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조기] 흑산 사랑방에서 끓여주었던 조기 매운탕
양지원
게시일 2022.02.04  | 최종수정일 2022.03.29



  바야흐로 봄을 알리는 철쭉이 저 남도로부터 북상하면, 그에 뒤질세라 바다에서도 맹렬히 뒤쫓아 올라오는 놈들이 있다. 볼록한 배에 누런빛을 띄고서 올라오는 조기 떼, 특히 오월에 잡히는 ‘오사리’는 단연 서해에서 가장 사랑받는 어물일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도 향긋한 봄나물과 오사리의 다디단 내장을 먹으면 비로소 개화하는 기분이 든다. 어릴 적에는 오사리 알배기가 밥상에 올라오면 철없이 뱃속의 알만 골라 먹곤 하였는데, 어느 사이엔가 내장부터 먹게 되었다. 그 비릿하면서도 배치근한 맛은 육류의 내장과는 또 다른 별미여서, 기름진 어복(御服)을 탐욕스레 먼저 헤집는 것이다.

  이는 비단 생물이나 염장 조기만이 아니라, 굴비에도 해당된다. 뱃속의 기름과 내장이 삭을 정도로 바싹 마른 굴비는 그 살결로 기름이 고루 스며 씹을수록 고소하다. 예전에는 이것을 익히지 않고 북어마냥 북북 찢어 반찬이나 안주로 소용하였는데, 이제는 굴비 자체를 만나기도 어렵다. 염도가 높은 생선을 꺼릴뿐더러, 사람들이 굴비 자체를 조기와 혼동하는 까닭도 있을 터이다. 그러니 굴비 한 마리 새끼줄에 걸어놓고 요기로 반찬을 대용하였다는 저 자린고비 의 신화도 끝장난 것이다. 고약한 구두쇠의 이야기라지만, 이제는 수입 조기가 지천이요, 소비가 만능이라 부추기는 세상에서, 예전 명성에 비하면 조기라는 녀석도 홀대받는 서러운 족속으로 전락하였다. 하물며 의사 선생님께서는 중금속을 경계하라며 아예 내장은 손도 대지 말라고 경고를 하시니, 조기 내장을 꺼내먹을 때마다 은근히 마음이 뻐근하다.

  어찌하였든 서해의 어물과 인천사람을 논하는 이 모임에서 조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막상 조기나 굴비를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어족의 흥망성쇠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찰나, 따로 부탁을 하면 국산 조기를 가져다 음식을 내주시는 집을 찾게 되었다. 기실 여기는 홍어를 전문으로 하고 민어와 장어를 함께 다루는 집이라 조기 매운탕을 요구하는 것은 퍽 결례라는 생각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한 요구가 가능했던 까닭은 이 집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업태 때문이었다.

  본디 여주인께서 운영하시는 이 가게는 1988년 고향인 흑산도(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수리)에서 인천으로 자리를 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목포에서 조업을 하기 때문에, 그 바다에서 건진 어물을 팔다 보니 자연스레 인천으로 양주(兩主)가 올라오신 것이다. 한편 뱃전의 해산물을 직접 공수 할 수 있으니, 흑산도 홍어로부터 시작하여 조기나 꽃게 등 귀한 재료를 반찬으로 아낌없이 쓸 수 있는 특장도 확보하게 되었다. 심지어 밑반찬 중에는 톳이나 바위에서 채취한 미역줄기까지 섬사람이 아니고서는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집이 독특한 것은 바로 이곳이 흑산도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인천에 사는 흑산도 출신 사람들이 향우회를 하면 기백명이 모인다는데, 그 규모도 상당하거니와 그때마다 음식을 공수해내는 주인의 수완과 능력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니 여기는 홍어전문점이라고는 하지만 정해진 메뉴 외에도 고향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와서 음식을 부탁해 먹는다. 때마침 우리도 아는 분이 있어 넌지시 조기를 부탁드렸고, 허락해주신 주인 덕에 인연을 철면피 삼아 조기 매운탕을 맛보게 된것이다.

