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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모녀가 함께하는 홍어에서 꽃게까지
최지은
게시일 2022.02.09  | 최종수정일 2022.04.19

모녀가 함께하는 홍어에서 꽃게까지

 
구 술 자 : 김윤미(30대), 유수연(60대)
면 담 일 : 2021년 7월 6일(화)
면 담 자 : 고재봉
면담장소 : 제철홍어무침꽃게장


근황
이 가게는 시작하신 지 얼마나 되신 거죠?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는 횟수로 3년째 됐어요. 

 

그러면 다른 곳에서도 하셨던 건가요?
다른 데에서는 식당 경험이 없으니까 다른 일 좀 하다가, 어머님이 원래는 포장마차도 하시고 여러 가지 장사를 하셨어요. 그중에 홍탁 선어 집을 하셨는데 삼합 집 같은 경우에는 홍어의 톡 쏘는 암모니아 향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니까 삭히지 않은 것만 한번 해보라 해서 제가 전수 받았고, 그때 경력을 살려서 간장게장이나 양념게장 같은 거는 제가 레시피 개발을 한 거죠.

그러면 고향은 어디 신가요?
고향은 여기 인천이에요.



 산어집
그러면 어머님께서는 인천 분이신가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원래는 저희 외할머니께서 홍어 생선가게를 하셨어요. 전라도 부안에서 하셨는데 그쪽이 꽃게도 나고 홍어도 나요. 그래서 어머님이 어렸을 때부터 커터칼로 홍어 껍데기 까던 시절부터 조금씩 배우셨어요.

커터칼로 껍질 까는 게 힘들잖아요.
네, 엄청 힘들죠. 옛날에는 커터칼로 까셨다고 했는데 저는 그거를 배운 적이 없어요. 배운 적은 없는데 그걸로 그때서부터 시작하셔서 저희를 키우려고 이것저것 장사를 하시다가 산어집이 가장 괜찮았던 거죠. 그러면서 아까 말씀드렸던 말씀대로 냄새가 나니까 무침만 해봐라 그랬던 거죠.

인천에서 산어집은 좀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그렇죠. 어머님이 여기서 하신 게 아니고 선학동 먹자거리 3번 출구 그쪽에서 하셨는데 그때는 꽤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짚으로 삭히는 항아리에다가 짚으로 삭히셨거든요. 그러니까 아시는 분은 그 맛을 아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그렇게 하셨었어요. 쉬운 일이 아닌데 저희가 3남매인데 저희를 키우느라고 그렇게 열심히 하셨던 거 같아요.

사실은 지난주에 산어집을 갔다 왔는데 애로사항이 많으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죠. 왜냐면 저희 어머니도 아세요. 그게 왜 떡볶이도 순한 맛 있고, 보통 맛 있고, 매운맛 있잖아요. 그런데 삭히는 기술은 있는데 그걸 맞추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도 어려울 거 같고 차라리 보편화할 수 있고, 대중화된 맛으로 가자 해서 홍어 무침을 권유해주신 거예요.

원래는 삭히는 과정에서 냄새가 계속 나고 그러니까 애로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네, 맞아요. 저희 어머님이 예전에 산어집 하셨을 때 저도 철이 없을 때여서 냄새난다고 싫어했고, 나는 이런 장사 절대 안 할 거라고 이야기했었어요. 그런데 이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어머님 애로사항이 냄새 때문에 버스를 못 탔데요. 아무리 씻어도 나니까. 그런 눈물 나는 사연이 많죠.



연평도산 꽃게
그러면 어머님께서 부안에서 인천으로 오신 거예요?
부안에서 아버님이랑 결혼하셔서 시집오면서 인천으로 오신 거죠.

