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바지락] 바지락 칼국수, 서민의 골목과 늘 함께하는 벗
양지원
게시일 2022.02.04  | 최종수정일 2022.03.29


   예전 할머니께서는 내가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종종 저녁을 밥으로 할 것인지, 냉면이나 국수 따위로 때울 것인지를 묻곤 하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간단한 문장 안에도 묘한 뉘앙스가 숨어 있다. 밥을 먹는 일은 일과 중 저녁 식사라는 주요 행사에 들어가는 것, 즉 일종의 정식(定食)에 해당하는 반면, 국수 등의 밀가루 음식이나 분식은 저 “때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간단히 요기나 하고 넘어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려서는 입이 짧았던 탓에 국수 먹기를 즐겼고, 특히 밀가루 음식 중 수제비를 가장 좋아했다. 국물 멸치 몇 마리만 넣었는데도 맛있었던 것은, 기름 묻은 손으로 뜯는 손맛과 가난한 시절 수제비밖에 먹을 수 없었던 사연이 국물에 우러났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흡사 한겨울 새솜을 튼 이불 안에 들어가서 창밖의 새끼 새들이 추울까 걱정하는 것과 같은 심사이니, 이 밥상에 밥 대신 올라온 분식이 할머니 시절의 가난과는 먼 것이요, 나에게는 오히려 할머니의 품속이라는 안도와 여유를 느끼게 한 덕분일 테다.

  까닭에 어린 시절 무시로 먹던 국수나 수제비를 어쩌다 먹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라면이나 피자, 햄버거류의 밀가루 음식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그 보잘것없는 국물에 말아주는 허여멀건 한 것, 혹은 순결의 덩어리들이라고 해야 할까. 하긴 칼국수만 하여도 다 같은 것이 아니어서 지역마다 특색을 추구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라 쉽사리 특정하기 어렵다. 경상도식의 칼국수는 정말 뽀얀 고깃국물에 탐스러운 하얀 면이 “그득히 사리어진” 것이었는데, 생김새 그대로 순결을 상징한다. 반면 강원도에서 먹는 장칼국수는 걸쭉한 국물에 국수를 끓여내니 그 토속적 모습 역시 때 묻지않고 꾸밈없다는 점에서 순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인천 등지의 서해안에서 주로 먹는 칼국수는 어떨까? 가장 흔한 것이 바지락인데 국물이 개운하고 시원하다는 측면에서는 이쪽도 다른 방식의 깔끔을 추구한다. 분틀을 타고 올라 공들여 만든 국수가 아닌, 밀대질에 칼로 썰어 만든 이 흔한 가정식 국수의 분파도 한국음식 안에서 제법 복잡한 가계를 꾸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천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지락 칼국수는, 가장 흔한 것으로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미덕을 지녔다. 굳이 시간을 들여 값비싼 육수를 만들지 않아도, 바지락 몇 알이 국물의 소임을 도맡아주기 때문이다. 단순한 음식이고 먹기 쉽다는 점에서는 칼국수가 지닌 태생적 정체성이 명확하게 반영되었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援助)가 한국음식에서 본격적으로 분식이 자리를 잡은 계기라는 점에서, 그 원조 밀가루의 하역장이었던 인천에 분식이 성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서해의 무애(无涯)한 갯벌과 그 바다를 통해 들어온 원조 밀가루의 만남. 그 속에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단장(斷腸)의 사연이 켜켜이 묻어 있지만, 가장 값싸고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음식 중 대표주자이기도 하였다. 까닭에 인천에 있는 칼국집들 중에는 여느 흔한 분식점들과는 달리 제법 굵직한 나이테를 두른 가게들이 제법 있다.

