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사람들은 이 맛을 안다
시민기록단 동행이야기
최지은
게시일 2022.02.23  | 최종수정일 2022.07.13

시민기록단 동행이야기

음식문화와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른 기후와 환경의 차이가 각각의 적응방식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모습에서 보편성을 추출하는 것을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화의 다양성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역사를 형성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문화를 판단하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보다는 나 중심의 무지(無知)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소와 돼지에 대한 이해가 나라마다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소를 신성하게 여기면서 먹지 않는다. 또 어떤 곳에서는 돼지를 불결하게 여기면서 먹지 않는다. 각각의 문화적 차이에 의해 소와 돼지에 대한 접근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한 판단을 그들 중심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나 중심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때문에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갈등이 표출되고 심하면 전쟁으로까지 확대된다.

마찬가지로 음식문화의 다양성도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문화적 접촉은 대단히 빠르고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음식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문화적 접촉은 새로운 문화의 수용뿐 아니라 변용까지도 진행된다.

전통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도 않는다. 전통은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용하면 계승되고 포기하면 단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은 당시에 맞게 약간의 변용을 수반한다. 처음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처음 시작된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전통은 존재하기 어렵지 않은가?

우리음식 원형의 모습은 기후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경제·사회·문화적 변화는 우리 식탁의 모습을 바꾸었고, 작고 영세한 음식점들은 소멸하고 편의점의 도시락과 간편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게다가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라는 역병은 그 속도를 가속화 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구술활동 결과물에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상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1 미추홀시민기록단의 음식 기록 과정
이번 기록 작업으로 실린 음식점은 시민기록단이 직접 섭외 한 곳으로 업체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구술 기록의 기획의도는 미추홀구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식당을 경영해온 주인의 삶과 음식이야기, 그리고 비록 식당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미추홀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음식이야기이다. 크게는 미추홀이라는 마을이야기이면서 미추홀구에서는 어떤 음식이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는가를 정리해본 것이다. 대부분 주인을 구술자로 하여 면담하였으나, 주인의 직접 구술이 어려운 경우는 시민기록단의 기획의도에 따라 가게를 찾아온 단골고객을 대상으로 구술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시민기록단이 구술작업 한 미추홀의 음식은 크게 5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서해바다에서 잡히는 어획물을 재료로 하는 바닷가 음식이다. 바닷가 음식을 재료한 가게는 밴댕이무침으로 백년가게를 잇고자하는 ‘금산식당’, 홍어무침 거리의 ‘원조충남홍어회’, 대체 불가 인천낙지의 참맛을 전해주는 ‘낙지 마당’, 물텀벙을 넉넉하고 푸짐한 양에 인심까지 보탠 ‘김가네볼테기아구찜’이 그 대상이 되었다. 바닷가 재료인 밴댕이·홍어·낙지·물텀벙 등은 인천사람들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둘째, 전통적인 탕반음식인 국밥류 가운데 순댓국과 추어탕을 선정하였다. 순댓국은 든든한 한 끼 음식으로 부족함이 없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중 하나로 재래시장에 골목을 이루어 이름난 곳이 적지 않다. 미추홀의 대표 재래시장인 신기시장에도 순댓국 골목이 있다. 그곳에 있는 ‘언니네 순대국’이야기를 담았다. 한편 추어탕은 흔히 서민들의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인의 고향식대로 끓여낸 추어탕과 기본반찬으로 조개젓이 빠지지 않는 ‘시골추어탕’을 기록하였다.

셋째, 밀가루와 메밀이 주재료인 국수이다.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국수로는 바지락과 가리비 등 신선한 어패류를 더한 ‘가리비칼국수’, 강원도 음식과 바다재료가 어우러진 ‘옹심이 칼국수’, 사골육수와 채수의 적당한 배합의 ‘칼국수 미학’, 설거지까지 친환경을 실천하는 자가제면 가락국수 ‘우동만 100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인천 사람과 함께해온 메밀국수 집 ‘청실홍실’과 6·25전쟁으로 피난민이 인천에 정주하며 뿌리내린 황해도식 냉면 ‘백령도 냉면’, 메밀 100%라는 자부심으로 면을 뽑는 ‘마루메밀’은 전통시대 국수 재료로 사용해온 메밀을 주재료로 한다.

넷째,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리운 엄마 밥상에 비할까? 백반을 빼놓을 수 없다. 시민기록단이 선택한 백반집은 ‘주안7동에 맛있는 백반집’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반찬에 생선을 꼭 낸다는 40년 된 ‘정성식당’, 문 연지 34년 된 맛있는 밥집으로 동호회까지 소문난 ‘대호식당’, 생선조림과 직접 재료를 채취하여 만드는 반찬으로 법원·검찰청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호남식당’, 다양하고 푸짐한 쌈으로 입맛을 돋우는 ‘숭의쌈밥’이다. 그리고 시민기록단의 기획과 섭외의 결과물인 가정식 식단을 빼놓을 수 없다. 구술자 최기숙과 구술자 이진선·천선미 모녀의 음식이야기이다. 가정식에 등장하는 음식들 재료는 가족 구성원의 출신, 종사하는 직업, 개인의 음식 취향과 관련이 있다.