그러고서는 이제 장사를 하신 거죠?
네, 한 가지는 아니지만, 어머님이 꾸준히 하셨어요. 저희 어렸을 때는 프랜차이즈도 없었고, 체인점도 없었고 내가 혼자 단독으로 살아남아야 됐으니까 꾸준히 장사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하시고 있는 음식이 전라도 음식이 아니라 거의 다 경기도 음식인 거 같아요.
경기도 음식이기는 하지만 지금 게장 자체가 워낙 보편화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어디 지역 특산물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생각도 있어요. 해마다 2년 꽃게 철이거든요. 그때 제가 참관을 하고 선별을 해서 1년 치 저장을 하던지 2년 치 저장을 하던지 그렇게 하고 있어요. 홍어도 마찬가지예요. 웅진 수협 대청도 산이나 그게 아니면 수협 중앙에 대청도 산이 입고가 되면 거기 새벽에 나가서 1년 치 저장을 하는 거예요.

서울 경기권은 전부 대청도 거를 쓰는 것 같더라고요.
네, 부경대학교에서 교수님이 논문을 쓰셨더라고요. 흑산도랑 연평도랑 홍어가 같은 어종이다. 그리고 제가 경매장에 다닌 지 7~8년 되었거든요. 거기서 새롭게 안 사실은 여기서 전라도 분들이 사서 가지고 내려가세요. 저는 그걸 몇 번 봤거든요. 그런데 그게 나쁜 게 아니잖아요. 그냥 국산으로 써서 여기보다 인기가 많으면 갈 수도 있는 거니까.

보통 제가 게장 집에 가면 충청도 분들이 많이 하세요.
그렇죠. 태안 그쪽이 많죠.

그리고 보통 태안 꽃게를 많이 쓰고 그런데 연평도에서 가져오신다고 하세요.
네, 그렇죠. 저는 일단 인천이니까 가깝잖아요. 산지 접근성이 높으니까요.

 

그럼 꽃게에서 차이가 있는 건가요?
그런 것보다 진도에서 시작해서 꽃게가 태안으로 올라와요. 그런데 꽃게들이 알이랑 살들이 넓게 퍼져있다가 여기서 올라오면서 작아지면서 통통해지는 특징이 있고요. 연평도가 꽃게 서식지로 적합한 이유가 물살이 세서라고 선조분들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런 상황들 때문에 연평도산 꽃게가 좋다고 선조분들이 알려주시거든요. 저야 뭐 가까운 곳에서 쓰는 거니까. 그리고 또 맛있어요.

꽃게 철하면 보통 봄, 가을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러면 봄, 가을로 나눠서 하시는 건가요?
저는 원래는 봄 게를 다 사놔요. 사놓고 운이 좋게 다 팔린다 그러면 가을쯤 11월 15일 이후에 사야 알이랑 살들이 꽉 차거든요. 그래서 그때 또 구입 해요.

그러면 봄에 사실 때는 몇 월에 사시는 거예요?
봄에는 4~6월까지요.

5월에 사면 무지하게 비싸지 않나요?
엄청 비싸죠. 그런데 그때가 제일 맛있는데 어떡해요.

 

작년에는 유난히 비쌌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죠. 제가 작년에 거의 울뻔했죠. 가격이 이렇게까지 오를 수 있나. 제가 8년 전만 해도 같은 등급의 꽃게가 여기 도, 소매가가 아니라 경매가로 2만 원 선이었어요.

kg에요?
네, 저는 경매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작년에 경매가로 kg에 6만 원이 넘어가 버리는 거예요.

작년에는 왜 그렇게 된 건가요?
왜냐면, 코로나 때문에 꽃게가 이동이 불편했잖아요. 그리고 중국에서 불법으로 들어와서 항상 불법조업을 하잖아요. 제가 듣기로는 북한하고 중국에서 꽃게 잡는 그물을 생산하세요. 연평도는 통발이 아니라 그물로 잡거든요. 그런데 그 그물을 중국에서 북한에다가 하청을 주는데 코로나 때문에 생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없는 거예요.

오히려 중국에서 조업이 안 되어 물건이 안 풀렸다는 거죠?
안 풀리기도 했고, 그물 작업을 해야 게를 잡는데, 그물 작업이 안되었으니까 게를 잡을 수도 없고 씨도 말랐고 이런 악재 때문에 안 되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정말 재미있는 건 그물이 작년까지만 해도 굵었거든요. 그런데 원재료 아끼려고 실천처럼 얇아졌어요. 그래서 재작년이랑 작년이랑 그게 다르더라고요.

