더 알고 믿음이 생겨서.

원래 회 문화가 선어회로 시작한 건가요?
처음에는 활어였죠. 우리 신랑까진 활어를 하다가 IMF 때 접고 제가 다시 하면서 똑같은 길을 가기에는 너무 차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선어를 진짜로 선택해야겠다 그래서 선어를 선택한 거지. 그때는 선어가 어떤 거였냐면 바다에서 잡아서 목을 쳐요. 선어라고 하면 인식이 하얀 거 바다에서 잡아서 목을 쳐서 피를 빼서 얼음 재어서 온 거 그러면 3~4일 걸리잖아요. 그걸 육지에 오면 선어라고 그랬어요. 그때는 선어가 많이 들어오니깐 굳이 살아있는 걸 숙성을 시켜서 선어회를 만든다는 거는 없었고, 그때만 해도 인천에 사시는 분들은 선어가 뭔지를 알아서 그 사람들 토대로 일어 선거지. 그분들의 역할이 인식을 많이 시켜줬다고 봐야지. 인천에 계신 분들이 잡어 그런 거를 좋아하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나한테 힘을 많이 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같은 일행 여덟 분이 오셔도 아시는 분은 “야 그냥 먹어” 그러고 그걸 전혀 모르고 활어만 드시는 분들은 박차고 나가시는 분도 계시고. 근데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는 사실 인식이 바뀌어서 선어회가 더 고급으로 바뀌고 활어회는 인식이 많이 예전보다 떨어지고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엄청 많이 바뀌었죠. 제가 생선을 선어로 바꿀 때 한 4년은 고생했어요. 4년 정도 지나니까 선어를 찾으시더라고. 그래서 어떤 분들은 밉잖아요. 구이 달라면 안 줬어. "저 아줌마 나 미워서 구이도 안 준데." 그런 손님도 계시고.

사실 직접 먹어보고 회 맛 차이도 알아야지.
그렇죠. 저도 생선을 만져보니까 엄청 다양해요. 근데 진짜 선어가 맛있기는 해요. 바다에서 잡아서 딱 들어오는 선어는 맛있어. 일반사람들은 생선 그러면 육질을 생각하잖아요. 쫄깃함에 기준을 두잖아요. 그런데 선어를 드시는 분은 맛에 기준을 둬요. 저도 처음에는 생선을 몰랐지. 충북에서 고등어, 동태, 이면수 그런 것만 알지. 저도 회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근데 우리 신랑이 좋아해요. 야채에다 썰어서 먹어. 나는 깨소금을 범벅을 해서 하나씩 좀 먹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맛을 알아요.

아무래도 살아있는 거 잡은 거랑은 기름이나 단맛이 다르잖아요.
네. 선어는 입에 붙어. 왜 아기들이 엄마 젖 입에 딱 붙어서 빨 듯이 양식은 미끄러져 보리밥 먹듯이 튕겨져 따로 논다 그러나?

그러면 양식을 안 쓰시는 거예요?
가끔 쓰기는 해요. 왜냐면 안 쓸 수 없는 게 지금은 자연산이 많이 안 나와요.

이번에 다들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게 지금 3~4년 됐어요. 물건 보급이 잘 안 돼. 철철이 나오는 선어가 있는데 양이 완전히 줄어서 없어요.

특히 광어 같은 경우 이번에 아예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확 갔어요. 올해는 광어가 진짜 거의 없었어. 우리가 제일 많이 나는 게 광어거든요. 확 나면 날개 쪽은 쓰고 몸통 쪽은 식사 손님들 서비스로 줬는데 나오질 않아. 정말 많이 줄어들고 농어가 좀 나오긴 해요. 지금 제가 복을 조금씩 다루는데 그분들이 1킬로짜리 큰 거 물건을 잡으면 나한테 7~8마리를 줘요. 그러면 전화가 와. 내가 그걸 수용을 하고. 요즘 복이 조금 나오고 봄에 조금 나오고. 지금은 복이 큰 거는 안 나와.

올해 광어가 씨가 말랐다고 그 말씀 다들 하시더라고요.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전에는 방출한 광어라고 있어요. 4월 초에서 5월 초까지는 조그만 새끼 길렀다가 키워서 잡아 오는 그게 있잖아요. 그런 광어가 되게 많은데 올핸 그게 하나도 없어. 치어 새끼 키우잖아요. 그게 딱 4월 정도 돼서 나오는데 그게 없어. 그때가 광어 자연산이 제일 싸거든요.

