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민어] 주인(主人)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민어를 다룰 수 있는 자격
양지원
게시일 2022.02.04  | 최종수정일 2022.03.29


  여름이면 어물전에 뭇 생선이 그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며 즐비하게 깔려 있어도 단연 이목을 끄는 놈은 따로 있다. 선도를 과시하기 위해 물을 뿌려 광택을 일부러 발산하는 여느 생선과는 달리, 마치 욕탕에라도 들어가 있는 것 마냥풍만한 몸을 얼음 자갈에 반쯤 담그고서 지그시 누워있는 민어의 위용은 단연 압권이다. 기실 대부분의 생선은 찬 바람이 불어야 기름이 차며 맛이 든다. 까닭에 여름에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애써 번들거리는 몸을 선전해야 하기에, 상인들은 생선에 물을 들이붓는다. 하지만 역시 여름이 제철인 놈은 다르다. 오히려 수북이 쌓인 얼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몸값으로 저를 채갈 임자를 도도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민어(民魚)는 ‘서민의 생선’이라는 기만적 이름으로 주머니 가벼운 우리들의 기를 콱 눌러버리곤 한다. 아마도 날이 갈수록 점점 귀해지는 어족이라 더욱 그런 것일 테다.

  해방 이전의 신문만 읽어 보아도 거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덕적·굴업도 일대에 몰려든 민어 떼 소식과 그 시세를 소상히 밝히고 있는데, 민어는 참조기(석수어)와 함께 서해에서 가장 주요한 어족이었다. 당시(매일신보, 1931. 8. 14) 신문에 올라온 ‘배따라기’ 소절은 덕적군도 일대 민어잡이에 종사한 어부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먹는 것은 사자(使者)밥이요
자는 곳은 칠성판(七星板)이다.


   민어가 회귀하는 계절이면, 태풍 등의 변화무쌍한 기상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어로의 삶이 열리는 것이니, 풍족하게 먹어도 그것은 저승사자가 주는 밥이요, 천애무제(天涯無際) 바다에 몸을 의탁하는 배판이 곧 관짝 너울인 칠성판이었던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민어가 잡히는 곳은 돈이 잔뜩 돌고, 목숨 값과 맞바꾼 돈을 좇아 온갖 위락시설이 들어섰다고 한다. 인천에 유난히 민어집이나 선어 횟집이 많은 까닭도 이 돈이 도는 틈바구니에 연루된 것이라니, 인천 앞바다에서 민어가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정이 서려있는 것이다.