이것도 코로나 때문에 그물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네요.
네, 왜냐면 중국에서 북한에 하청을 주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폐쇄시켜서 넘어 올 수가 없으니까 그런 문제가 조금 심했더라고요.



장사
너무 먹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웬만한 사람들은 사 먹기 힘들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럼 작년에 장사하실 때는 애로사항이 있으셨어요?
여기 매장을 처음에는 4개의 테이블로 오픈했어요. 여기 경계로 확장을 한 거거든요. 1년 후에 유동 인구도 없고 자리도 협소하다 보니 저희가 배달을 했어요. 시작하자마자 그 이후에 택배를 준비해놨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식료품 매출이 늘어난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어렵지 않았고 유지는 했고, 대신에 홀 영업을 못 해서, 저희가 그런 부분들이 되게 힘들었죠. 왜냐면 손님들이 안 올까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포기했어요. 방역 수칙 잘 지키면서 손님 잘 받고 있어요.

사실 구도심에서 장사하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역을 끼고 있거나, 대도시면 기대가 높긴 하겠지만 훨씬 장사하기 편하죠. 여기서 장사하시면서 애로사항이나 그런 게 있으신가요?
그렇죠. 일단 제가 비싼 품목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나라 지원서 창업계획서 내서 지원금 받고 대출 엄청 받으면서 처음 시작했죠.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셨어요?
그냥 먹고 살아야겠다는 그런 절박함. 이렇게 저도 참 신기해요.

그럼 장사는 잘되신 거죠?
일단은 지금은 하향세인데 그냥 꾸준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그럼 조기 같은 것들도 받아오시는 거예요?
네, 조기도 수협 가서 국산으로 사 오는 거예요.

어디 산인가요?
조기 연근해산이요. 연근해산으로 선동이죠. 얼려온 거.



게장&홍어 요리
그럼 게장은 직접 연구해서 만드신 건가요?
네. 게장은 제가 하고 싶어서 했어요. 게장 사 먹는데 100만 원 넘게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양념게장은 저희 어머님이 전라도분이신데 양념게장을 워낙 잘하세요. 그런데 판매를 안 하고 홍어만 하셨지만 “엄마 게장은 어떻게 해야 해?” 물어보면 “뭐 넣고 뭐 넣고 해” 이런 식으로 배웠어요. 그러고 많이 도와주셨고, 기본 틀 베이스를 알려주셔서 더 가미했죠. 그리고 아마 꽃게 10kg 작업 된 걸 5박스 사서 만들어서 지인분들을 나눠드렸거든요. “맛있냐? 맛이 없냐?” 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그냥 기쁘게 생활하고 있어요.

간장게장도 그러면 직접 연구하신 거예요?
네, 간장게장 양념게장 다 직접 연구한 거예요.

 

그럼 간장은 한번 끓이나요?
네, 저희는 지금 간장은 한번 끓이고 있어요. 한번 끓여서 이제 후숙해서 드실 수 있게 하고 있어요.

간장게장은 원래 며칠이나 두죠?
저희는 다른 업체는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3일 있다가 드시라고 권해드려요. 그런데 수도권 분들은 싱겁게 드시잖아요. 이걸 하면서 되게 재미있는 게 저희가 “3일 후에 드세요.” 이렇게 해도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먼저 드세요. 신기한 게 연령대가 거의 20대예요. 20대는 빨리 드시고, 30~40대는 맛있는 날에 드시고, 그리고 어머님들, 아래 지방분들은 짭짤하게 드시잖아요. 그런 분들은 3일 후에 드시라고 하면 조절이 되는 거예요. 그게 후숙의 매력인 거 같아요.

그러면 꽃게를 직접 손질을 할 텐데, 손질하는 일이 힘들잖아요.
힘들죠. 일단은 그물을 때야죠. 그러고 택배로 가려면 발들이 세니까 통이 뚫려요. 그것도 다 잘라줘야 하죠. 새척할 때 뻘 때야죠.

 

냉동으로 된 게 들어오는 거죠?
활게들은 움직이면 살이 빠져버리니까 급냉 시켜요. 연안부두 냉동창고에 있는 거예요.