 

그러면 생선은 어디서 받아 오시는 건가요?
연안부두 도매상, 소매상. 오래 하니깐 우리 쓸 물량만 전화 오면 가는 거예요. 지금은 내가 고를 수 있는 패턴이 없어요. 내가 가서 확 고르고 그러질 못해. 지금 우리 쓸 것만 두 마리, 한 마리 중간에 빼주는 거지.

아침에 받아서 손실을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손님
그리고 제가 삼원일식 생각을 하면은 유난히 다른 곳보다 여긴 어르신들이 많이 와요. 왜 많이 오실까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같은 동기라고 해야 하나. 제가 오픈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사회적으로 경제활동이라던가 많이 하다 보니까 계속 오고 아니면 공무원 계시다 퇴직하신 분들 모임, 그것도 기수별로 경찰은 경찰분들, 보건소는 보건소. 우리가 어떤 팀들이 왔냐면 보건소, 수산과 수협이라던가 수산에 관련된 구청, 시청, 경찰, 위생 그런 쪽 관공서 손님이 좀 있죠.

그런 분들 오시니까 생선은 여지가 없겠네요.
그러니깐 장사하기는 편하긴 해요.

저는 다른 이유도 있는 거 같아요. 보통 어르신 중에 회를 먹으러 간다고 할 적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여기서 점심에 식사하면 워낙 잘 해주시잖아요.
수요는 무지 늘리지는 못해요. 수용을 많이 할 수도 없고 사람 써도 타산이 안 맞고 물건 자체도 공급이 안 되고. 지금 대구 같은 건 생물을 할 수가 없어요. 대구 같은 건 냉동을 쓰기는 하는데 일단 예전에 드시는 거로 하기는 해요. 근데 제가 수용을 많이는 안 해요.

저는 사장님 주시는 거 보면 남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30년 세월이 길잖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을 돌아보면 그분들이 자기 돈 주고 와서 먹긴 했지만 나를 키웠다고 해야 되나? 내가 수고로 일한 대가긴 하지만 그 뒤에는 알게 모르게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툭툭 하는 거 있잖아요. 내가 화내면 “아이고, 아무것도 아냐~ 그냥 생선이나 한 점 더 줘.” 그러면 제가 성질낼 때도 있어요. 그렇게 어르신들이 이끌어 준거지.



기억에 남는 일
특별히 장사하시면서 기억에 남거나 힘드신 것, 보람되는 것은요?
기억에 남는 거는 처음 배울 때 손님들이 생선에 대해 지식이 없어서 진짜 애간장을 많이 녹였지. 생선에 대한 지식이라든가 나도 모르는데 손님도 더 몰라. 그럴 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서로 간의 지식이 없어서 무지한 시간이 한 4년 정도에요.

글에다가 제 추억을 좀 써도 될까요? 선배랑 공부하던 시절이라 너무 어려워서 술을 마시려면 여기서 점심만 시켜서 낮술을 마시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사장님한테 참 너무 감사해서 글에다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때는 우리가 수업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기억납니다. 요새도 혹시 멍게젓 담그시나요?
네.

 

멍게젓을 무지하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저희도 한번 담가봤는데 그렇게 맛있지는 않더라고요. 굉장히 인상 깊게 먹어서 사실은 일식집 하면 완전 일본식. 근데 삼원일식은 적절한 타협점이 있는 거 같아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아가기는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사실 매운탕도 그렇고 젓갈 나오는 일식집은 별로 없을 테니깐요.
근데 손님들이 하라고 그러니깐 한 거고 제가 요리하면서 제일 없으면 안 되는 게 뭐냐면 ‘아~ 소금이 맛있구나’ 그 생각이에요. 요리하면서 사람들이 맛있게 하려고 이것저것 넣잖아요. 제가 생선을 꼬리 부분, 날개 부분, 목 부분, 배 부분 부위별로 먹어보면 염도가 달라. 근데 기름장 안 하고 소금에 딱 찍어서 먹으면 진짜 맛있어. 간장보다 더 맛있어. 내가 요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건 소금이 참 맛있구나.

저도 가끔 소금 찍어 먹습니다. 뱃살이나 이런 거 소금에 찍으면 맛있어요.
그죠? 진짜예요. 그리고 회 뜨고 그러는 거는 사람들이 이론도 많아요. 이렇게 뜨고 저렇게 뜨고 포 뜨고 그러는데 저 같은 경우는 생선이 가는 모양 가지고 뜨려고 해요. 그 결이 있더라고. 그렇게 하니깐 이렇게 하는 게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있죠. 이게 맞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회를 뜬다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더 맛있게 먹을 거 같은데요?
그래요?

삼원일식을 오랫동안 다녀본 집이고 그래서 글 쓰는 일은 수월할 거 같아요.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