  그런데 막상 상을 받아보니 조기 매운탕 상이 아니었다. 얼마 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를 보며 흑산도는 어물이 과연이구나 싶었더니, 우리가 받은 상이 바로 ‘어보(魚譜)’ 그 자체였다. 함께 딸려온 굴, 꽃게, 전복, 황세기젓에 귀한 홍어애까지 접시가 주르르 깔린다. 오징어 정도만 숙회요, 나머지는 젓갈이나 무침, 푸성귀 섞은 반찬으로 내주시는데, 여기가 달래 흑산도 사람들의 사랑방이 아니었다. 모두 향토색 짙은 음식으로만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짐짓 주변 손님상을 살펴보니 모두 이런 모양새였다. 그리고 더 재밌는 것은 손님들의 행동이었다. 음식을 먹다 모자라거나 아쉬우면, 혼자 일하는 주인에게 더 가져 다달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 앞까지 와서 받아 가거나 숫제 직접 퍼가기도한다. 음식점에서 주방이란 엄연히 금단의 구역이요, 그 집의 비법부터 치부까지속속들이 사정이 녹아 있는 곳이라 그 문턱을 감히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는 그 경계마저 희미하다 못해 반쯤 허물어졌다. 심지어 식사와 술을 하고서 아예 하룻밤 묵고 가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사랑방이 과장이 아니라, 음식점보다 그 정체성을 더 잘 드러내 주는 말이라 해야겠다.

  그러니 이렇게 흥성이는 가게에 들어오면, 머뭇거리는 것이 민폐이고 손해이다. 더 가져다 먹고 흠뻑 취하는 것이 주인과 손님 자리의 경계가 모호한 이 집의 룰을 준수하는 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때마침 주인이 공수해다 주신 조기도 어복이 실하여 자작한 매운탕 국물 또한 흡족하였다. 조기의 경우 국물을 많이 잡지 않고 조림과 찌개의 중간 형태로 끓여야 제맛인데, 전라도분답게 집된장으로 간을 하고 양념을 아끼지 않아 한층 입맛을 돋우었다. 조기 살이야 워낙 달고 얕은맛이 좋다지만, 카드뮴이니 하는 중금속을 경고해주신 의사 선생님 말씀은 아예 잊고 당장 내장부터 찾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무엇보다 내가 여기서 반갑게 먹은 것은 조기의 사촌뻘 되는 황세기로 담근 젓이었다. 조기야 제수어(祭需魚)로 이름 높았던 생선이라, 예전 서민의 가정에서는 이 황세기가 조기 대용품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쌀뜨물이나 야트막하게 받아 연한 홍고추만 넣고 별다른 양념 없이 염장 황세기를 쪄주 신 기억이 새록하다. 홍고추에서 지질지질 붉은 즙이 배어 나오면 그 향긋한 향이 황세기살과 어우러져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또 여기서 내준 것처럼 곰삭혀 먹는 황세기젓은 배치근한 맛으로는 단연 으뜸이어서, 밥과 함께 먹어도 좋지만 비린 것을 즐기시는 어른들은 설렁탕 따위의 탕반과 곁들여 드시기도 하였다. 더운 국물에 젓갈의 향이 더욱 물큰하게 올라오는 그 풍미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내준 황세기젓은 다른 찬거리나 안줏거리 중에서도 단연 특선이었는데, 주인께 여쭈어보니 찹쌀풀로 맛을 낸다 일러주셨다. 진한 양념이 젓갈에 착 달라붙기도 하였거니와, 찹쌀이 생선 살과 함께 삭아 과숙성된 맛이 단연 일품이었다.