집에서 조금 해 먹으려고 하면 그놈들이 뾰족뾰족 튀어나와 있어서 손에 많이 찔리고 그렇잖아요. 홍어도 사실 만지는 일이 고욕이잖아요.
그렇죠. 미끄덩거리니까 힘들죠.

홍어는 애탕이나 그런 것들은 삭혀서 나오는 게 아니고 완전히 생물인가요?
그렇죠. 홍어 애탕은 나름 세척하는 비법이 있어요. 그걸로 세척하고요. 홍어 무침의 홍어살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숙성을 시켜요.

그러면 삭은 냄새가 나지 않나요?
그게 삭힌 게 아니라 저온 숙성을 시켜요. 삭히면 가게에 들어오셨을 때부터 냄새가 날 텐데 들어오셨을 때 냄새가 아마 없으셨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 냄새가 안 나는 거 같았어요.
네, 저희가 횟집 가면 회를 냉장고에 숙성 시키는 것처럼 홍어를 비법으로 숙성시켜요.

홍어가 조금만 상처가 나도 삭기 시작한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제가 홍어를 직접 사러 가는데, 홍어를 살 때부터 국산 암치를 써요. 암치가 제일 비싸고 좋아요.

암치가 뭐죠?
암컷이요.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암컷을 통통하고 부드럽고 찰지다라고 표현을 하시고 숫치는 뻣이다고 해서 홍어 날개가 이렇게 있으면 날개가 뻗쳐요. 그런 것들은 벌써 간 거거든요. 저는 자연스럽게 펼쳐진 것만 구입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거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메뉴로 게장은 자유롭게 선택하신 거고, 홍어는 집안 내력으로 하시게 된 거예요?
네, 원래는 제가 장사를 안 했으면 집안 내력이 안 되었을 텐데 제가 장사를 하는 바람에 내력이 되어버렸어요. 만약에 안 했으면 이어가고 그런 거는 없었겠죠. 어머님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셔서 여기서 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으니까 다행이죠.



젊은 사장님 이야기
애로사항이나 힘든 거, 장사하면서 느꼈던 보람 등 다른 말씀해 주실 게 있으신가요?
일단 홍어 같은 경우에는 국산 암치만 쓰는 집이 없어요. 그렇다고 숫치가 뻗는다고 맛이 없는 거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저는 암컷만을 고집하고 있고, 꽃게도 국산으로 수유일이 90%인 것만 제가 선별을 해서 여기서 사용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소스, 반찬 다 매장에서 만들고 생산해서 전국 택배로 가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보내달라고 하시는 분이 계세요.

해외로도 가요?
네, 홍어 무침 몇 번 보냈어요.

해외 어디서요?
필리핀이요. 왜냐면 거기에 현지 분들이 드시는 게 아니고요. 현지에 살고 계시는 한국분들이 칼칼한 매운맛이 너무 당기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주문을 요청하시는데 콜드 체인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까 고민이 많이 되죠. 겨울에만 보내야 하는 상황도 있고 그래서 그런 것도 있고, 저희가 이번에 대한민국 동행세일에 참가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라이브 방송을 했었거든요. 대한민국 동행세일 배지 차고 라이브 방송을 했었는데 7월 11일까지 하고 있고, 그리고 얼마 전 유튜브에 30대 자영업자 이야기에 촬영해서 소개될 거예요.

30대이세요?
네, 저는 30대이거든요.

엄청 젊으시네요. 원래 음식점 하시는 분들이 다들 나이가 많으신데요.
30대분들 되게 많아요.

그럼 이 대한민국 동행세일이 무엇을 하는 건가요?
지금 온라인상 중소기업청에서 중소기업 유통센터랑 소상공인이랑 시장 살리기 온라인 이벤트에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진행을 하는데 다 같이 세일해서 잘 먹고 잘살자 이런 분위기 인 거죠.

제가 여태까지 취재를 얼마 안 했지만 느낌이 되게 달라요. 왜냐면은 대부분 외지에서 올라오신 분들이고 오랫동안 장사하신 분들이랑 이야기 하다 보니까 젊은 사장님이랑 느낌이 굉장히 달라요. 보통은 택배 이런 거를 활용해서 요새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시스템을 활용하시는 분들은 아니니까 더 그런 거 같아요.
그렇죠. 근데 저는 이런 생각도 있어요. 제가 그냥 힘들다고 해서 힘든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여기 다 식구들이니까 다 같이 잘 먹고 잘살면 좋은 거니까요.