   민어가 늘 여름 생선의 첫머리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물론 그 맛을 보장하는 기름기 머금은 거대한 풍채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잡히던 민어는 요즘보다 몸집이 더 컸다고 하는데, 민어를 화통에 가득 실은 기차가 역에 들어서면, 지게꾼들이 지게에 어른 다리통보다 더 크고 굵은 놈들을 겨우 한 마리씩만 가까스로 지고서 배달하였다. 몸집이 이렇게 크고 보니 그 소용 역시 다양하였다. 꾸덕하게 말린 포는 장기 보관이 가능하여 일 년 내내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주었고, 황해도 등지에서는 조기와 맞먹는 제수어(祭需魚)로 대접받기도 하였다. 특히 민어는 시집가는 처녀가 있는 집에서 더욱 요긴하게 쓰였다. 부레는 아교풀의 재료였기에 혼수용 가구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혼례를 앞둔 여성에게 단연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민어의 비늘이 그것이다. 민어의 수놈을 수치라 하는데, 이놈들의 비늘은 단단하면서도 아름답기에 손도끼로 조심히 패어 골무로 만들었다. 이 민어 골무는 골무 중에서도 가장 고급으로 치는 것이라,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바늘처럼 따가운 시집살이를 이 골무와 함께 버텨내길 바라는 모정이 얼마나 간절하였을지, 잔칫날 민어를 들이는 일에는 이렇게 사무치는 정도 오갔던 셈이다. 어찌 보면 민어는 이렇게 살부터 내장, 비늘까지 우리 삶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관혼상제를 함께 하였기에, 서민의 생선이라는 말로 불렸을 것이다. 또한 그래서 중요한 생선이요, 대접받는 여름 어물의 ‘주인 자리’를 떡 하니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천 숭의동에도 이십여 년간 민어를 다루셨다는 주인이 한 분 계신다. 여수에서 오셨다는 이 집 주인은 ‘선어(鮮魚)’라는 간판을 떡하니 밖에 걸고 장사를 하신다. 선어야 모든 생선의 통칭이요, 각별히 선어회를 즐기는 것이 인천 사람의 습속인데, 이런 ‘일반명사’를 과감히 가게의 상호로 쓰는 주인의 호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래 간판이 특별해 보인다고 말을 걸었더니, 글씨를 전공하시는 남편분께서 직접 쓴 것이란다. 글자그대로 우리는 ‘신선한 생선’만 다루겠다는 다짐이요, 그 자부심의 발로가 ‘선어’라는 간판을 달게 된 사연이라 하셨다. 하긴 그 선어의 대명사가 다름 아닌 민어이니 민어를 취급하는 집에 이만한 상호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이 집은 부대 음식이 잡다하게 나오는 여는 횟집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놓는 몇 가지 반찬도 모두 밥과 어울리는 것이요, 음식점에서 눈요깃감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집밥에 가까운 것들이라 더욱 정겨웠다. 생선조림과 구이도 각별하지 않아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데, 결국 어물 맛의 향방은 물 좋은 놈을 들이는 것에 다름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여름의 복판에서 이 한 상차림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민어회 한 접시. 부레를 치아로 지그시 누르면 흡사 치즈로 만든 껌 마냥 들러붙으며 비린 족속의 내장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 수 없는 풍미가 입안을 감돈다. 억센 활(角弓)의 시위를 처매고 장력을 버티게 하는 기름진 접착제가 두 턱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스며 나오는데, 그래 두 턱을 딱딱 놀리는 재미가 이 음식의 특미이다. 복달임을 위해 고기를 뜯고 뜨거운 국물을 마신다고 하지만, 민어의 부레를 씹고 즙을 빠는 이 즐거운 노역은, 치미는 더위를 다스리는 가장 큰 호사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생선회야 ‘선어’라는 간판에 이름값 한다 하여도, 회만큼이나 유난한것이 탕 맛이었다. 통상 민어 뼈를 고은 탕은 육고기 국물처럼 뽀얗고 기름지기 마련이다. 까닭에 일반적인 생선탕 맛과는 완연히 다른 묵직한 맛이 나기 마련인데, 이 집의 민어탕은 아주 맑고 개운한 것이 특색이었다. 까닭에 탕 맛이 각별한 이유를 주인께 물어보니, 다른 집과는 달리 기름진 부위나 내장 따위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름진 음식을 맑게 만들어 오히려 도드라지게 한것이다. 그런데 이 민어탕이 머금고 있는 아이러니는 주인이 가진 성향과 닮아있었다.

  여수에서 올라오셨다는 주인 내외가 선보이는 음식은, 기실 따로 배운 것이 아니라 어려서 먹고 자라온 그것이란다. 어려서 바다와 지척으로 살다 보니, 양식 생선보다는 바다에서 갓 잡은 자연산에 입맛이 길들여진 것이요, 결국 입맛에 타협을 보지 않고 차린 것이 ‘선어’를 다루는 가게였던 셈이다. 그러니 손님상에 오를 법한 음식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이 손녀에게 주어도 무방한 집밥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주인은 닭국조차 냄새를 견딜 수 없는 약한 비위의 소유자인지라, 민어탕을 끓여도 조금의 잡내를 허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시류에 따라 손님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입맛이 본위가 된 것이다. 그러니 여느 민어탕과는 달리, 마늘이니 표고 등속 따위로 잡내를 잡은 맑고 깨끗한 민어탕이 상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손님 본위가 아닌, 주인 본위! 아마도 이 말이 이 집 주인과 이 가게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민어는 어물 중에서도 고가로 정평이 난 것이요, 음식값이 비싸다고 더러 불만 어린 이야기를 하는 손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이 집 주인의 지론이다. 뻔히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던 것이기에 양식 생선을 결코 집에 들여놓기는 힘들다는 생각, 아니 생각이 아니라 내 입에서부터 받아들일 수 없거나 손녀 입에 넣어줄 수 없는 것은 팔 재간이 없다는 고지식함이 이 ‘주인본위’의 속뜻일 터이다. 까닭에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주인은 일찌감치 초탈해버렸다고 한다.