  우리가 찾아간 집도 인천 토박이 주인이 두 세대에 걸쳐 운영하는 칼국숫집 이었다. 다만 지금 주인은 약 5년 전부터 운영한 것으로, 그 시작은 부모님의 친구분이 차리신 것이라 한다. 조금 의아하여 내력을 여쭤보니, 아버지 세대 두분 모두 황해도에서 내려오신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가게 한구석에는 주먹만하게 빚어놓은 만두가 쟁반에 다붓다붓 모여 있었다.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두집안이 기실 황해도 연백 출신의 피난으로 얽힌 사연이 서려 있다고 하니, 자꾸만 내 마음속에서도 묘한 감정이 꿈틀거린다. 왜냐하면 날 키워주신 할머니 역시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고향 땅이 바로 황해도 연백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내 유년을 아름답게 채색해주신 할머니를 나 역시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상실의 감정이 전이된 까닭도 있을 터이다. 그래서인지 국수와 만두 쟁반이 한켠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반가우면서도 그리운 무엇인가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온 식구가 겨울이면 밀가루 분분히 날리는 방안에서 만두를 빚었던 어릴 적 추억이 저 쟁반에 어리어 반사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반가운 국수 대접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네 사람이서 칼국수를 시켰더니 커다란 대접에 칼국수와 수제비, 만두가 가득 담겨 나와, 나는 아이처럼 기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아시는 분이 덕적도 굴을 공수하여 나눠주셨다. 덕적도 굴은 바위에서 딴 작달만한 녀석들로, 이 겨울에 먹으면 양식에 비해 향이 진하고 달다. 그냥 먹어도 좋은 것을, 주인이 국수만으로는 아쉽지 말라 내어주신 보리밥에 비벼 먹으니 비릿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비린 것을 즐기는 습속 중 가장 호사는 이 굴밥이 아닐까 한다. 하물며 덕적도 굴은 할머니들 이 칼바람을 맞으며 바위에서 채취한 것이라 더욱 귀하다. 주인이 보리밥과 함께 내주신 나물 네 종류도 모두 맛이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고사리가 단연 으뜸이었다. 산내 나는 고사리는 이런 상차림에서는 고기의 대용품이기도 하다. 일반적 푸성귀와는 다른 미끈하면서도 결대로 찢어지는 식감과 물큰하게 들어오는 산 내음은 굴밥과 좋은 배필을 이룬다. 그런데 이 보리밥이 일종의 전채(前菜) 음식이었다. 하긴 네 종류의 나물에 비벼 먹는 잡곡밥이니 전채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칼국수 한 그릇에 이런 것들이 부속으로 딸려 나오니, 국수가 쉬운 음식이라는 말은 이 집 사정에서는 통하지 않겠다. 특히 고사리나물 한 가지만 보아도, 불리고 데쳐 볶아내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주인께 여쭈니 과연 손이 쉴 틈이 없다고 한다. 특히 만두를 만들 때면, 한 번에 소로 들어가는 김치만 60킬로그램이 소용된다고 하는데, 고작 김치 한 가지가 그렇게 들어간다니 결코 예사 품이 아니다. 그래, 만두는 남는 이문도 적을 테고 칼국수가 더 쉬운 음식일 텐데 왜 굳이 고생스럽게 하시냐고 여쭈니, 이 만두 때문에 우정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멀리서는 강원도에서도 포장을 해 간다고 하는데, 이역시 실향의 음식이 지닌 애틋함이 묻어 있다. 이제는 고령이 되어 직접 만두를 빚지 못하시는 분들에게는 칼국숫집을 만두 때문에라도 일부러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그 손님들 마음에 맺힌 향수의 공복을 차마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만두를 떠보니, 과연 김치가 가득 들어간 겨울 만두의 맛이었다. 흔히 내주는 기성품과는 다르게 단맛이 배제되어 있고, 기름기가 적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주먹만 한 만두의 크기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북식 만두는 크면 클수록 소 먹는 맛이 풍성하여 좋고, 그 생김새가 일단 흡족한 기분을 돋우기 때문에 제격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만두를 바지락 국물에 국수, 수제비와 함께 떠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바지락 국물은 조금 심심하고 얕은 맛만 있다고 하여 황태를 조금 곁들인 것도 주인의 슬기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북식 만두로서 제 정체성은 지키되, 흔한 바지락 육수가 아닌 황태로 변주를 두어 깊은 맛을 얹은 것이다.