주변 상권과 계절에 따른 장사
그리고 요새 이 주변 상권은 어때요?
글쎄, 여기 상가는 조금 소소한 거 같아요. 슈퍼마켓도 신기시장이나 신포시장처럼 활성화되고, 청년 상권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약간은 소소한 느낌이에요. 잘됐으면 좋겠죠.

인천이 신포시장이나 몇 개의 시장 주변이 많이 안 좋잖아요.
그렇죠. 현재 안 힘든 데 찾기가 힘드니까요. 그리고 이런 수산물이나 해산물은 여름이 비수기에요.

겨울이 장사가 제일 잘 되시는 거죠?
봄이랑 추석, 설날 때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메뉴 특성상 찾는 시기가 있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간장게장은 어느 순간부터 보편화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화사분이 방송한 이유로 간장게장의 대중화는 그분이 하신 것 같고, 홍어 무침 같은 경우에는 삭힌 맛이 약간 코믹하니까 예능에서 벌칙으로 나온 이후로 보편화된 것 같아요.

 

이제 어머님께 질문드릴게요. 혹시 좋아하는 것 이라던지 살아온 이야기라든지, 원래 어느 동네에서 사셨어요?
저야 이쪽 동네에서 계속 살았고, 저희 어머니도 그랬지만 먹고 살려고 애들 키우느라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24살 때 시집을 와서 냉면 장사를 하셨어요.
아, 그러면 냉면 잘하시겠네요?

네, 지금은 장사를 안 하시는데요. 철 타는 음식은 힘들 때가 많아서요. 그런데 요새는 철을 안 탄다고 해요.
저도 그런 부분도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단순하게 이런 게장이나 홍어, 조기를 여기서 생산해서 유통시키고 있지만, 사시사철 나오는 이런 생선들이 수협에서 굉장히 많이 유통이 돼요. 지금은 병어가 굉장히 맛있거든요. 저는 그런 거를 오랫동안 다녀보고 지켜보면서 인터넷으로 유통을 시키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마지막 목표에요.

들으면 음식 만드는 기질이 반인 것 같고, 사업가 기질이 반이신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소원이죠. 왜냐면 조기도 현재 여기서 소금을 치고 세척을 해요. 간단하게 배민이나 오시는 손님들이 손질된 생선을 사 가시는데 좋아하세요.

조기도 보통 5월이 제일 낫지 않나요?
저는 이제 겨울에 사요. 원래 처음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가자미도 사다 놓고 갈치도 사다 놓고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 작게 시작했을 때는 그게 다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주춤하고 메뉴에 집중하고 있긴 한데 궁극적으로는 사시사철 뜨지 않게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저의 목표죠.



젊은 층이 올 수 있는 가게
그리고 어르신 분들도 많이 오시지만 젊으신 분, 20~30대분들도 많이 오시거든요. 그래서 문 쪽에다가 인생네컷을 찍을 수 있게끔 이런 걸 활용을 할 생각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나요?
제가 젊은 층에 속해서 그런지 그리고 여기 인하대랑 가까워서 그런지 몰라도 안 오진 않아요.

제가 들어오자마자 너무 젊으셔서 깜짝 놀랐거든요. 주로 아저씨들 할머니들 인터뷰 했어서 어떻게 하지 했었는데요.
여기가 지금 매장은 작지만, 라이브 방송도 매장에서 진행하고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이브 방송을 한다고요?
네, 여기서 두 번 진행했고, 그다음에 제가 또 따로 두 번 진행했고 또 온라인 판매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유튜브요?
아니요. 라이브 방송으로요. 내부 쇼핑 라이브 방송 있죠? 그립 라이브 그런 거로 해서 재미있게요.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 나온 사장님

그래서 말씀하신 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쉬지 않고 쭉 하시네요.
아, 이게 만약에 뭔가를 제가 직접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했다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는데 저희는 체인점이 아니기 때문에 바닥공사부터 천장까지 어머니랑 식구들이 머리를 짜서 했거든요. 그리고 지금 앉아계신 의자도 부실 공사여서 높아요. 왜냐면 돈을 아끼려고 바닥공사를 안 하다 보니까 이런 에피소드도 있고 그래요.

