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미추홀 : 바다를 담다
[선어] 선어회, 생선과 교감(交感)해온 34년 인생
양지원
게시일 2022.02.04  | 최종수정일 2022.03.29


  예전 선배를 따라 중국 태산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상점들 주변에 사람 가슴팍 만한 돌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그저 산이 높아 돌이 흔하다고 보기에는 막눈에도 예사로운 것들이 아니어서, 중국통인 선배에게 물으니 저것들이 모두 ‘옥돌’이라는 것이다. 마름질하지 않고 쪼지 않으면 한낱 돌에 불과한 것이요, 세공인이 혼신을 불어넣으면 보석이 된다는 말에 과연 옥이 보배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친김에 한문 경구 한 구절을 그 자리에서 배웠다. 옥이 나오려면 저 돌을 네 번 가공하는 공력을 요구하는지라, 이른바 각각을 일러 ‘절-차-탁-마(切磋琢磨)’라 한다. 자연이 아무리 좋은 재료를 내주어도, 그것과 교감하기 위한 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저 보배의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라니, 과연 사람 하는 일이 모두 저 옥을 쪼는 일과 같겠구나 싶었다.

  음식 역시 사람의 영역이라, 시장 좌판에서 뭉텅뭉텅 썰어주는 회 한 접시에도 알게 모르게 주인 손끝에 담긴 공력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참 맛있게 먹었던 것 중에 하나가 할아버지를 따라 시장에서 먹었던 동태회이다. 요즘 들으면 동태를 무슨 회로 먹느냐 경악할 이도 있겠지만 살얼음 낀 살점을 어린나이에 무시로 입에 넣으며 오물거린 기억이 아련하다. 그런데 이것도 집집마다 다른 것이 어떤 집은 덩이살을 내어줘도 문제없는가 하면, 손놀림 미숙한 이에게 잡힌 동태는 살결이 찢어져 제공되기도 한다. 심지어 가시까지 나와 목에 걸려 곤욕을 치른 경험이 생생하다. 하긴 소위 막회라는 것이 작은 뼈쯤 이로 씹을 것을 감수하고 먹는 것이라지만, 같은 음식이 주는 편차가 이토록 심하니 병원 못지않게 횟집도 집도의(執刀醫)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이다. 어떻든 머리가 크고 난 뒤로는 줄곧 활어회만 먹다가 어느 날 냉동된 참치를 회로 대하였을 때, 어릴 적 동태회를 먹은 기억과 더불어 조악했던 집도의도 추억에서 함께 소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선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야 할까, 그 시원한 동태회 맛은 여전히 내 유년의 미각으로 또렷이 각인된 기억이니, 그 조악했던 ‘동태 집도의’가 바로 내 어머니라는 사실과도 결코 무관치 않으리라.

  그런데 기왕의 회 이야기가 나와서이지만, 인천에서는 다른 고장에 비해 회를 먹는 풍습이 조금 남달랐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에는 생선 좌판이 있는 곳이면, 굳이 살아있는 생선이 아니어도 거부감 없이 드시는 경우가 무척 흔했기 때문이다. 날생선을 먹는 일이라 유독 살아있는 싱싱한 놈을 고집하는 경우가 일반이라면, 인천의 여느 시장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회 문화는 조금 이질적 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전통적으로 활어보다 선어회를 즐기던 풍습이 성했다. 그러던 것이 인천에서도 이제 선어 횟집은 시장 주변을 제외하고는 보기 드물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집도, 업태는 ‘일식집’을 표방하면서도 인천사람들 구미에 잘 맞는 선어회를 선보이는 집이었다. 생선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하여, 아침나절 일찌감치 손질을 하고서 다시 숙성을 하였다가 마침내 접시에 올린다니, 이 네 단계는 절차탁마의 법도에 부합하기도 한다. 그러니 집도의의 섬세한 솜씨야 굳이 입씨름할 거리도 못 된다.