  색깔이 강하고, 취향이 더없이 독특한 음식의 매력. 대중을 아우를 수는 없지만 고향 사람이나 음식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살가운 음식이 이 집의 특장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손님들 간에도 격이 없다. 가령 홍어를 먹고 싶어 찾아온 손님 중에 일행이 어물을 아예 싫어하는 경우 자기들끼리 고기를 끊어다 이 자리에서 구워 먹기도 한단다. 메뉴에도 없는 재료를 사다 먹지만 주인도 그것을 말릴 생각이 없나 보다. 심지어 고기를 사와도 조금 넉넉하게 사오는 것이 이 집 손님들의 눈치라, 제 상에서만 먹지 않고 다른 테이블까지 몇점 보시를 한단다. 그러면 받은 쪽에서도 자신들이 먹고 있는 민어며 꽃게를 답례로 넘겨준다. 계산 방법도 기이하다. 정가가 엄연히 붙어있지만, 양껏 가져다 먹고 계산할 적에는 손님이 그 어림으로 주인에게 얼마쯤 답례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면 자본주의의 룰 따위 여기서는 무용에 가깝다 봐야겠다. 유난히 이 집이 흥성이는 이유는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문뜩 나는 이 흥성이는 가게 안에서 조기찌개를 뜨며, 아까 언급한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천주교 박해 시절 죄를 입고 유배를 떠나던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모습이 그것이다. 형인 정약전은 저 흑산으로 가야하고, 동생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가야 하기에 두 형제가 나주 ‘율정점’에서 형제로서 마지막 하룻밤을 보낸다. 그 애틋한 이별의 순간 정약용이 흑산으로 가는 형을 염려하며 쓴 시가 바로 「율정별리」이다.


 
茅店曉燈靑欲滅 초가 주막 새벽 등불 얄푸르니 잦아드는데
起視明星慘將別 일어나 샛별 보니 닥친 이별 참담하구료
脉脉嘿嘿兩無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우리 둘 다 말 없기에
强欲轉喉成嗚咽 목소리 가다듬다가 설움에 흑흑거려요
黑山超超海連空 흑산은 아득하여 수평선 하늘에 잇닿는 곳
君胡爲乎入此中 형님은 어찌하여 그 안으로 가신단 말이오
(정약용, 「율정별리 중」)


  정씨 형제들에게는 나주 율정점이 별리의 장소요, 흑산은 그리움조차 차단시키는 절도라지만, 이 집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전도되어, 인천 살이가 흑산의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오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 하룻밤 흥성거림이란, 오랜만에 만난 흑산의 향수가 짙게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한 술추렴의 왁자지껄이 아니라, 가난했던 시절 흑산을 떠난 사람들의 회포와 추억이 술기운을 빌려 터져 나오는 것이다. 주인도 가장 즐겁고 뿌듯한 일이 여기서 흑산 사람을 만나 옛 기억을 더듬는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여기는 흑산도 사람들에게 인천판 ‘율정점’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정겨운 곳이 나 같은 인천 토박이 ‘외지인’을 밀쳐낼 리 만무하다. 손 크게 내어주는 음식에 사정을 두지 않으니 나 역시 잠시 흑산의 품에 안겨본 밤이었다. 이런 특이한 곳도 있었구나. 허름한 시장 골목 한편에서는 섬하나가 늦도록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조기매운탕 
예전에 그 많던 조기매운탕집이 다 사라졌다. 냉장 시설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는 천일염으로 재놨다가 해풍에 말린 씨알이 제법 굵은 굴비구이를 꽤나 먹었는데 이제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굴비조차 먹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그래서 특별히 부탁해서 조기매운탕을 먹었는데 생물이다보니 그 담백한 맛에 정신없이 들이켰다. 재료가싱싱하면 모든 것은 맛있다는 말을실감한 날이다.

 


도대체 반찬이 몇 가지여?
줄줄이 깔린 반찬 종류만 해도 20여 가지는 되는것 같다. 파래무침, 굴무침, 파김치, 꼴뚜기볶음, 고추조림, 꽃게무침, 멸치볶음, 전복오징어조림, 황세기젓갈, 조기구이, 홍어애 등 육군과 해군이 주를 이룬다. 이 중에 황세기젓갈에 꽂혀 집에 가져와 입맛이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떠서 밥에 비벼 먹고 있으니 홍어전문점에 저절로 발길이 가는 것은 인지 상정이리라.

 







 
- 기록 : 학산 미담식회  (글 : 고재봉 / 사진 : 김상태, 천영기)
- 답사장소 : 홍어전문점 / 답 사 일 : 2021년 11월 16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