그 외의 기타음식으로 떡볶이와 닭강정을 기록하였다. 고추장을 기본양념으로 한 맵고 달달한 떡볶이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먹는 국민간식거리이다. 학익동에 인천의 떡볶이하면 손꼽히는 ‘얼레꼴레만두떡볶이’의 행복한 추억의 맛과 빛바랜 단골집을 기억해보았다. 한편, ‘치느님’, ‘1인1닭’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듯이 한국인의 닭요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미추홀에서도 닭강정이란 음식으로 확인된다. 그 중 신기시장에 있는 한과식 닭강정 비법으로 만드는 ‘예향 닭강정’이야기를 기록하였다.

그 지역의 음식은 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혼재되고 변형되어 새로운 음식으로 변화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맛이 되면 대표 메뉴로 이름을 얻게 된다. 과거에는 엄마에게 혹은 경험 많은 이웃 어른에게 배웠던 음식 만드는 방법이 이제는 인터넷 검색으로 간편하게 해결되면서 번거로운 질문이 필요 없어졌다. 다양한 요리책과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양산되고 있는 음식 종류의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과거와 달라진 신속한 유통망이 재료의 국경을 없애면서 모두가 공유하는 음식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음식에는 개인적 취향만이 남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로부터 전해오는 음식의 경험은 정량화된 레시피로 남길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지거나 놓칠 수 없는 맛이다. 우리의 음식이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은 ‘적당히’라는 정교한 정량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 음식은 재료 손질부터 가공까지 무척이나 세밀하고 정교하다. 그만큼 정량화해서 기록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정교함 때문에 우리의 음식문화는 세계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시민기록단이 기록한 음식들은 전국 어디에서든 즐겨먹는 서민 음식들이고 도시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대도시라고 하는 보편성 위에 바다의 어획물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미추홀의 지역적 특성이 녹취문 내용에 녹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향후 양질의 아카이빙 결과물들이 지속적으로 축적된다면 유의미한 자료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위와 같이 시민기록단의 구술 기록 활동은 음식을 주제로 한 결과물이며 아카이빙 업로드 원고와 출판 원고를 완성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코로나 방역지침 속에서 온라인 및 대면 교육을 받고 호기롭게 현장에 나아가 구술 인터뷰에 도전했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힘들고 좌절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왔고 자신감은 상처받아 위축되었다. 시민기록단은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면서 흔들린 시간을 다잡는 순간, 하나 둘 결과물들이 쌓여갔다. 흔들리는 시간이 길어 포기할 줄 알았던 주제도 마지막까지 잡아내는 끈기를 보여 주기도 했다. 마침내 원고 마감일이 되었으나 원고 완료의 개인적인 편차가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카이빙 원고와 출판물 원고의 분량이 달라 한 번의 공정이 더 필요해진 것이다. 처음엔 난색을 표했지만 단원들 간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한정된 시간 안에 기록단원 모두가 원고 완료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든든한 내편으로 동료에게 힘이 되어 주었기에 가능한 완주였다. 시민기록단의 평가회의에서 “나에게 기록작업이란 어떤 의미였는지?”라는 질문에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본인이 구술 인터뷰 초창기에 가졌던 생각과 같아 동질감이 들었고 구술 작업의 길에 잘 들어섰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시민기록단원들은 처음 교육에 참여했을 때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구술 인터뷰가 어떤 것인지 방법만 알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을 시작하는 시점에 왜 문화사강의를 하고 인천의 음식과 관련하여 공부할 수 있는 서적 및 영상 등의 정보를 제공했는지 의아했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교육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자 혼란스러웠던 부분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구술 작업을 위해 기록자가 얼마나 많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술 인터뷰에 대한 첫발을 성공적으로 뗀 것이다. 성장이란 스무살 청춘들에게만 존재하는 시간은 아니다. 기록 활동 과정을 함께하면서 미추홀시민기록단원 모두에게 성장이란 시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았다.

시민기록단의 기록 활동 결과물은 거칠지만 기록물로써의 가치를 갖는 것이라 하겠다. 시민기록단이 현장에 나아가 처음 해본 구술 기록 과정이고 서툴지만 형식을 갖추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므로 결과물의 수준이 전문가와 비교되어선 안 된다. 앞으로 시민기록단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과 노력의 시간이 지속 된다면 좀 더 나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 를 통해 널리 알려진 ‘1만 시간의 법칙’ 의 내용처럼 습관화하는 인내의 만 시간 동안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민기록단도 전문가가 되어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고민과 노력 속에서 과정을 완주한 시민기록단 김순옥 님, 김용경 님, 이혜숙 님, 정은주 님, 정지선 님, 조용희 님, 표기자 님 모두를 응원한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기록 활동을 지원해주신 학산문화원 사무국직원들과 미추홀의 음식을 구술 기록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구술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최근 뉴스를 접하면 오래된 음식점들의 폐업소식이 들려온다. 6·25전쟁과 외환위기까지 견뎌왔는데 코로나를 피해가진 못했다고....... 고된 노동을 견뎌왔지만 오래된 노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서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 서둘러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 동네 규모는 작지만 정성은 물론 맛까지 포기 못하는 건강한 이웃으로 고마운 밥집들이 오래 이어가길 바란다.

 
허은심 (미추홀시민기록단 멘토,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