  보통 이러한 방식으로 손질되는 선어회는 기본적으로 제철 생선이라 불리는 시어(時魚)를 쓰기 마련이다. 양식을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선어회를 다루는 집이 활어회에 밀려 드물게 된 것은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철철이 바다 사정에 따라 골라오는 생선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집에서 메뉴의 선택은 손님본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주인의 주관과 노련미에 달렸다. 그래서 선어회를 먹으러 갈 때에는 무엇이 나올지 계절에 따라 대중은 어림잡을 수 있지만, 접기다리는 설렘이 있어 좋다. 즉 접시에 오르는 생선의 종류와 광택과 맛의 등락에 따라 우리는 사시사철 바다의 순환과 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활어차에 담겨 이사 온 녀석들을 골라 먹는 일은 상품을 고르는 시장경제의 일상이라, 이러한 시어(時魚)를 먹는 자연미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과거에는 어부가 잡는 즉시로 대가리를 치고 피를 뽑아 얼음에 재워왔다고 하는데, 접시에 오르는 선어회는 말 그대로 전날 바다 사정에 달렸던 것이다. 활어가 씹는 식감을 위주로 한다면, 선어는 단연 맛에 기준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사후 경직이 풀어지고 숙성되어 지방이 생선 표면에 차오르는 과정은, 저 바다의 어부로부터 이곳 주인의 손길까지 여러 번의 협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계절 생선(時魚)이 달래 계절 생선이 아니다. 바다 사정에 훤한 이들이 골라서 주는 것이라 그저 믿고 먹어야 더욱 제맛이다. 선어회를 먹는다는 것은 그 만큼 주인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라는 뜻이요, 결국 같은 날것을 먹는다고 하여도 그 세심한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주인의 안목과 솜씨가 녹아 있기에 심오한 요리의 반열에 드는 것이다.

  이곳을 운영하시는 주인도 무려 34년이나 이 일을 해오신 베테랑이신데, 게다가 예전 일식집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사장님이셨다. 고향이 어디냐 여쭈었더니 엉뚱하게도 바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충북 제천이라신다. 생선이라고는 고등어, 동태밖에 모르던 시골 처녀가 인천으로 시집을 와서 이제는 생선회로 우뚝한 자리를 잡으셨으니, 그 노력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통상 회라 하면 고급 음식으로 통하는 까닭에 손님을 접대하거나 접대받는 자리가 다반사였다. 이런 회 문화에서 칼을 잡는 주인도 손님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문화가 예전 방식이었다. 회칼을 잡는 손은 당연히 남자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당시로서는 여성에게는 불모의 가까운 길을 선택하셔서 상당한 낭패를 맛보기도 하였다. 활어가 아닌 죽은 생선을 내준다고 신고를 하고, 심지어 냉장고를 뒤져보겠다고 법석을 떤 손님이 부지기수였다. 활어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박약한 주인과 손님의 관계도 문제이지만, 회칼을 잡는 일을 여성의 영역으로는 쉽사리 인정 못하겠다는 고약한 문화도 한몫하였을 터이다.

  그래도 주인이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인천사람들만큼은 선어회의 가치를 알아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손님들이 많은 덕담과 위로를 해주었기 때문이란다. 손님에게 받은 상처를 노력과 실력으로 극복한 것인데, 도리어 손님의 은공으로 돌린다. 덕분에 손님도 성장하고 자신도 함께 성장하였다는 주인의 말에는, 진정한 교감(交感)이 무엇인지 십분 배어있다. 죽은 생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숙성을 시킨 선어회라는 인정을 받기까지 꼬박 4년을 고생하셨다는데 손님과 교감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결코 만만치 않다. 단지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인정받는데 필요한 시간이 하세월이었던 셈이다. 나 역시 활어만을 먹다가 처음 이곳에서 숙성된 광어회 접시를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기름을 바른 듯 광택을 뿜어내는 연분홍색 살결을 보며 이런 것을 여태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성의 과정에서 올라온 지방이 주는 식감을 맛보는 일은 비로소 회라는 음식이 날생선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 조리된 생선을 먹는 것이라는 내 미각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기회였다. 선어회라고는 동태회가 다였던 촌놈(?)의 미각에 일대 혁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이 걸어온 선어회의 길이란 결국 교감을 위한 어려운 길이었다. 남자들만 회칼을 잡는 세계에서 여성으로서 인정받고 손님들과 교감하는길, 그리고 충북 제천의 시골 처녀가 생선을 이해하고 저 바다의 생물들과 교감하는 길.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거창하게 꾸민 말이 아니라, 주인이 생선을 대하는 지론을 들으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주인은 단순히 넙적하고 둥근 모양, 혹은 살점이 희냐 붉으냐를 두고 기계적으로 생선 손질을 하지 않는다. 손바닥을 넙치에 비유하며, 이 녀석들이 모래 바닥을 헤엄칠 적에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해주신다. 넙치와 우럭이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유형하는지를 상상해가며, 그 근육의 움직임에 맞게 살점을 떠내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라면 가위 생선과 교감을 한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같은 생선의 부위마다 살점이 머금고 있는 염도가 제각각이라고 하니, 그 염도를 알면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는 설명을 주신다.