몇 식구가 운영하시는 거예요?
저, 어머니, 이모님하고 저희 아버지 같으신 분이 한 분 계시고 저희 언니 해서 이렇게 다섯 명이 운영하고 주말에는 알바도 와요.

그러면 가족들이 하시는 거네요.
그렇죠. 가족이 아니신 분들도 있는데 가족처럼 지내려고 노력을 하죠. 그런데 그건 제 생각일 수도 있어요.

어떻든 간에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엄마와 딸(엄마의 이야기)
에피소드 진짜 많죠? 엄마랑 딸이랑 운영하면 엄청 싸워요. 저희 어머니 저기 계시잖아요. 할 말이 많으실 거예요. 엄마, 여기 오셔서 할 말 있으시면 하셔도 돼요. 어머니 위주로 인터뷰가 나갈 계획이에요. 할 말 있으면 지금 녹음을 하고 있으니까 교수님이 질문을 하시면 이야기하셔도 돼요. 에피소드나 장사하면서 어려운 거 경험하시면서 이것저것 고생하신 거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한테 15살 때부터 홍어를 면도칼, 니퍼, 펜치로 이렇게 찔러서 껍질 까는 것을 배웠거든요. 시집와서는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어요. 그릇 장사도 해보고 호떡 장사도 해보고 식당 장사도 해보고 애들 데리고 힘들었어요. 엄청 어렵고 고초도 참 많았죠. 손가락질도 많이 받고 무시도 당하고 그렇게 해왔어요. 저는 장사는 38살 때부터 끊임없이 해오면서 노력을 했는데도 그게 이상하게 안 되더라고요. 몸도 안 좋고 아프고 그러다가 10년 동안은 다른 걸 하다가 아이가 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간장게장만 하지 말고 그동안에는 구내식당 일로 다닌 거예요. 예식장 국수도 삶아서 4년 동안 해보고 고추 장사도 해보고 쌀도 팔아보고 그러니까 하여튼 안 해본 거 없이 다했어요.

진짜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보셨네요.
(어머니) 그리고 특이한 게 있어요. 낚싯바늘 낚시 추를 9년 동안 부업으로 했어요.

그건 뭐로 하신 거예요?
(어머니) 추 있잖아요. 왜냐면 고기를 잡으려면 추가 무게가 있어야 쇳조각을 대나무에 엮으면 그게 물속으로 들어가잖아요. 그 과정을 낚싯바늘도 메고 추도 달아보고. 그걸 제가 집에서 9년을 했어요. 하여튼 장사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아까랑 반복되는 말이지만 여태까지 아프기만 하고 힘들고 어렵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랬는데 얘가 장사를 간장게장하고 꽃게무침만 한데요. “야, 그렇게 하지 말고 엄마가 살아생전에 전수해줄 거니 홍어를 해봐라.”라고 했더니 싫데요. 애하고 얘 동생이 있어요. 사실은 둘이서 나를 공격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포기도 할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해보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처음에는 제가 손으로 그거를 까기도 하고 썰어서도 하고 1년 반을 잡았어요. 칼로 손질하고 잡는 과정을 얘한테 알려줬어요. 그러다가 기계 들어 온 거는 1년 조금 넘었어요. 그런 고초가 있다 보니까 오늘날 여기까지 오더라고요. 이제는 좋은 소식도 있고, 도와주시려고도 하고. 그리고 우리 딸이 노력한 만큼 덜 되니까 속상한 것이 있더라고요. 진짜 밑바닥부터 했거든요. 무절임, 홍어 까는 거, 써는 거, 다데기 만드는 것도 다 제가 전수를 해줬어요. 홍어 다데기도 그게 있어야 무칠 거 아니에요. 그런 것도 다 해줬는데 노력의 끝은 어디까지 있을지 모르겠어요. 좋은 끝이 있을지, 나쁜 끝이 있을지. 저는 좋은 끝이 있길 바라요. 정말 대부자는 안 되더라도 중까지만 가더라도. 딱 여기까지만 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그런데 양념 같은 경우는 원래 요리를 잘하시니까 알고 계셨던 거겠죠?
(어머니) 제가 원래 15살 때부터 홍어에 대해서는 잡고 무치는 걸 저희 어머니한테 배웠어요.

