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미추홀구 바다음식에 담긴 사연을 마주하며
최지은
게시일 2022.02.23  | 최종수정일 2022.07.13

미추홀구 바다음식에 담긴 사연을 마주하며

토박이보다 이주하여 터전을 잡아 온 사람이 유난히 많은 인천은 그 음식의 빛깔 역시 다채롭기 그지없다. 강한 지역색을 표방하고 고수하기 보다는 다양한 출신지의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가꿔온 것이 인천의 음식문화이다. 특히 인천에서도 역사가 깊은 미추홀구이기에, 미추홀구의 바다 음식에는 이러한 특색이 잘 녹아 있다.

여기 담긴 열 세 편의 음식 이야기는 이러한 미추홀구 사람들의 개성 넘치는 삶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여러 음식 중에서도 특히 바다에서 나는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음식점에 주목한 이유는 이러한 음식이 인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항구도시인 인천에서 바다 음식은 어딜 가도 지천이지만, 집집마다 그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홍어 하나를 두고도 어디서는 삭혀 먹고 어디서는 양념을 하여 냉면의 꾸미로 올린다. 회나 탕으로 즐기는 우럭을 어떤 집에서는 북어처럼 말려 젓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어물이 다양한데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출신지가 각이(各異)하다 보니 음식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이처럼 풍부해진 것이다.

우리는 음식점을 탐방하면서 그 음식에 어린 수많은 사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국수 한 가락에도 실향의 한과 애틋한 고향의 향수가 묻어나 있었다. 때로는 별것 없어 보이는 밴댕이회 한 접시에서 가난하였던 시절의 간곡하였던 삶의 내력을 읽을 수 있었다. 남들은 다 아귀라 부르지만 유독 물텀벙이라 부르는 그 정겨운 골목에서 우리 삶의 속살과 지혜를 맛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음식에 어린 역사와 사연을 만나는 사이에 우리는 인천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해야 할까, 제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버성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모나지 않게 어울려 각자의 색깔을 발산하는 조화야말로 인천의 멋이 아닐까 한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음식점을 탐방하고 기록하는 일이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의 관심은 오래도록 미추홀구라는 터전을 가꿔온 이곳 주인들의 삶과 마음씨였다. 나는 음식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기에 글을 청탁받았을 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음식을 내주시는 주인들의 사연 하나 하나를 접할 때마다 더 없이 소중한 삶의 자세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들 주인들의 내력을 씨줄로 삼고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음식을 날줄로 삼아 더듬더듬 이야기를 꾸며 갔다. 나의 귀는 늘 풍년이었고, 입은 언제나 만선(滿船)이었다. 귀를 열어 듣기만 하여도 충분하였고, 입을 벌려 먹기만 하여도 차고 넘쳤다. 주인들 삶의 내력과 어려운 와중에도 손님을 정성으로 대하는 마음씨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가르침이라, 부족한 글로는 끝내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 음식에 대한 소개나 홍보 따위가 넘쳐나는 시기에 이런 음식 탐방이 자칫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있었다. 너저분한 선전이 되지 않도록,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서 서로 음식에 대한 사연과 경험으로 이야기 엮는 일을 부축해주셨다. 무엇보다 어색하거나 수줍어하는 주인들께서 맛의 비법을 훌쩍 넘어선 인생의 비법까지 알려주신 일이 감사할 따름이다. 까닭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주인들이 품은 사연의 진미를 음미해주셨으면 한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창궐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가는 곳마다 절박한 사정으로 음식점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러한 사정 속에서 주인들이 꺼내놓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음을 독자들께 알려드린다. 글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연에 대한 애정을 부탁드리는 것이다.
 
2021. 12.
미추홀학산문화원 학산 味미담식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