  까닭에 제철 생선인 시어(時魚)를 먹어야 한다는 주인의 지론은 확고하다. 주인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생선은 흡사 갓난아이 입에 엄마 젖이 착 들러붙듯, 더없이 입에 붙는 맛이라 한다. 반면 그것이 철이 지났거나 제 바다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보리밥마냥 입에서 따로 놀 수밖에 없다는데, 충북 제천의 딸이 인천에서 선어회로 자리 잡은 입지전적 면모가 돋보이는 설명이었다. 나는 문뜩 저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인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늙은 어부가 거대한 황새치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날치를 뭉텅이 회로 꼭꼭 씹어먹는 바로 그 장면이다. 노인과 사투를 벌였던 황새치 통째로 씹어먹었던 날치도 노인에게는 단순한 물고기나 대결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노인은 낚싯줄과 연결된 심연 속의 황새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느라 혼자서 중얼거린다. 이른바 이 바다 생물들은 그에게 인생의 의미를 다잡아주는 교감의 대상이었다. 비록 망망대해가 아닌 주방이라지만, 34년 꿈에도 인연이 있을 줄 몰랐던 생선과 씨름한 주인에게도 생선은 단순한 음식 재료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을 보며 “너는 이런 모습으로 바다를 헤엄쳤겠구나” 생각하는 주인과 헤밍웨이의 소설에 나오는 노인은 꽤나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접시에 오른 농어와 복어회는 절차탁마의 세공사가 빚어낸교감의 음식이었다. 생선회가 단순히 날생선을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심한 집도의나 세공사가 그런 것처럼 이런 접시에는 벼려진 솜씨가 녹아 있다. 적당히 탄력 있으면서도 기름을 한껏 끌어올린 농어의 살점을 우물거리며 나도 주인처럼 농어라는 녀석이 바다에서 어떻게 유형하였을지를 상상해본다. 이제 생선회를 맛볼 때마다 나는 주인이 손바닥을 뒤집었다 펴가며 알려준 생선의 유형 방법을 늘 떠올릴 것이다.

  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있지만, 이 집이 지닌 미덕이 하나 더 있다. 저렴한 가격에 점심을 진수성찬으로 차려준다는 것인데, 인근에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더없는 인기를 구가한다. 회덮밥이나 작은 생선 뚝배기 하나를 시키면 가득 상을 내주시기에, 소주 한잔하시는 어르신들은 주머니 걱정 없이 한턱 내시기를 마다 않는다. 특히 봄이면 내주는 멍게젓은 특선 중에 특선이라, 그 향긋함과 시간을 들여 삭힌 깊은 맛은 일 년을 기다려서라도 반드시 맛보라 권할만하다. 기실 나 역시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던 시절, 없는 돈에 술을 잔하고 싶으면 선배와 여기서 한두 시간씩 점심을 먹고 간 적이 있었다. 무슨 대단한 연구나 한답시고 식민지 시절 신문을 파보며 선배와 밤새 옥신각신하다가, 점심이 한참 지나면 공복에 이곳 문턱을 서성거렸다. 돈도 못 버는 가난한 학생들인 줄 뻔히 아시기에 소주병이나 시키면 그저 안주라도 더 챙겨주셨던 일이 생생하다. 오늘 만나 주인께 그 시절 참으로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니 그저 웃어 주신다. 주인이 손님과 교감하는 것이 이러하다. 생선 접시만 옥돌처럼 벼려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과의 관계도 옥돌처럼 그렇게 다듬어 가는 것이다.



농어 선어회
제철 생선으로 숙성 시켜 먹는 선어회는 활어회의 차지고 쫄깃한식감과 다르다. 숙성되며 혀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뛰어나다. 무려 34년의 내공을 담은 주인의 실력이니 농어회가 숙성되며 표면에 지방이 차올라 는 것도 한층 맛을 더한다.

 



곁들이 안주도 일품
단연 으뜸은 복어회이지만 소라와 낙지 숙회, 멍게, 꽃게찜, 새우구이, 메뚜기볶음, 초밥 등 다양한 곁들이 안주가 나와 식탁을 풍성하게 채운다. 이런 일품요리에는 당연히 약주도 한잔, 일품 안주가 술을 부르는 것인지 술이 일품 안주를 부르는 것이지.

 

- 기록 : 학산 미담식회  (글 : 고재봉 / 사진 : 김상태, 천영기, 류제혁)
- 답사장소 : 삼원일식 / 답 사 일 : 2021년 11월 8일(목)