부안에서 무쳐 먹기도 합니까?
(어머니) 네, 다. 그런데 저희 친정어머니가 홍사(홍어와 상어)를 장사했어요. 그러니까 저희 친정어머니가 고군산 아시죠? 지금 새만금.

아, 그런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새만금 색시인데 배를 10척을 부리면서 외갓집 할아버지가 그렇게 그걸 배워서 장사를 하신 게 생선을 배를 부렸어요. 결과적으로 시집을 오셔서 홍어하고 상어 장사를 했어요. 그러면서 음식을 하셔서 마을 사람들도 먹고. 저희 친정집이 중간이라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무쳐서 전라도는 홍어 무침, 홍어 상어가 없으면 잔치가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변해서 그렇고요.

상어는 어떻게 먹나요?
(어머니) 상어는 어떻게 먹냐면요. 이제 삐들 말려요. 말려서 이만하게 잘라. 상어는 잘라서 된장이 들어가야돼.

상어도 냄새나잖아요?
(어머니) 안나요. 안 나는 게 뭐냐면 삐들 말리면 그게 이제 기본으로 된장이 들어가고 거기서 갖은양념을 다 해서 마늘, 파 하고 무쳐서 찜기에다 쪄요. 찜기에 찌면 정말 맛있어요.

그런가요?
네, 이게 제 인스타그램인데요. 여기 옹진 섬에도 상어가 나와요. 상어도 나오고 저는 허구한 날 사진이 현장 가는 사진, 생선 사진 이런 것밖에 없어요. 아마 학생분들은 이거 보고 오시지 않나 해요.
(어머니) 원래 상어는 이만하잖아요. 이렇게 통 상어는 딱을 뜯는 거예요. 이렇게 요만큼을 딱 자르는 거예요.

굉장히 궁금하네요.
(어머니) 그런데 저는 상어는 잘 안 잡아봤는데 홍어랑 장어는 잡아 봤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거는 겁이 나서 안 하고 죽은 것만요.

조금 예민한 이야기인데 인천에 전라도 분들이랑 충청도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특히 전라도 분이 인천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나 힘든 점이 없었는지요?
(어머니) 저는 처음에 전라도에서 중매해서 이쪽으로 시집을 온 거에요. 그런데 보릿고개도 여기 구월동에 장난 아니게 심하고 모래도 아니고 자갈밭, 한마디로 탈탈길 아시죠? 그 당시에는 버스도 하루에 2~3대밖에 안 다녔어요. 제가 처음에 왔을 때 고초가 무지 많았죠. 겨울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아이를 가져가지고 모를 심었어요. 7개월 되었을 때, 뱃속에 큰딸이 있어요. 걔를 그렇게 하고 엄청 고생이 많았어요.

인천에서 모를 심으셨다고요?
(어머니) 네, 검암에서. 검암동은 논밭이 많았어요. 왜냐하면 40년 전이니까 논밭이 많을 때니까. 지금은 개발을 다 했잖아요. 엄청 탈탈이었어요. 여기도 탈탈탈 했었죠. 자갈밭, 자갈길. 저 시집올 때만 해도, 딱 여기 정착해서 산 지 40년 됐어요. 41년. 여기서 처음 시작할 때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조금 적은 돈에 발품을 팔러 다녔어요. 그리고 사러 다닐 때 둘 다 차가 없으니까 뚜벅이로 버스 타고 가서 하나 사다 놓고 내일은 또 뭐 사고 이렇게 했었어요. 그러니까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인천 소상공인
아, 구청 관할이라고 하셔서 말씀드리는데요. 제가 얼마 전에 경제 자원과에서 진행했던 소상공인지원사업 이었는데요. 주안영상미디어센터에서 라이브 방송을 지원 해줬던 게 있었어요. 그거 되게 괜찮더라고요. 만약에 소상공인분들 중에 라이브 하고 싶으신 분들 있으면 거기서 해주는 무료 지원사업이랑 구청껀데 되게 괜찮더라고요. 제가 참여를 해봤는데 그런 내용도 들어갈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인천사람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래서 인천사람들이 순수 토박이는 별로 없기 때문에 음식을 테마로 잡아서 어떤 음식을 이렇게 만들게 되었는지 내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셨는지 등….
(어머니) 그렇구나. 나는 왜 와서 인터뷰를 하려는 건지 의문스러워요.
구술자: 저희가 인터뷰를 많이 해서요. 왜냐면 또 다음 주에는 배민 공사에서 여기서 방문 촬영을 한다고 했어요.