  나는 국수 장사를 하셨던 할머니 덕분에 이 한 그릇에 들어간 품과 노동이 얼마나 될지 어림짐작은 한다. 국수라는 음식은 무엇보다 손이 빠르고, 시간을 다투는 음식이다. 김이 펑펑 나는 솥에서 손을 재빨리 움직이는 일, 그 화로에 익은 손을 다시 찬물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면 피부가 종잇장처럼 얇아진다. 손으로 어지간히 뜨거운 것은 그냥 만지고 다루셨으니, 손님이 밀려드는 시간이면 전쟁터가 따로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만두에, 보리밥에 다른 부대음식이 함께 나오니 국수 장사라지만, 반쯤은 백반이나 정식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 주인께 무엇이 제일 힘드시냐 여쭈었다. 늘 이런 이야기를 건넬 때면, 주인들은 ‘가치’의 문제를 말씀하시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물가가 올라도 오백 원, 천 원 올리는 고민을 몇 번이나 해야 하고, 그렇게 가까스로 음식값을 올리면 이내 손님들 마음이 돌변한다는 것이다. 서민의 음식, 혹은 대중 식사가 가진 태생적 운명이기도 하다. 특히 국수는 간편한 음식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일례로, 비슷한 재료가 들어가는 양식이나 중식만 하여도 딸려 나오는 음식이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 사 먹길 마다 않는다. 물론 음식의 가격이 원재료의 값만 가지고 책정되는 것도 아니고, 제나라 음식이 본토에서 팔리는 사정은 국적이 다른 음식을 파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 다만 여기 주인이 고심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가파르게 올라가는 물가 현실에 비하여 칼국수의 가치에 대한 기대치는 완고하다는 말일 것이다. 하긴, 더 이익이 많이남는 칼국수만 팔든지 아니면 만두라도 공장에서 받아와 팔면 될 것을, 굳이 집에서 만두를 빚어가며 강원도에서도 찾는다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니, 주인의 셈법도 그렇게 치밀한 것은 못 된다. 인천 구도심에서 장사하는 일이란 대개 이런 사정이 다반사이다. 하지만 나는 주인 당신이 만드는 칼국수처럼 그저 앞으로도 일이 잘 풀리고 번창하시길, ‘국수’가 지닌 주술의 힘에 기대어 바랄 수밖에 없다. 국수란 어떤 음식인가. 먹기 간편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인연과 수명을 상징하는 길한 음식이 바로 국수이다.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꿇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이재무, 「국수」)

  저 부부싸움의 갈등 따위도 국수의 주술 앞에서는 사랑으로 변하고 해로의 복된 바람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님이 조금 덜 알아주더라도, 배불리먹고 가도록 보리밥까지 챙겨주시는 마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실향의 사연이 담긴 만두를 빚는 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시길 바랄 뿐이다. 순결하고 기다란 국수의 신(神)이 늘 가호로써 저 펄펄 끓는 솥과 함께할 터인데, 사람들의 공복을 채워주는 일이 수고롭더라도 이 골목을 오래도록 지켜주시리라 믿을 수밖에!

바지락 인심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한다. 인천의 바지락 칼국수는 바지락 인심이 후하다. 조그만 바지락을 하나하나 까먹는 재미는 양이 많아지면 짜증이 날 정도이다. 여기에 갖은 나물과 보리밥 한 공기 까지. 배가 터진다. 그래도 인천의 바지락 칼국수는 손님의 짜증을 아랑곳하지 않고 듬뿍 넣어준다. 물론 그 바지락 국물의 시원한 맛은 먹어본 사람만 느낄 터이다. 오늘은 저 바지락을 한꺼번에 까서 초장에 듬뿍듬뿍찍어 소주 한 잔에 날려 보내련다.


인천 굴
우리가 많이 먹는 통영 굴은 양식으로 큼지막하다. 인천 앞바다 섬에서 나는 굴들은 자연산이면서 그 크기도 무척이나 작다. 작은 굴을 하나하나 취향대로 간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으려면 감질이 난다. 그래서 한 스푼 떠서 먹어야 통영 굴 하나 만큼 된다. 따뜻한 밥 위에 한 움큼 굴을 넣고 양념간장으로 버무린 굴밥의 맛은 가히 상상이 될까? 여기에 이 굴보다 좀 더 작은 굴을 재료로 굴초회를 해 먹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 기록 : 학산 미담식회  (글 : 고재봉 / 사진 : 김상태, 천영기)
- 답사장소 : 호야네칼국수 / 답 사 일 : 2021년 11월 22일(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