  기실 인천에 올라와 이 음식점을 시작했을 때에는 주인도 여느 가게처럼 ‘손님을 왕’처럼 모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제값 받고 정직하게 파는 음식을 두고 굳이 굽신거릴 이유가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긴 ‘손님은 왕’이라는 고약하고 천박한 문구가 또 있을까 싶다. 돈 몇 푼에 제 목으로 넘기는 음식을 해준 이에게 왕 노릇을 하겠다며 굴욕과 굴종을 요구하는 것,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우리는 그야말로 ‘천한 세상’에 살고 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요즘 신문이며 방송이며 사회 어디를 막론하고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위 ‘갑질’ 노릇이 사방팔방에서 판을 치고 있다. 그런데 이 집 주인에게 손님은 왕이 아니라 내 손녀가 먹는 음식을 낼 수 있는 그저 하나의 사람이요, 주인이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묵묵히 행하고 계셨다. 민어탕이 맑은 데는 그 주인과 손님의 지위에 대한 에누리 없이 딱 맞는 셈법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주인과 손님의 정당한 만남이기에, 그래서 이 집은 오히려 사람 대 사람으로입맛을 나누는 단골이 유난히 많은 모양이었다. ‘주인 본위’라고 말은 하였지만, 주인 역시 늘 손님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하셨다. 또한 자주 찾아오는 연로하신 단골이 발길이 뜸해지거나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하루는 종래 소식이 끊긴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식 손을 잡고 찾은 적도 있다고 한다. 몸이 쇠약하여 잃어버린 입맛을 여기서 찾을까 가까스로 오게 된 사연이라는데,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주인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오직 성숙한 사람만이 진실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惟仁者 能好人)는 옛말은 이 사례에서도 증명되는 것이다. 돈 몇 푼에 사람 사이의 정을 사고팔 수는 없기에, 그것을 초탈한 주인이야말로 오는 손님을 온전히 사람으로 맞고 예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 시국에 경제 또한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버티냐고 물어보니 이 역시 한결같은 말로 답을 주었다.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챙기기에 인건비 나갈 일이 없다는 것, 목포에서 고속버스로 아침에 올라온 민어를 단 십분 안에 손질할 수 있을 만큼 민첩하고 능숙하기에 일인 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비결이었다. 프렌차이즈니 분점이니 하는 음식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시기에 이 집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비법이란 다름 아닌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습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주인(主人)의식이란 이 집의 가장 중요한 비법인 셈이다.

  민어를 여름 생선의 주인이라고 말하였던가? 그렇다면 그 의젓한 은빛의 풍신(風身)을 다루기 위해서는, 과연 선어집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깜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을 묻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한 번 더 하던 날 주인이 내게 던진 말이 압권이었다. 조금도 보태거나 과장되게 글을 쓰지 말라는 당부였다. 신용으로 손님과 만나야 하니 책임질 수 없는 글로 낭패를 겪을 수 없다는 고지식한 부탁이었다. 그러면서도, 취재하는 내 끼니와 공복을 함께 염려해주었으니, 나 역시 공정을 위해 그날은 이 집에서 끼니를 뜰 수 없었다. 그 맑은 탕 맛을 다시 맛보기 위해서는 글을 마치고서, 허심탄회 텅텅 주린 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만큼은 손님 대접이 아니라 살뜰히 사람대접으로 차려주는 흐뭇한 상을 다시 받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민어 골파먹기
민어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전통시대 왕에게 바치는 진상품의 하나이다. 따뜻한 수온 때문에 여름 생선은 물러서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민어는 여름에 더욱 살이 탱탱하다. 큼직한 민어 한 마리 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쌀 한 가마니 가격이다. 결코 값싼 생선이 아니다. 타지역 사람들은 인천에서 민어를 먹으면서 접시에 올라온 민어 두께에 놀란다. 워낙 비싼 생선이라 인천이 아니면 이렇게 두꺼운 민어를 먹기가 쉽지 않다. 민어 한 점 입에 물면 입안이 묵직해지면서 오랫동안 씹어야 제맛을 알게 된다. 민어는 탕을 끓이면 뽀얀 기름진 국물이 듬뿍 나온다. 민어의 골을 보라 그 두께가 생선 뼈라고 믿기 어려울정도이다. 이 정도가 되야 민어의 뽀얀 기름진 국물맛이 제대로다.


 






 
- 기록 : 학산 미담식회  (글 : 고재봉 / 사진 : 김상태, 천영기)
- 답사장소 : 선어 / 답 사 일 : 2021년 9월 14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