아마도 그러다 보니 더 장사가 잘되고 그러시지 않을까요?
(어머니)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제 시작해서 잘 모르겠어요. 이제 막 촬영해가서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결과물이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게 공적인 목적의 소재라서 그렇지 재밌는 소재 되게 많아요.

재밌는 소재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지.
이건 공적인 소재를 하고 계시니까. 저는 진짜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어서 재밌는 인생을 살아서 스토리가 정말 많죠.
(어머니) 그럼 홍어 홍탁집 한 거 얘한테 들은 건가요?



배움&연구
홍탁집을 제가 선학역에서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 게 다 스토리가 된 거죠. 다 이야기했죠.

지난주에도 홍탁집을 다녀오고 나서 이야기를 지금 쓰고 있어요. 비슷한 말씀 하셨는데 몸에 냄새가 배서 대중교통 사용하기도 힘들고 그런 이야기들도….
(어머니) 저는 홍어가 삭힌 거 사 오기도 했지만 직접 어머니한테 배운 게 있었어요. 왜냐하면 뒤엄 아시죠? 쓰레기. 저 같은 경우에는 직접 하면서도 사 와서 쓰기도 했지만, 옛날에 뒤엄이라고 그거를 홍어로도 해봤어요. 왜냐하면 볏짚에다가 싸서 배 갈라서 쓸어내고 그러고 난 뒤에 저 볏짚으로 해서 제가 그것도 삭혔거든요. 그러다 쌀 포대로 해서 항아리에다 삭히기도 했어요. 나는 내가 노력으로 많이 했거든. 저는 요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배운 적도 없고요. 어느 날 내가 먹어 보니까 고기가 참 맛이 없어요. 홍탁은 말 그대로 홍어 반절 돼지고기 반절이 들어가야 그게 홍탁이 맞잖아요. 그랬는데 저 돼지고기가 맛이 없는데 소나무를 넣고 삶으면 진짜 맛있겠다. 그래서 소나무 이파리를 가지고 돼지고기를 삶았어요. 그게 반응이 진짜 좋더라고요.

솔잎을 넣고 삶으셨다고요?
(어머니) 제가 전수를 해주면 솔 이파리가 들어가면 잡내를 다 잡아요.
요즘에는 채취하면 불법이고 옛날에 그랬대요.

옛날이야기죠.
(어머니) 지금도 하는 사람 있겠지만, 저는 옛날에 했으니까. 그리고 돼지고기 뜨거운데다가 솔 이파리를 세척을 해서 솔 이파리를 깔고 그 위에다가 고기를 삶아서 쫙 놓으니까 솔 이파리 향기가 진짜 좋더라고요. 그렇게 했어요.

두 분 다 아주 연구를 많이 했군요.
(어머니) 저는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어느 날, 고기를 그렇게 삶아서 내놓으니까 그걸 저한테 배우러 들어오더라고요. 왜 그러냐 했더니 이 집 고기는 특이하다 이거야. 그리고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했더니 고기가 너무 맛있다고 말을 하더라고. 그러니까 저는 연구를 혼자서 그렇게도 해봤어요. 그런데 지금 역시 여기서 반찬 하면서 이거 한 가지 갖고 여러 개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한 가지 가지고 몇 가지를 만들어요. 머리로 하는 거예요.

제가 보통 인터뷰하면 20분 안에 끝나는 데 아주 길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